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를 거쳐가는 에어캐나다 항공은 그동안 이용했던 항공사와 좀 달랐다. 탑승권에 게이트 번호만 있는 게 아니라 구역도 정해져 있었다. 우리 일행의 탑승권에는 모두 zone 4라고 적혀 있었다. 이전에 다른 항공사를 이용할 때는 1등 석과 비즈니스석으로 가는 사람들이 비행기표를 확인하고 들어가면 일반석을 타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큰 비행기를 탈 때면 줄이 하도 길어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 지쳐 미어캣처럼 고개를 쑤욱 내밀고 앞을 살피곤 했었다. 그런데 구역이 나뉘어 있으니 앉아서 기다리다가 자기 구역을 부르면 게이트 앞으로 가면 되니 훨씬 편하고 좋았다.
승무원에게 탑승권을 보여주고 구역별로 탑승하니 비행기에 들어가서 자리를 찾을 때도 짐을 올리는 사람들 때문에 중간중간 멈춰 서야 하는 일이 전보다 훨씬 적었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좋겠다. 다음에 해외로 여행 갈 일이 생기면 확인해 봐야겠다.
내 자리는 화장실 근처였다. 열 시간이 넘도록 비행기 속에서 지내야 하는데 시끄러워서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방음이 잘 되어 있는지 생각만큼 요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먹고 자고 또 먹으며 가는 먼 길이라 화장실이 가까워서 편리하고 좋았다.
비행기 삯이 싸다고 해서 영화나 드라마는 포기했었다. 그런데 궁금했던 최신 영화가 잔뜩 했고, 화질도 기대 이상이었다. 딱 한 가지, 한국말 자막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를 거의 다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런 횡재가 또 있을까 싶었다. 죽음을 따뜻하게 기릴 수 있는 가족 애니메이션“Coco”부터 뚱뚱해서 괴로워하던 여성의 자존감 찾기 영화 “I Feel Pretty” 40년 동안 독서 모임을 이어온 여자 네 명의 이야기 “Book Club”.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대도시 여성들의 삶을 다룬 “Sex and the City”. 이 영화 아니 드라마는 좀 야해서 앞부분을 보다가 시어머니가 오가며 보실까 봐 민망해서 끄고 말았다.
먹거리도 엄청 풍부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프레츨이랑 음료수를 주더니 한 시간쯤 지났는데 저녁 식사 시간인지 승무원들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카트를 밀고 왔다. 쇠고기와 닭고기 중에 나는 닭고기를 골랐다. 닭고기는 부드럽고 간이 잘 맞아서 맛있게 먹었다. 남편이 고른 쇠고기는 너무 질기다고 해서 닭고기를 나눠 먹었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 난 커피, 남편은 위스키를 마셨다. 비행기에선 아침에 일어나 식구들 챙길 필요가 없으니 그저 내가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맘껏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밥을 다 먹고 다시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주위가 시끄러워 깨보니 또 식사 시간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시간이 되었다고 자꾸 음식을 주니 그것도 힘들었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남이 차려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나고 좋지만, 비행기에서는 고역일 때가 많다. 점심인지 저녁인지 아침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는 대로 꾸역꾸역 먹는 내 모습이 마치 주인이 주는 사료를 받아먹는 가축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돈이 아까워 거절하지 않고 그냥 먹기로 했다. 이번에는 오믈렛과 죽이었다. 내가 죽을 맛 나게 먹고 있는데 남편이 오믈렛이 너무 짜다고 툴툴거렸다. 이번에는 양이 너무 적어서 내 죽을 나눠주지 못했다.
비행기에 탄 지 10시간이 넘으니, 온몸이 배배 꼬여왔다. 영화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이라도 푹 자면 시간이 좀 더 빨리 가고 몸도 덜 고될 텐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가 남편과 눈이 딱 마주쳤다. 다음엔 땡빚을 내서라도 비즈니스석에 앉아서 가자고 남편이랑 손가락을 꼭꼭 걸고 약속했다(그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어찌어찌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기내 방송 때문에 깨버렸다. 도착하기 전에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라는 내용이었다. 미국으로 가는 승객들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걱정쟁이 김 여사는 혹시 모른다며 세관신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한국말을 하는 승무원을 찾았지만, 교포 2세인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고서를 전부 영어로 써야 하는 데다 내가 쓴 신고서를 보고 식구들이 돌아가며 쓴다고 생각하니 한 글자 한 글자 적을 때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고서를 쓰다가 틀려서 몇 번이나 다시 써야 했다. 얼마나 긴장을 많이 했던지 다 쓰고 나서도 떨리던 손이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혹시 무언가 하나라도 잘못되어 미국 땅을 밟지도 못하고 인천공항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두렵고 무서웠다. 어머니께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해 놓고는 남편과 두 손 맞잡고 온갖 신을 다 부르며 별일 없기를 애타게 기도했다.
잠시 후, 토론토 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기내에 울려 퍼졌다.
*대한항공은 2020년 6월부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구역별로 입장하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그 이후로 뒷좌석부터 탑승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어 국내 대부분의 항공사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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