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나는 영식이 삼촌과 한 방을 쓴다. 삼촌이 군대를 전역하고 서울의 우리 집으로 왔다. 할머니가 큰누나가 보살피지 않으면 저 놈을 망가지게 그냥 둘거냐며, 네가 데리고 있으면서 서울의 학원이라도 다니게 하는 게 어떻겠냐며, 대문을 열고 돌아갈 때까지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삼촌은 시골에서 올라온 쌀, 고추, 참기름과 함께 우리 집에 왔다. 참기름은 고소하기라도 한데 삼촌은 능글 맞고 쌀을 축낸다. 축낸다라는 표현은 엄마가 삼촌이 없을 때 쌀독에서 쌀을 퍼면서 한 말을 주워들은 것이다. 삼촌의 일과는 오전 10시쯤 시작한다. 평일에는 내가 학교에 가니 삼촌이 깨어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딱 한번 있는데 술에 취해 아침에 집에 들어온 삼촌이 나를 보더니 “가방 똑바로 매고 어깨는 펴고 다녀라”라는 말을 했다.
영식이 삼촌은 청량리에 있는 미용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어려서 손재주가 있어서 뭐든 욕심만 내면 잘할텐데 애가 물러서 그렇지, 사람은 착하다고 할머니는 자주 말했다. 학원에 다니면 보통 1년이면 자격증을 따고 졸업을 하고 미용실에 취직한다고 하는데 삼촌은 3년째 학원을 다니고 있다. 방에는 머리만 달랑 있는 마네킹 인형이 여러 개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노려보는 것 같아 보자기로 눈만 살짝 가려놨다. 머리카락은 산발을 한 채 삼촌을 노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받아쓰기 시험을 자주 본다. 공부는 잘 못한다.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하는 거라고, 애는 착하다고, 엄마는 옆집 아줌마한테 이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엄마가 불러주는 단어를 받아 적을 때 머리가 빙빙 도는 이유는 이런 걸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조금 틀려도 다 알아듣지 않나. 그게 뭣이 중하다고 사람을 이리 잡아놓고 혼을 내냐 말이다. 작대기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고, 밖으로 나오고가 사는데 뭣이 중하단 말이야!
“대충 해라. 그거 사는데 별 도움 안 된다. 오늘 저녁밥은 뭐냐?” 받아쓰기에서 틀린 단어를 20번씩 적어오는 숙제를 하는데 삼촌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게으름 게으름 개으름 개으름 개으름 개으름 개으름’ 얼른 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
학교 가기 싫다. 내일도 학교 가는 길에 옆집 개가 나를 보고 짖어대겠지. 지각하지 말고 뛰어가라는 듯, 으름장을 놓듯 무섭게 짖어대겠지.
주둥이에 마네킹 인형을 던져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