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인천공항으로, 그런데…

by 발자꾹

우리는 추석을 지내고 이틀 뒤에 인천공항에 모여 출발하기로 했다. 추석 이틀 전 밤에 시할머니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 송편을 빚고 또 차례를 지내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늘 시댁에서 지내는 명절은 바쁘고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긴 여행을 앞둔 터라 몸살이 날까 또 기름진 음식에 배탈이 날까 봐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었다. 그때를 되돌아보니 모든 게 온통 ‘걱정 걱정 걱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큰 탈 없이 명절을 잘 보냈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친정에 가서 인사만 하고 곧바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커다란 여행 가방을 꺼내 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참석할 때 여자들은 주로 원피스를 입는다기에 정장이라고는 몇 벌 들어있지도 않은 옷장을 수도 없이 열었다 닫으며 마땅한 옷을 찾겠다고 야단이었다. 그러곤 현관 신발장을 활짝 열어 놓고 정장에 어울리는 구두를 찾는다고 또 법석을 떨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가방을 쌌다 풀었다가 반복하면서 깔깔대다 또 힘들다고 투덜대다 보니 이틀이 지났다.


드디어 떠나는 날 아침이다! 눈을 뜨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 몇 가지와 밥통의 밥을 다 꺼내곤 아들과 남편에게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날따라 엄마 마음을 헤아려준 착한 아들이 밥그릇을 싹싹 비워주어 미소로 보답했다. 나는 재빨리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끝내고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후다닥 비우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좀 더 있다가 천천히 가겠다는 아들 녀석을 기숙사로 쫓아 버렸다.


난생처음 앱을 깔고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더니 택시가 눈앞에 와서 멎었다. 택시를 부른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도착하다니,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어색하게 서 있는 우리에게 기사님이 트렁크를 열어 주었다. 우리는 짐을 싣고 뒷자리에 앉아 들뜬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늘 보던 창밖 풍경이 왜 그렇게 예쁜지 자꾸 웃음이 났다.


공항에 도착하니 2시가 조금 못 되었다. 여섯 시 출발 비행기니까 여유가 있었다. 남편은 통신사 부스에 가서 3GB 미주 패스를 구매했다. 시누이 집에는 와이파이가 있을 테니 그 정도면 일주일쯤 지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는 혹시 운전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국제 운전면허를 발급받으러 갔다. 그런데 명절 연휴라 담당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남편은 그동안 너무 바빠서 미리 신청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아쉬워했다.


언제부턴가 명절 연휴가 되면 수많은 사람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겠다고 공항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없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담당자가 없으면 면허를 발급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니 기가 막혔다. 담당 직원이 휴가를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정말 급하게 국제 면허를 발급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아주버니와 통화를 하고 짐 부치는 곳에서 만났다. 우리는 엊그제 만났는데도 평소엔 데면데면한 사이였는데도, 어찌나 반갑던지 다들 헤벌쭉 웃으며 반겼다. 여행이란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신비한 힘이 있나 보다.


우리는 출국 절차를 빨리 마치고 편하게 쉬려고 했는데 2시 30분부터 출국 절차를 시작한다는 직원의 말에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평소 같으며 빨리 처리해주지 않는 직원이 답답하다며 화를 냈을 텐데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그저 웃음이 났다. 우리는 짐 부치는 곳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가 시간 맞춰 갔더니 벌써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남편과 신나게 떠들다가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었더니, 항공사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캐나다 비자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둘은 받고 세 사람은 안 받았다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캐나다 비자가 없으면 아예 절차를 시작할 수가 없다고 했다.


걱정을 끼고 사는 남편과 내가 혹시나 해서 신청한 캐나다 여행비자 eTA가 실은 꼭 필요한 서류였다. 아주버니가 번거로울 것 같다며 미국 비자만 받아둔 게 화근이었다. 환승 시간이 짧아서 공항 밖으로 나가지도 않을 건데 비자가 꼭 있어야 하냐고 애타는 눈길로 쳐다보며 되물었지만,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캐나다 비자를 받아서 5시까지 오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일들이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머릿속에서는 그 말만 맴돌았다. 공항 직원은 캐나다 비자가 있는 남편과 나만 출국수속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 두 사람만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공항까지 왔는데, 출국장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속은 타들어 가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답답했다.


가슴속에서는 콰지직 빠지직 온갖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번개가 쳐대는데, 나는 시부모님 앞이라 방방 뛸 수가 없었다. 오히려 별일이 아닌 듯 연기를 해야 했다. 망연자실한 아버님과 어머님, 한순간에 죄인이 되어 허둥대는 아주버니, 그런 형을 질책할 수도 없는 남편과 그들을 바라보는 나. 한껏 들떠있던 우리 다섯 명은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온 날강도를 만나 빈손으로 처량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허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떡하든 5시 전까지 캐나다 비자를 받아야 했다. 지난번 집에서 컴퓨터로 남편과 내 비자를 받을 때 한나절이나 걸렸던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했다. 편리한 세상이라 모바일로도 캐나다 비자 발급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나였지만 이럴 땐 디지털 세상이 고맙기만 했다. 아주버님과 남편은 맨 위에 보이는 사이트가 열리지 않는다며 포기하려고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찬찬히 살펴보니 아래쪽에 또 다른 신청 사이트가 있었다.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아주버니가 자신의 비자를 신청할 때 나와 남편은 아버님과 어머님 비자를 신청했다. 요금이 한 사람당 캐나다 돈으로 45달러나 했다. 집에서 신청할 때보다 6배가 훨씬 넘는 돈을 내야 했다. 도둑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던 우리는 거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바로 신청 접수 메일이 오고 연이어 승인 메일이 왔다. 비싼 값을 치렀지만, 그 대가를 톡톡히 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시계를 보니 4시였다. 마음이 분주했다. 우리는 곧바로 다시 짐 부치는 곳으로 갔다. 부랴부랴 절차를 마치고 짐을 부친 다음 전력을 다해 출입국 심사대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최선을 다해 걸어가야 했다. 두 분 다 평소에는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데 시간이 없다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정말 애쓰며 걸으시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몸수색과 기내용 짐들 점검이 끝나고 나니 ‘후유!’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시간이 촉박해서 스낵바에 들러 빵이랑 음료수를 마시며 허기진 배를 달래기로 했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나를 보는 눈에서 아주 커다란 하트가 뿅뿅 터지고 있었다. 언제나 큰아들 말만 옳다고 여기며 ‘콩으로 메주를 쑨다’라고 해도 믿지 않으시던 작은아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겠다고 하시며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번에는 걱정 많은 ‘쫌생원’이 빛을 봤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옛말들이 얼마나 절절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우리는 불안에 떨던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껏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백 만년 만에 찾아온 면세점도 차창 밖 가로수를 보듯이 그냥 지나쳐 가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


하지만 많이 아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제 비행기를 탈 수 있으니까!


드디어 정말 정말로 출발한다. 하하하!!!


#인천공항

#출국절차

#캐나다경유미국행

#캐나다여행비자


*알고 보니, 2016년 봄에 캐나다를 경유하려면 무조건 여행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고 한다. 그 당시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규정이라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유학생이나 여행객 중에 곤란을 겪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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