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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Aug 22. 2020

우리 집 다 팔면 너네 집 화장실 사겠네

중산층 이야기 1, 국민의 95%가 중산층 이하? 


우리 집 다 팔면 너네 집 화장실은 사겠네=지방 출신으로 상경해서 듣고 의아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서울에 ‘부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전부 다 자기가 중산층이거나 그조차도 못된다는 이야기를 자주했습니다. 부자라고 소문 난 친구들은 정말 극소수였죠. 나머지는 다 중산층 혹은 서민. 어릴 때야 그게 이상한 줄을 몰랐습니다. 부모님 주신 용돈을 술 마시면서 길바닥에 뿌리고 다니는 건 똑같았으니까요. 이제 경제활동하는 독립된 생활이 눈 앞에 닥치니 그게 좀 이상하게 보이더군요. 그 서울 친구들의 집은 신기하게 다 비쌌습니다. 지방 사람이 서울의 집값을 보고 ‘신기하게’ 비싸다고 이상해하다니,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는 순전한 대학생활을 보냈는지 이제 좀 아시겠죠. 


집이 수억, 수십억을 호가하는 친구들이 많더군요. 어릴 때도 그걸 완전히 몰랐던 건 아닙니다. 강남에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집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집에 놀러가면 우스개소리로 항상 이런 소리를 했습니다. “야 고향에 있는 우리 집 팔면 너네 집 화장실 하나 살 수 있겠다.” 집 전체 연면적에 화장실이 차지하는 면적이 한 10분의 1정도가 될까요? 26억의 10분의 1이면 2억 6천이니 얼추 가격이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그게 웃고 떠드는 소리였는데, 지금은 웃고 떠드는 소리가 아닌 게 됐어요. 나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이제 그게 민감한 사안이 돼 버린 거죠.


아파트 하나로 우리 집보다 몇 배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스스로 중산층이다, 중산층도 못 된다고 하는 죽는 소리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우리 집이 평소에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 가구도 중산층, 우리 집도 중산층, 자산 격차는 좀 나는 상황. 우리 집이 평생 열심히 일해서 모은 것의 몇 배를 가지고 있으니, 예컨대 지금까지 우리 부모님이 일하고 저축한 세월이 30년이고 그게 우리 집 자산이라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제 친구들은 제 부모님의 120년, 150년 노동의 세월보다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셈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자산이 집의 형태로 묶여 있어서 소비생활에서 보유자산의 규모를 체감하지 못하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라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혹은 빚이 많을 수도 있고요. 그것도 아니면 자기 재산이 아니라 아버지 재산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서울 친구들이 자주 얘기하는 ‘정착’이나 ‘독립’이 최대한 빠른 나이에 요지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루기가 참 어려운 목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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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층 58.3% VS 중산층 34.6%=뻔한 얘기죠. 또 당연히 이런 중산층 의식 혹은 서민의식이 제 서울 친구들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닐 겁니다. 이 ‘중산층 의식’ 혹은 ‘중산층도 못 된다는 의식’ 은 어디서 온 걸까요? 우리 국민에게 스스로 속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물어봤습니다.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중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은 58.5%입니다. 이는 OECD가 정의하는 우리 사회 중산층 실제 비율과 비슷합니다. OECD는 중산층의 기준을 중위소득의 50-150%로 정의하는데 현재 국민의 58%정도가 중산층이라고 합니다. 비슷하죠?


반전은 여기서부터입니다. 문체부 담당 2019년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에서는 ‘중산층인지 여부’를 직접 묻습니다. 당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 비율은 34.6%뿐이었습니다. ‘사회경제적 지위 중’이라고 물으면 58%가 내가 중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중산층이냐고 물어보면 그 수치가 급락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치관 조사에서 60%가 ‘중산층도 못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즉 우리 사회 95%가 중산층 이하라는 것이죠. 5%만이 중산층보다 잘산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중간층이냐고 물으면 58%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실제 소득 기준 중간층 규모와 비슷한 수치가 나옵니다.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그런데 중산층이냐고 물으면 34.6%만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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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산 7억 7천만 원은 있어야 중산층?=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중산층’이라는 집단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밑으로는 입구컷이라는 얘기죠. NH100세시대연구소의 따끈따끈한 2020중산층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들이 순자산 7억 7천만 원에 월 소득 622만 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2013년 한국사회학회 조사 결과는 더 심각합니다. 10-11억은 있어야 하고 월소득 570-580만 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10년대 이후 중산층 기준을 조사한 설문들의 결과를 종합하면 대개 순자산 7-10억 원 이상 보유, 월 소득 600만 원 이상이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잠재적으로 합의한 기준으로 보입니다. (NH증권 100세시대연구소 2020년 조사, 현대경제연구원 2014년 조사, 한국사회학회 2013년 조사 등 종합 평균).


