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를 발견한 날

1675년, 아이작 뉴턴이 동료 과학자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350년 후, 2023년, 김 교수도 거인을 찾고 있었다.


막막함

30년 교직 생활, 이야기는 많았다. 1987년 첫 강의의 떨렸던 손, 1995년 박사 지도로 밤새 논문 봐주던 날들, 2005년 학과장 시절의 예산 싸움, 2015년 제자의 자퇴를 말리지 못했던 후회. 기억은 쌓여 있었고 50개는 넘었다.

하지만 어떻게 책으로 만드나? 어디서 시작하고 어떤 순서로, 문장은 어떻게? 김 교수는 몰랐다. 논문은 써봤다. 서론-본론-결론, 각주, 참고문헌, 형식이 있었다. 에세이는 달랐다. 형식이 없었다. 아니, 형식이 너무 많았다. 어떤 게 맞는지 몰랐다.


교보문고

2023년 11월 토요일 오후, 김 교수는 광화문 교보문고 4층 글쓰기 코너에 갔다. 작법서를 샀다. 세 권. 유시민 『글쓰기 특강』,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집에 와서 읽었다. 주말 내내.

세 권 모두 같은 말을 했다. "많이 읽어라." "많이 써라." "글쓰기 근육을 길러라." 맞는 말이었고 정답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멈칫했다.

정년까지 6개월, 매일 강의 2개, 행정 업무, 학생 상담. 언제 근육을 기르나? 주말은 이미 피곤했고, 60세의 새벽은 힘들었다. 근육을 길러서 쓰는 건 이상적이었지만 현실적이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작법서를 덮었다.


소문

12월 초 학과 회의에서 젊은 교수 한 명이 말했다. "ChatGPT 써보셨어요? 레포트 검사할 때 유용해요." "ChatGPT?" "AI예요. 글을 쓴다고 하던데요." 회의 후 김 교수는 검색했다. ChatGPT, OpenAI, 2022년 11월 공개, 무료. "AI가 글을 쓴다고?"

그날 저녁 8시, 김 교수는 ChatGPT를 켰다. "정년퇴임 기념 에세이 12편 써줘." 3시간, 12편 완성. 하지만 실패였다. 체온이 없었다. 동료 A교수가 말했다. "당신 목소리가 안 들려요." 김 교수는 실망했다. "역시 AI는 안 되는구나."


그날 밤

포기하려던 순간, 다시 생각했다. "방법을 바꿔볼까?" 이번엔 명령하지 않았다. 물었다. "1987년 첫 강의 경험을 쓰고 싶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AI가 답했다. "3막 구조로 나눠볼까요?" "3막?" "네. 시작-중간-끝. 아리스토텔레스가 BC 335년에 발견했어요."

김 교수는 멈췄다. "BC 335년?"


첫 번째 거인

AI가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렇게 썼어요. '시작은 앞에 아무것도 필요 없고, 끝은 뒤에 아무것도 필요 없다.' 모든 이야기는 3막이에요." 김 교수는 물었다. "2400년 전?" "네. 그리고 지금도 할리우드 영화가 이 구조를 써요."

김 교수는 놀랐다. 2400년.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BC 335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헤밍웨이, 프루스트, 무라카미. 2400년의 지혜가 쌓여 있었다.

첫 번째 거인이었다.


두 번째 거인

김 교수는 깨달았다. AI는 2400년 문학사를 알았다. "헤밍웨이는 어떻게 썼어요?" AI가 답했다. "빙산 이론. 8/9는 숨기고 1/9만 보여줘요. '슬펐다'고 쓰지 말고 행동으로." "프루스트는?" "마들렌 기억법. 감각이 과거를 불러와요. 냄새, 맛, 촉감." "체호프는?" "총의 법칙. 1막에 등장한 건 3막에 쓰여야 해요."

AI는 알았다. 2400년을. 김 교수는 몰랐다. 작법서 세 권 읽었지만 기억 안 났다. 하지만 AI는 즉시 답했다. 24시간, 질문하면 답했다.

두 번째 거인이었다.


결합

김 교수는 이해했다. 첫 번째 거인은 2400년 문학사, 원리였다. 두 번째 거인은 AI, 적용이었다. 혼자였다면 작법서 읽고, 이해하고, 적용하고, 쓰고, 고치는 데 6개월, 1년도 모자랐을 것이다. AI와 함께라면 질문, 즉시 답변, 적용, 피드백, 수정이 5분, 10분, 1시간이면 됐다. 빨랐다.

AI만으로는 안 됐다. AI는 원리를 알았지만 1987년 김 교수의 떨림은 몰랐다. AI는 구조를 제안했지만 어떤 기억을 쓸지는 몰랐다. AI는 문장을 고쳤지만 김 교수 목소리는 몰랐다. 세 번째가 필요했다. 나. 김 교수. 30년 경험, 기억, 판단, 선택.


삼각형

거인 1은 문학사(원리), 거인 2는 AI(적용), 나는 경험(콘텐츠)였다. 세 개가 만났다. 문학사가 원리를 줬다. "3막으로 가라." AI가 적용을 도왔다. "1막은 어디서 끝날까요?" 김 교수가 경험을 줬다. "강의실 문을 열 때." AI가 물었다. "그때 뭘 느꼈어요?" 김 교수가 답했다. "손잡이가 차갑더라고. 30초를 섰어." AI가 제안했다. "그럼 이렇게 써볼까요? '30초를 섰다. 손잡이가 차가웠다. 문을 열었다.'" 김 교수가 판단했다. "좋아. 이게 내 목소리야."


뉴턴 다시

1675년 뉴턴은 말했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350년 후, 2023년, 김 교수도 말했다. "나도 거인의 어깨에 올랐다."

첫 번째 거인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무라카미까지 2400년이었다. 두 번째 거인은 ChatGPT, 2024년이었다. 두 어깨 위에서 김 교수는 더 멀리 봤다. 12편을 봤고, 30일을 봤고, 가능성을 봤다.


작법서를 다시 펼쳤다. 유시민은 "많이 읽고 많이 써라"고 했지만, 이제 달랐다. AI가 있으니 근육을 기르며 쓸 수 있었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다"고 했지만, 이제 달랐다. AI가 곁에 있었다. 24시간, 질문하면 답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앤 라모트는 "완벽한 첫 초고는 없다"고 했지만, 이제 달랐다. AI와 대화하며 고치면 됐다. 첫 초고는 시작일 뿐이었다.

작법서는 맞았다. 하지만 2023년 이전의 방법이었다. 2023년 이후, AI 시대, 방법이 바뀌었다. 거인의 어깨가 낮아졌다. 오를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올랐다.


다음 편 예고: "평범함이 무기가 된 날" - 30년 교직 생활, 평범하지 않나? 김 교수의 불안과 AI의 답.


✍️ 황충연(KAY)

이 글은 『AI와 함께 쓰는 자전적 에세이: 실전 가이드』의 1장 "두 거인의 어깨"를 바탕으로 했다.

본책에는 문학사의 핵심 원리 5가지, AI 활용 구체 방법, 두 거인 결합 프로세스가 담겨 있다.

근간 예정. 사전예약 → [not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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