정신없이 채울 땐 몰랐지~
지난 주말, 큰 맘을 먹고 집구석구석에 쌓인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던 정리 대작전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명 점심 먹고 시작했는데 캄캄한 밤이 돼서야 끝이 났으니 말이다.
정리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내가 이걸 아직도 갖고 있었어?'
'참고 기다려준 남편 고맙습니다...'
우리 부부의 첫 신혼집은 30평에 가까운 꽤 넓은 집이었다. 수납공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확장형 아파트라 여기저기 활용할 공간을 만들 수는 있었다. 우리는 방 하나를 서재로 (사실 이것도 내가 갖고 있는 책이 너무 많아서...) 만들기로 하고 큰 책장을 마련했다. 책장이 크다 보니 갖고 있는 책이 적게 느껴지는 마법이 시작됐고, 책을 수납하고 남은 공간에는 추억을 이유로 버리지 못한 블루투스 스피커, 잔뜩 인화한 사진, 여기저기서 받은 편지들을 꾹꾹 넣어놓은 박스 등으로 화려하게 채워졌다. 다 채우고 나니 몰려오는 이상한 뿌듯함은 뭐였을까?
신혼집에서 보낸 2년 동안 짐은 더 늘어나버렸다. 그 후 우리는 22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집이 좁아지기에 필수적으로 짐을 줄여야 했다. 나름 여러 물건을 버렸지만 여전히 내 추억 보따리(?)는 건들 수 없는 존재였다. 남편은 여러 차례 "이걸 꼭 가져가야 해?ㅇ_ㅇ"라고 물었지만 당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응~ 가져가야 해^^"라고 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가는 모든 곳에는 내 추억도 같이 가야 한다는 착각 속에 묻혀 있었다.
결혼 후 3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묻혀 사는 추억은 한낱 예쁜 쓰레기일 뿐이라는 것을... 끝도 없이 나오는 나의 예쁜 쓰레기들을 보며 처음엔 헛웃음을 쳤다가 나중엔 멍 때리며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빨리 이 대작전을 끝내고 치킨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왕창 다 버리는 건 아니었고, 정리를 하다 보니 내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 고장 나서 쓸 수도 없고, 고치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전자기기는 과감히 버리기
-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편지는 휴대폰 카메라로 찍고 버리기
- 지난 1년간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책은 중고로 판매하기
- 열심히 신문 스크랩했던 파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날짜와 언론사, 키워드만 메모해놓고 버리기(어차피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 사용감이 적은 인형, 피규어, 문구류 등은 잘 모아뒀다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기
남편은 한결 깔끔해진 서재와 옷방을 보며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비록 캐리어에 가득 찬 예쁜 쓰레기들을 버리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마저도 행복하다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된 것도 아니고, 언제 또다시 습관적으로 채워 넣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깨달았다.
우리는 비워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