어떤 가구가 순자산이 7-10억 원을 보유하고 있고 연 7천만 원 이상(월 소득 600) 번다고 해봅시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가구 상위 몇 퍼센트일까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순자산 7억 원 이상 보유 가구는 상위 12.6퍼센트 가구이며 10억 원 이상 보유가구는 상위 6.8퍼센트입니다. 월 소득 500-600만 원을 연 소득 6천만 원 이상으로 잡을 경우 상위 27.9퍼센트, 연 소득 7천만 원 이상으로 잡을 경우는 21.3퍼센트입니다.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가구는 최소 교집합인 12.6퍼센트보다 적다고 봐야 하겠죠. 최소 상위 10% 안쪽에 들어갑니다. 한편 NH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기준 한국 중산층의 순자산은 3억 3천만 원에 월 평균 소득은 488만 원이라고 합니다. 갭이 좀 큽니다.


우리가 상위 10% 안쪽 가구를 중산층이라고 생각을 하니 국민의 95%가 스스로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기준이 과도하게 높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다고 보고서, 설문조사, 연구를 수십 개를 찾아봤는데 하나 같이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과도하게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개만 꼽아보겠습니다. NH증권 보고서는 이를 두고 “중산층은 이상적인 중산층의 모습으로 중상층(中上層)을 그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재열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014년 12월 국회 세미나 발제에서 중산층들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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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문화적 지위, 연상 이미지는 강남, 아파트, 안정, 여유=아니 대체 왜 이렇게 기준이 높게 형성된 걸까요? 이는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이 경제적 계층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지위’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 높은 기준이 중산층에 대한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와 잡코리아가 2019년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2.2%(복수 응답)가 ‘여유로운 생활과 삶의 질’이라 답했고, ‘상당한 수준의 소득과 자산’(67.9%)이 뒤를 이었습니다. 리서치 전문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2017년 조사결과도 비슷합니다. 중산층 자유 연상 이미지로 ‘아파트 등 주택 소유자’가 30퍼센트, ‘돈 걱정 없(이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이 27.1퍼센트, ‘중형차 이상 차량 소유’가 18.2퍼센트, ‘안정된(정규직) 직장인’이 16.4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사회학회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여유, 부자'가 40.9퍼센트, '고급 주택, 아파트 보유'가 10.6퍼센트, '주택 소유, 부동산'이 9.9퍼센트를 차지했죠.


다시 말해 우리가 중산층의 이미지를 ‘강남’, ‘집’, ‘아파트’, ‘여유’, ‘안정’, ‘돈 걱정 없는 생활’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 2006년 조사를 진행했던 조동기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후 논문에서 응답자들이 "재산과 소비 등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중산층을 생각하고 있"다며 "특히 고급주택, 고급 승용차, 명품, 강남 등 상층적 속성을 중산층과 연관시키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학계는 이 같은 이미지가 1980년대에 굳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산층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 중반으로, 중산층은 단순한 ‘경제적 중간 소득 계층’, 또는 ‘사회·문화적 중류층’으로 인식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주택 투기 열풍으로 자산으로서 주택 소유가 중요해지면서 내 집 마련 여부가 중산창의 주된 기준으로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80년대 사설을 뒤져보니 1987년 5월 19일 매일경제 사설은 중산층을 “경제측면에서 보면 안정된 소득과 자산을 보유한 사람”이라 명시하고 있더군요. 이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부 위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일자리, 소득, 자산을 보유한 ‘안정성’과 ‘여유로움’의 이미지가 강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사실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주택공급을 할 때 공무원, 교수 등 안정적 봉급 생활자 위주로 공급을 했습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특히 서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이들은 도시 하층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이 보기에 아파트를 우선적으로 공급받는 이 중류층 봉급 생활자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요? 아파트를 가진 중간 수준의 봉급 생활자들은 교수, 공무원, 전문직, 기업 사원들 등 화이트칼라였습니다. 이들이 강남개발의 동력을 타고, 또 신도시 개발 동력을 타고 ‘아파트’, ‘중형차’, ‘전문직’ 등의 중산층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죠. 또 IMF 이후에는 언급한 것처럼 ‘경제적 쪼들림에서 자유로움’의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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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지금 우리가 마주한 바로 그 상황이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뉴노멀이 왔습니다. 이제 노동소득으로는 절대 자본소득을 따라갈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집, 중형차, 여유, 안정을 가지고 있다는 중산층의 지위는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겁니다. 95%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 이하'이라고 대답하게 될 것이고 그 중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살게 될 겁니다. 그들 중에서 '진짜 서민'은 얼마나 될까요? '과장되고 범람하는 서민의식.'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고도성장 시기 형성된 중산층 개념이 과연 지금과 같은 저성장시대에 부합할까요? 혹시 이 고정된 중산층 개념이 모든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관련 내용이 2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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