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리즈 1, 투기수요 해부하기
0.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 중에서
마침내 인간은 탐욕스러운 야심이나 진정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재산을 늘려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 때문에 서로를 해치려고 하는 옳지 못한 경향을 불러일으키고, 더욱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친절의 가면을 쓰기 일쑤이기에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은밀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경쟁과 대항이,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의 대립이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남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숨겨진 욕망일 뿐이다. 이 모든 악은 소유가 낳은 최초의 결과이며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불평등과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부를 나타내는 표시[화폐]가 발명되기 전에는 부는 주로 토지와 가축만으로 이루어져 있어다. 그것이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실질적 재산이었다. 그런데 상속 재산의 수나 범위가 늘어나 땅 전체를 덮고 서로 경계를 접하게 되자,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자기 재산을 늘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무력하거나 무관심했기에 제대로 상속을 받지 못한 자들은 주위의 변화를 따라가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지만 가난뱅이가 되었고 부득이 먹고 살 것을 부자에게서 얻거나 빼앗아야만 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 각자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책세상, 112쪽)
1. A씨는 투기꾼인가?
누가 투기꾼인가? 뉴스1은 서울 사는 다주택자 A씨를 찾아냈다. 그는 결혼 적령기인 아들, 딸을 생각해 한강 이북 전세 낀 아파트를 사모았다고 한다. 평생 소비를 아껴 아파트 두 채를 더 장만한 셈으로,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 산 것이지 투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7.10 부동산 대책으로 종부세 폭탄을 맞게 된 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421&aid=0004748921)
A씨는 실수요자인가, 투기꾼인가?한 부동산 연구자는 “지금 시장을 보면 30대가 대거 대출을 받아서 들어와 있는데, 전례가 없는 현상으로 사실상 전 국민이 부동산을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라고 상황을 분석했다. 진입하는 30대는 투기꾼으로 봐야하나, 실수요자로 봐야하나. 구분이 어렵다. 무주택자조차 나선으로 회오리치며 오르는 주택가격 상승장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누가 그들의 머리를 뜯어서 한번 분석해서 비율을 좀 따져보면 정확하겠다. 나도 덕 좀 보자 vs 집 한 채만 받자. 어떤 마음이 클까.
더 무서운 점은 이 두 소망이 결코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 더 무서운 점은 이 두 소망이 서로 엉겨 붙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해도 시장은 그 뜻을 받지 않는다. 투기수요는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동안 규제의 틈새로 흘러다니며 부동산 시장을 완벽히 장악했다. 정부가 22번이나 대책을 썼는데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3년짜리 정책으로는 잡을 수 없을만큼 그 뿌리가 깊고 튼튼하다는 뜻이다. 바로 두 소망이 엉겨 붙은 그 ‘선량한 탐욕’의 뿌리가 말이다.
2. 공급이 늘긴 했는데 그게 무주택자 몫은 아니다
오늘날의 주택체계는 언제부터 형성됐나. 김명수 서울대학교 박사(<내 집에 갇힌 사회>내용을 상당부분 옮겼습니다, 아주 좋은 책 완전 강추! 좀 어렵긴 하지만..)는 한국 주택사장을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자가 소유’와 ‘나머지 민간임대(전, 월세 등)’라는 이중 점유 구조로 파악한다. 즉 집을 소유한 비율은 적고, 전월세 임대형태는 많으며 이 둘의 구분이 명확한 시장이라는 설명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데(사실 박사님 논의는 더 복잡하다. 주택 공급과 금융제도까지 같이 파악하기에), 이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해보면 당연한 얘기도 새롭게 와 닿는다.
