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갑니다
지난여름 아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듬뿍 담아 날마다 편지를 보내던 ‘걱정쟁이 엄마’에게도 청춘이라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은 처음엔 그저 선배였습니다. 군대 간다며 편지 보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고마운 우리 국군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써 줘야겠다는 맘으로 가끔 생각이 나면 한 통씩 써 보내곤 했죠.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 시기에 만나던 남자 친구에게 쓴 편지와 엇갈려 전달될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제가 선배에게 편지 쓰는 걸 보던 동생이 ‘군바리’에게 그렇게 편지를 정기적으로 쓰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오해한다나요. 전 ‘염려 붙들어 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그 선배의 주변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맴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엔 알다가도 모를 일이 가득하죠. 저도 거기에 하나 보태버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위문편지를 쓰던 제가 바로 그 선배 남자와 결혼해서 30년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스물한두 살 풋풋했던 발자꾹의 모습을 낱낱이 까발립니다. 독자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제가 쓴 편지가 그저 위문편지였는지 아니면 전방에서 애쓰며 국방을 튼튼히 지키는 국군 아저씨의 맘을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Dear **오빠
이제 진짜로 봄이 왔나 봐요. 그런데도 숙이는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어요. 요 며칠 동문회랑 학교 일로 좀 다녔더니 피곤했나 봐요.
지난번 모임에 나가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미미가 회장이 되었나 봐요. 3월에는 나갈까 생각 중이에요.
오빠가 있는 곳은(홍천) 날씨가 어때요? 아직도 좀 쌀쌀하겠죠? 제 친구가 원주 캠퍼스에 다니고 있는데, 3월에도 찬 바람이 쌩쌩 분다고 하던데요?
며칠만 지나면 3월이 되고 개강을 해요.
3개월 간의 방학이 벌써 끝나다니, 지루한 나날들이 끝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매일매일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버스에 시달릴 일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지난 석 달 중의 한 달은 학원에 다녔고 두 달은 집에서 식순이 노릇하며 그냥 그렇게 보냈어요. 지금에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이제부터는 신입생이 아닌 2학년 언니가 되니까, 좀 더 성실하고 보람찬 생활을 하고 공부도 잘하는 선배가 되어야겠어요.
지금 오빠한테 편지 쓰면서 무슨 생각하는지 아세요?
글쎄 우습게도 “초등학교” 다닐 때 국군 아저씨한테 ‘위문편지’ 쓰던 생각이 나요. 그 편지 처음에는 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국군 장병 아저씨께’라고 쓰던 기억도 나구요. 오빠한테는 그런 편지 안 와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줄게요. (이 얘길 모르면 좋을 텐데.)
코끼리랑 개미가 여행을 가고 있었어요. 개미는 물론 코끼리의 등에 타고서. 그런데 도중에 개미가 볼일이 보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코끼리한테 잠시 내려 달라고 했는데, 코끼리가 들어주지 않았어요. 한참을 가다 개미가 다시 부탁을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코끼리는 들어주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개미는 참을 수밖에 없었지요. 다시 얼마를 가다가 개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생각다 못해 ‘코끼리 등이 이렇게 넓은데 잠깐 실례를 해도 모르겠지.’하는 생각을 하고, 그만 볼일을 보고 말았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코끼리가 없어진 거예요. 왜냐구요?
깔깔깔!!!
‘쉬하면 코끼리가 싹’하고 없어지는 아기 기저귀 광고 때문이에요.
건강하세요.
89년 아니 90년 2월 26일 낮에
쑤기가~~
*너무 오래되어서 영상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 감성이 듬뿍 묻어있답니다^^
https://youtu.be/mp54FagCXA4?si=za0aldpsElxAKU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