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낭송 공작소』이숲오 장편소설
시를 낭송하는 노인과 소년의 만남.
따뜻한데 푸근하기보다 정갈하다. 깊이가 있다. 정제된 언어가 매력적이다.
소년이 시 낭송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
어떻게 하면 낭송을 잘할까에 몰두하던 소년이 우연히 노인을 만나 조언을 구한다. 노인은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생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체화해서 발현해야 하는가? 시 낭송 대회에 나가는 소년에게는 이보다 큰 숙제가 없다. 그저 좋은 목소리로 남의 마음을 울릴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고 한다.
낭송과 낭독의 차이
“가장 큰 차이점은 시선에 있다고 봐요. 낭독은 시선이 텍스트에 있는 반면 낭송은 청중을 향해 있죠. 물론 제2의 시선은 둘 다 이미지로 향합니다. 이는 단순한 외형상의 차이뿐 아니라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낭독은 독백의 언어이나 낭송은 선언의 언어, 고백의 언어입니다. 낭독과 낭송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달라요.”
88쪽
“낭송은 연설도 아니고 강연도 아니지. 무엇을 설명하려고 애써도 안 되고 무엇을 가르치려고 해서도 안 된다네. 자네가 그렇다는 건 아니라네. 낭송자가 청자와 교감하려는 의지와 소통의 리듬을 놓치게 되면 균형이 깨지면서 위압감을 주며 그런 부작용이 드러나게 되는 걸세.”
164쪽
시 낭송할 때 시를 대하는 태도
“우선 시(時) 낭송이 되어야 하네. 시 낭송에서의 시간은 현재성을 띠어야 해. 선어말어미가 과거형일지라도, 낭송을 하는 순간 지금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전해야 하네. 그래야 유일해지고 살아있게 되지. 모든 감동과 진심은 현재성일 때에만 발현된다네. 다음으로는 시(始) 낭송이어야 하네. 새해 아침의 둥근 해처럼 처음 보는 듯한 설렘과 기대가 담겨야 하네. 숙련된 낭송자일수록 매번의 낭송이 처음인 듯 신선하지. 그야말로 낭송가의 마음가짐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거네. 그리고 시(示) 낭송을 추구하게. 이미지와 의도가 분명하게 보여야 좋은 시 낭송이라 할 수 있네. 평소에 사물을 보는 훈련이 크게 도움될 거야. 관찰하는 힘이 낭송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지. 잘 보는 능력은 잘 낭송하는 능력으로 옮겨간다네. 게다가 시(施) 낭송도 가능해야 할 거야.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려는 의지가 낭송에 담겨야 해. 혼자서만 만족하고 그치는 낭송은 외롭고 공허하지. 낭송가로부터 청중에게로 이어지는 연결을 항상 염두에 두고 낭송하게. 끝으로 시(是) 낭송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네. 진실을 담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낭송은 듣는 이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으니 말일세.”
211쪽
시 낭송을 소재로 노인과 소년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만, 우리네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작게는 지금 하는 일에 임하는 태도, 자세, 마음가짐으로 볼 수도 있고, 크게 우리네가 삶을 대하는 자세로 확장해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냥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로 활용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철학적으로 내 삶을 반추하며 읽을 수도 있다. 책 한 권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
10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성북 구청 근처에 자리 잡은 ‘목소리 예술 연구소’에서, 이숲오 작가님의 『꿈꾸는 낭송 공작소』 10번째 북콘서트가 열렸다. 지난여름 방수미 작가님이 올린 북콘서트에 다녀온 후기를 읽고, 가보고 싶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숲오 작가님은 2024년 올 한 해 동안 12번의 ‘책 이야기 나눔’을 기획했다. 장편 소설 1권으로 12번을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게 신기했다. 한 권이 소설이지만 12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매 장으로 나누면 저마다의 이야기가 된다. 연작 소설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10월에는, <10장 게으른 나무는 없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님은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 생각대로 책을 읽고 느낀 점과 자신에게 다가온 문장을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날은 오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하다. 모든 날이 시작하기에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나중’이라는 때를 기다리느라 ‘지금’이라는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은 타이밍 포착 능력이 아닌 타이밍 획득 의지의 문제다.
166쪽
나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지만 절대 게으르지 않다. 오히려 사계절 내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느라 너무도 바쁘다. 우리는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삶에서 빈둥거리고 게으른 시간은 꼭 필요하다.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면 부지런한 걸까? 가만히 있다고 게으른 걸까?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내가 가졌던 딱딱했던 생각의 경계를 허물 수도 있었다. 그저 전체적인 맥락만을 읽어나간 내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10번째 이야기 모임에 함께 하신 분이 전해주는 울림은 깊고도 넓었다. 또한 나보다 훨씬 젊은 청년의 이야기 깊이에도 놀랐다.
20여 쪽이 조금 넘는 분량의 소설을 가지고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데 반복되거나 늘어지거나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청중으로 참여하는 북콘서트가 아니라, 소규모 인원(그때그때 다르겠지만)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북콘서트가 신선하고 생생해서 한 주가 지난 지금도 여운이 짙게 남아 있다.
11월에도 북콘서트는 열릴 것이다. 셋째 주 토요일 오후 세 시. 바로 그 자리에서. 11월의 주제는 “시시해지지 않기 위하여”다. 어떤 이야기들이 또 실타래를 풀고 나올까 궁금하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몸이 하나이기에 한 곳에만 머물 수 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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