자가점유율. 즉 자기 주택에 살고 있는 가구의 비율을 보면 70년대 이후 계속 떨어진다고 한다. 90년에 49.9%를 찍은 후 50% 중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5년 자가점유율은 56.8%로 1980년대 초반 수준으로 복귀했다(김명수 23쪽). 주택보급율을 보면 80년대 중반부터 계속 상승해 100%를 넘겼다. 즉 자가점유율과 주택보급율의 차이가 30년 동안 심화되고 있다. 자가점유율은 50% 중반에서 정체돼 있고, 주택보급율은 100%를 조금씩 상회하면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가점유가 정체돼 있다는 말은 곧 전, 월세에서 자기 집 소유로 넘어오는 데 높은 장벽이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 지난 30년은 그랬다. 전세와 매매를 20년간 분석해보니 또 반비례 관계에 있다고 한다. 매매가 상승 시기에는 전세가 상승이 지지부진하고, 매매가 상승 추세가 부진할 때는 전세가가 가팔라졌다는 뜻이다. 요컨대 매매가 하락시(주택 가격 하락시) 사람들은 주택을 사는 대신 전, 월세로 빠르게 전환했다. 그게 몇 십년간 주택시장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김 박사는 86년부터 예비 주택 수요자를 가리키는 ‘입주자 저축 가입자 수’ 변동으로 이를 추적했는데, 신기한 일이다. 주택 가격 상승기에는 청약제도 가입자가 늘었고, 상승 둔화기에는 가입자가 감소했다. 가격이 떨어지면 내 집 마련 급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수요가 높아져야 하는 것 아니가? 왜 이들은 가격이 오를 때 들어가나? 이는 결국 사람들이 주택가격 상승시기, 즉 집으로 얻을 수 있는 자본이득이 클 때 집을 사려고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내 집 마련’이라는 순수하고 선량한 거주목적이 주택 수요의 정체라는 주장은 86년부터 추적한 데이터와 맞지 않는다. 그런 순수한 부분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보이는 것은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 즉 자산증식에의 욕망이다.
자가점유는 정체됐는데 주택보급은 계속 늘었다. 즉 공급물량이 무주택자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누가 공급물량을 챙겼는가? 다주택자다.김 박사가 정리한 데이터를 보면 다주택자의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난다. 다주택 소유자의 수는 1990년 전체 소유자의 6.8%에서 2015년 14.4%로 늘었다. 보유 주택 역시 14.6%에서 21.1%로 증가했다. 가구 기준으로 2015년 전체 소유 가구의 25.5%가 43.6%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다주택자의 규모는 점차 커졌다. 새로 공급된 주택은 무주택자가 아닌 다주택자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집을 공급하고, 주택 대출이 용이하게 금융을 만진 정책의 취지는 무주택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었다.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지난 30년 동안.
3. 전체 주택 소유 가구 1/4이 투기꾼?
그런데 이 공급물량을 가져간 다주택자를 투기꾼이라 부를 수 있나? 이는 2015년 기준 전체 주택 소유자의 14.4%, 전체 주택 소유 가구의 25.5%를 투기꾼이라 부를 수 있는지의 문제다. 대한민국에서 집 가진 국민의 15% 가까운 사람들이 투기꾼이라니.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투기꾼이라 부르기엔 그 규모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한 국가에서 집 가진 사람의 15%가 투기꾼일 수는 없다. 집 가진 가구의 1/4이 투기꾼인 상황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투기적 행태를 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투기꾼’이라는 도덕적 멸칭을 붙이기에는 1/4이라는 비율은 너무 크고 일반적이다. ‘투기꾼’이라 매도하기엔 다주택 보유, 다주택 매입이 일반화된 행태라는 뜻이다.
이 흐름 속에 위의 A씨가 있다. 아들, 딸이 독립할 미래를 위해 서울시 중위가격 이상 아파트 2채를 쟁여 놓은 ‘선량한 아버지’말이다. 박해천 교수의 <아파트 게임>에 조금 더 극단적인 사례가 등장한다. 1944년생 조모 씨는 1970년대 후반 반포의 22평 아파트를 시작으로 1990년대 초반에는 분당에 아파트 한 채, 2000년대 초반에는 한 해에 네 채의 아파트를 사들였다. 손에 자녀 명의의 아파트를 포함해 모두 여섯 채의 아파트를 쥐었던 것이다. 또한 박 교수는 <주거신분사회>에 등장한 1965년생 한모 씨 사례를 소개한다. 한 씨는 전세로 신혼살림을 시작해, 2000년대 부동산 폭등기를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11억에 산 주상복합 아파트는 30억 원대로 올랐고 이외에도 두 채의 집이 더 있다.
