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심사를 끝냈으니 이제 미국행 탑승구를 찾아야 했다. 환승 시간을 놓칠까 봐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표지판을 따라 한참을 걸었더니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무척 한산한 탑승구가 나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 관계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천공항과 너무 달라서 어리둥절했다.
빈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니, 아버님이 힘이 다 풀린 다리로 허위허위 걸어오셨다. 아버님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시더니 목이 마르다 하셨다. 가게는 없고 음료수 자판기만 몇 대 있었다. 물도 탄산수도 대부분 3달러였다. 우리는 생수를 한 병 골랐다. 500 ㎖ 생수 한 병에 3달러라니,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아버님이 달게 드셨으니 그걸로 됐다.
다 같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행기에서 캐나다 세관신고서 작성한다고 버벅거렸던 일이 떠올랐다. 복잡한 절차를 무사히 끝내고 탑승구까지 잘 찾아오니 여유가 생겼나 보다. 캐나다 입국자가 아니면 필요 없는 거였는데 그걸 하느라고 낑낑대고 헤맸던 걸 생각하다 혼자 킥킥거렸다. ‘이번엔 헤매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인터넷에서 찾은 미국 세관신고서 작성법을 보고 또 보았다.
이제 비행기만 타면 된다. ‘늦으면 큰일 난다’라는 생각에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내내 서둘렀더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렇지만 맘이 편치 않아서 정신없이 지나쳐온 상점들을 다시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는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를 뺀 그들은 모두 같은 마을 사람처럼 서로 친근해 보였다. 분명히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국제선인데 시골 대합실에서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직원과 승객도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인 양 호탕하게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제주도에 갈 때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내게 여유로운 그들의 모습은 너무 낯설고 어색했다. 솔직히 말해 부러웠다.
그네들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에게 부럽다고 말하고서도 나는 내게 주어진 1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전광판의 비행기 시간만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다 곧 탑승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얼굴에 가득하던 주름이 펴졌다. 우리 앞에는 100명도 채 타지 못하는 작은 비행기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 승무원이 앞으로 몸을 수그리고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비행기가 하도 작아서 남자고 여자고 고개를 숙이고 타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들 엄청 힘들어 보였다.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도 이렇게 가끔 행운이 찾아온다.
비행기를 타고서 내내 세관신고서를 기다렸지만, 그 친절한 승무원은 아무 종이도 주지 않았다. 아무도 청하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봐 가만히 있었지만, 내 마음엔 다시 걱정이란 방망이가 나타나 심장을 두들겨댔다. 비행기는 1시간 30분 정도 날아 캄캄한 인디애나폴리스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소리에, 짐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도 무언가 찝찝했다. 걸어오면서 짐 찾는 곳을 물어보니 공항 직원은 그저 앞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어른들을 모시고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가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짐 찾는 곳과 세관신고서가 뒤섞여 어질어질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큰 시누이가 남편과 아들과 함께 우리를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세 사람은 우리가 인천공항에서 떠날 때 사진으로 알려준 짐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 그저 “어! 어!” 소리만 연달아 내뱉었다. 아무 검사도 하지 않고 어떤 신고도 하지 않고 짐을 찾는다니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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