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여행 길잡이!

by 발자꾹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표를 끊으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초조해졌다. 아이들 방학 때 외국 여행을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 겁이 많은 남편과 나는 가이드가 있는 패키지여행밖에 다니지 않은 터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인솔자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 찍기에만 바빴던 그때의 내 모습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잘 걷지도 못하시는 시부모님 모시고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내려 두어 시간을 머물다 인디애나행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 여행 인솔자로 내가 선정되었다. 30년 전에 영문과를 졸업했고 영어를 조금 좋아한다는 이유로 큰 시누이를 만날 때까지 내가 시댁 식구들을 이끌고 다녀야 하는 거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얼떨결에 정해진 일이긴 하지만 나도 암묵적으로 동의했기에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10년 넘게 영어를 등한시했으니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토론토 공항에서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나는 책장 한구석에 밀쳐두었던 영어 패턴과 여행 영어책을 다시 꺼냈다. 네이버 회화도 시작했다. 날마다 새로운 표현을 익히며 조금씩 영어와 다시 친해졌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대했을 때 떨려서 말을 못 할까 봐, 일주일에 세 번씩 원어민과 통화하며 본격적으로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어색해서 ‘음… 음…’만 반복하며 15분이란 시간을 모두 써버렸다. 그렇게 한 달 동안을 떠듬떠듬 주어와 서술어를 어렵게 이어 붙이곤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내 뜻을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길고 부드러운 문장을 만들어 가는 내 모습이 기특했다. 그렇게 떨리고 긴장되던 시간이 어느새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선생님도 열의에 찬 내 모습을 보고 하나라도 더 많은 표현을 알려주려고 했다. 게다가 내가 선택한 선생님은 아주 꼼꼼하고 핵심을 잘 짚어주는 분이었다. 떠나기 일주일 전에는 공항 검색대에서 주의할 점과 공항 직원의 예상 질문까지 뽑아서 연습시켜 주기도 했다.


수업 마지막 날에는 혹시 모르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목록을 작성해서 한국에서 짐을 부칠 때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도 걱정되면 홈페이지에서 토론토 공항 내 지도를 미리 보고 가라는 둥 정말 하나하나 세세히 짚어주어 걱정 많은 나도 감탄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내게 환승게이트를 찾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환승이라는 단어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결연히 다짐을 하듯 “Transfer”를 연신 되뇌며 마음에 아니 머리에 깊이 새겨두었다.



ChatGPT Image 2026년 3월 1일 오후 02_43_44.png


출발 날짜를 한 달 남겨놓고 남편과 비자를 신청하기로 했다. 예전엔 미국 비자를 받으려면 광화문에 있는 미 대사관 앞에 줄을 서야 했다. 또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한참 기다려서 인터뷰하고 그들이 합격 도장을 찍어줄 때까지 애타게 기다려야 했다. 딸아이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 동안 고모한테 보낸다고 미국 비자를 받으려고 애썼던 그날의 풍경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떠올랐다. 2008년 말부터 도입된 ESTA(전자여행허가제) 덕분에 이젠 온라인으로 허가서를 신청하면 별도의 비자가 없어도 3개월 동안 머무를 수 있으니 세상 참 편해졌다.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이 가끔 무섭긴 하지만 편한 건 사실 좋다. 참 좋다.


남편과 ESTA를 신청하고 나니 우리 비행기가 캐나다를 거쳐 간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처음에는 경유 시간이 짧아서 공항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니 한 푼이라도 아낄 겸 미국 비자만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무언가 찜찜했다. ‘그 허가서라는 작은 종이 쪼가리 때문에 캐나다 공항에서 쫓겨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편과 나는 쪼잔한 ‘걱정쟁이’니까 캐나다 비자도 알아보았다. 캐나다에 가려면 eTA라는 미국과 비슷한 전자여행허가서를 발급받으면 된다고 했다. 가격은 7,000원 정도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 우리는 한 끼 사 먹었다 치고 안전하게 eTA도 받기로 했다. 점심 먹고 바로 신청했는데 저녁나절에야 메일로 허가서가 도착했다. ESTA는 하루 더 기다리니 메일이 왔다. 돈을 내고 간다는데 무슨 절차가 이리 복잡한지 준비하다가 기절할 지경이었다.


남편은 아주버니에게도 캐나다 eTA를 받아 두면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에 간 형님네 큰 딸이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굳이 캐나다 비자까지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며 남편의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는 괜히 돈을 낭비했나 싶었지만 불안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서류 준비도 마음 준비도 끝났다.


짐만 싸면 출발이다!


#미국여행

#영어회화

#전화영어

#미국여행비자

#캐나다여행비자


*20년 전 미국 비자받던 날

https://brunch.co.kr/@sallyhsk69/85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다. 아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