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과 36시간의 차이
김 교수는 60세였다. 정년퇴임까지 6개월, 30년 교직 생활, 경제학 교수였다. 남기고 싶었다. 무엇을? 책. 30년의 이야기. 강의실의 기억들, 제자들의 얼굴, 논문 쓰던 밤들, 학과장 시절, 좋았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논문은 써봤지만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2023년 11월 금요일 저녁 8시. 김 교수는 ChatGPT를 켰다. 소문은 들었다. "AI가 글을 쓴다고?"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정년퇴임 기념 에세이 12편 써줘. 주제: 30년 교직 생활." 엔터를 눌렀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화면이 움직였다. 글이 나왔다. 빠르게.
3시간 후, 12편이 완성됐다. 각 2,000자, 총 24,000자였다. 읽어봤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등불을 밝히는 신성한 사명입니다. 30년간 저는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문장은 매끄러웠고 문법도 완벽했으며 맞춤법 오류 하나 없었다.
김 교수는 만족했다. "이렇게 쉬울 줄이야." 파일로 저장했다. 『정년퇴임 에세이 12편_초고.docx』
월요일 오전, 대학 연구동 복도에서 동료 A교수를 만났다. 20년 지기 경영학 교수였다. "주말에 에세이 12편 썼어." "12편? 주말에?" "AI가 써줬어. 3시간." A교수가 원고를 요청했고, 김 교수는 이메일로 보냈다.
화요일 오후, A교수가 찾아왔다. 표정이 묘했다. "이게 정말 당신이 쓴 글인가요?" 김 교수는 멈칫했다. "무슨 말이야?" "ChatGPT가 쓴 것 같아요." "ChatGPT가 썼지." "그러니까... 잘 쓰였어요. 문장도 깔끔하고. 그런데..." "그런데?" "당신 목소리가 안 들려요."
김 교수는 원고를 다시 펼쳤다. 천천히 읽었다. "교육은 신성한 사명입니다." 김 교수는 30년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수많은 학생들." 몇 명? 어떤 학생? 이름은? 얼굴은? "인생의 등불." 상투적이었다. 진부했다. 어디선가 본 표현이었다.
문제를 알았다. 체온이 없었다. 매끄럽지만 차가웠고, 완벽하지만 공허했다. AI가 쓴 글이었다. 김 교수가 쓴 글이 아니었다.
그날 밤, 김 교수는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서재 책장 위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다. 1987년 3월 첫 강의 날 사진 한 장. 강의실 앞에 선 김 교수, 29세, 까만 머리, 회색 정장, 떨고 있었다. 사진으로도 보였다.
그날이 떠올랐다. 분필 가루, 학생 42명, 뒷자리에서 조는 학생, 창밖 은행나무. A4 용지를 펼쳤다. 라이프맵을 그렸다. 10년 단위로 20대, 30대, 40대, 50대, 60세 현재까지. 각 시기마다 10개씩 기억을 적었다. 총 50개였다.
ChatGPT를 다시 켰다. 하지만 달랐다. 이번엔 명령하지 않았다. 대화했다.
"1987년 첫 강의 경험을 쓰고 싶어. 떨렸던 순간을. 어떻게 시작하지?" AI가 물었다. "그날 아침 뭘 먹었어요?" 김 교수는 기억을 더듬었다. "토스트. 한 조각만. 목이 메었어."
"강의실 문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나요?" "30초. 아니, 더 길었을 거야. 손잡이가 차가웠어. 3월이었으니까." "첫 문장이 뭐였죠?" "기억 안 나. 분필을 들었어. 손이 떨렸어. 분필이 부러졌어."
AI는 계속 물었고, 김 교수는 계속 답했다. 기억이 돌아왔다. 29세의 김 교수가, 떨리던 손이, 차가웠던 손잡이가.
하루 2시간씩 AI와 대화했다. 질문하고, 답하고, 다시 질문받았다. Day 1은 첫 강의(1987년), Day 3은 박사과정 슬럼프(1985년), Day 5는 학과장 시절(2005년), Day 7은 제자의 자퇴(2010년), Day 21은 마지막 강의(2024년 6월)였다. 매일 한 편씩 12편을 썼다. AI는 쓰지 않았다. 물었다. 김 교수가 썼다.
총 36시간이 걸렸다. 21일, 하루 2시간.
김 교수는 A교수를 다시 찾았다. 원고를 건넸다. 같은 12편이었지만 완전히 달랐다. A교수가 읽었다. 첫 페이지, 두 번째 페이지. "1987년 3월 2일. 첫 강의. 강의실 문 앞에 섰다. 토스트가 목에 걸렸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30초를 섰다. 문을 열었다." A교수가 페이지를 넘겼다. 계속 읽었다.
5분 후. "이제야 당신 목소리가 들립니다."
10분 후. "1987년 첫 강의 이야기. 눈물 났어요."
김 교수는 물었다. "뭐가 달라?" A교수가 답했다. "체온." "체온?" "3시간짜리 글은 차가웠어요. 완벽하지만 공허했어요. 36시간짜리 글은 따뜻해요. 거칠지만 살아있어요."
김 교수는 알았다.
3시간 버전: AI에게 "써줘", AI가 썼다, 결과는 매끄럽지만 체온 없음.
36시간 버전: AI에게 "어떻게 쓸까?", AI가 물었다, 김 교수가 답하고 썼다, 결과는 거칠지만 체온 있음.
차이는 12배 시간이 아니었다. AI가 대신 쓰느냐, AI와 대화하며 내가 쓰느냐. 명령이냐 대화냐. 대체냐 협업이냐.
김 교수는 깨달았다. "AI는 대신 써주는 도구가 아니구나." "AI는 대화 상대구나." "AI는 질문하는 코치구나."
3시간짜리 글은 쉬웠다. 버튼만 누르면 됐지만 아무도 안 읽었다. 36시간짜리 글은 힘들었다. 기억을 더듬고, 대화하고, 다시 써야 했지만 A교수가 울었다.
차이는 명확했다. 체온이었다.
다음 편 예고: "거인의 어깨를 발견한 날" - 1675년 뉴턴부터 2024년 ChatGPT까지, 김 교수가 발견한 두 거인의 정체는?
✍️ 황충연(KAY)
이 글은 『AI와 함께 쓰는 자전적 에세이: 실전 가이드』의 서문을 바탕으로 했다.
본책에는 AI와 대화하는 구체적 방법, 36시간을 30일 루틴으로 나누는 법, 체온을 살리는 교정 기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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