이게 소수의 부자 얘기 같다고? 2000년대 주택 담보대출 등 주택 금융의 시작은 이를 ‘모든 사람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내 아버지 세대, 그 중에서 몇 차례 부동산 찬스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 특히 서울 사람들은 얼마나 이를 갈고 기다렸을까. 주택 금융은 총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이 같은 다주택 소유를 가능케 했다. 주택 금융은 시작부터 투기적인 가계금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아들딸이 얼마 전까지 이슈가 됐던 30대 갭투자자들, 지금 ‘패닉바잉’ 중이라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지금 언론이 30대를 호명하는 단어는 ‘영끌대출’(영혼까지 끌어 모으는 대출)이다. 이 현상은 모을 수 있는 만큼 대출을 모아 쥐꼬리만 한 자기자본으로라도 일단은 주택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의 표현이다. 곧 세대의 비명이자, 시대의 비극이다.
부동산은 그 자체로 돈이 된다. 부동산 관련 소득은 임대 소득과 자본 소득으로 갈린다. 쉽게 말해 임대 소득과 매매 차익의 합산이 부동산 소득이다. 김명수 박사 연구에 따르면 이 소득은 27년간 증가했다. 특히 2007년 이후 투기 목적에서 주거와 소유를 분리한 이들, 쉽게 말해 갭투자자들의 임대소득이 엄청나게 늘었다. 2007년 이후 다주택자들이 제일 많이 벌고, 그 다음 많이 버는 게 갭투자자들이다. 자가거주자와 무주택 전세, 월세 가구가 차례대로 계층을 이룬다. 이는 신 경제계급이다. 집 소유 유무라는 자산의 차이가 이제 소득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 차이는 계속 커지고 있다.
즉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해 한국 주택 체계를 정리하면 이렇다. ‘자가 소유’의 문턱만 넘어가면 게임이 쉬워진다. 주거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고, 자산 축적도 가능하다. 따라서 ‘자가 소유’가 게임의 기준이 되는 만큼, 지금 30대는 이른 시기에 ‘승자’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한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 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놀라우면서 당연하고, 또 상징적인 아이러니가 나타났다. 종부세 개혁 등 투기억제책을 취했음에도 강남/수도권/2기 신도시 개발 등으로 호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가격은 더욱 오르고 자가 주택 소유에의 길은 더욱 험난해졌으며 집 있는 사람들에게만 꽃길이 펼쳐졌던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시장의 패닉바잉이자 다주택자들의 버티기다. 주택은 이제 투기 수단이면서, 자산 증식 수단이고, 또 동시에 생존수단이 됐다. 노무현 정부조차도 자가주택 소유자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했으며 심지어 개발호재로 집값은 올랐다. 이제 다주택자들뿐만 아니라 1주택자들에게 집값 하락은 사실상 전쟁 중에 무장해제가 이뤄지는 것이다. 주택을 둘러싸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내 집값만 하락한다? 나는 오늘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잃는다. 이는 곧 존재적 기반의 상실이다. 나와 내 가족의 주권이 집에 착 달라붙어 있는 꼴이다.
4. 선량한 1주택자
내 주권이 곧 내 집인 1주택자의 경우를 보자. 15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1주택자의 경우 세금이 올라 400만원가량을 보유세로 내야 한다. 15억짜리 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직장인 한 달 치 월급을 내는 게 맞냐며 목에 핏대를 세운 성토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특히 은퇴한 사람의 경우 이 같은 과세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경우도 있다. 1가구 1주택자는 부동산 투기를 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불이익을 당할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15&aid=0004378646&date=20200712&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1)
그런데 이 같은 15억 아파트는 대개 10년 사이 2배가 뛴 경우가 많다. 이들 1주택자들에게 이 같이 갑작스러운 재산 증식은 어떻게 다가올까?이를 어떻게 스스로 납득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은 이를 아무런 대가 없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인생사 운에 달렸다고 그냥 로또라고 생각할까? 로또조차도 세금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 것이다. 특히 불로소득일수록 그 부담이 커야 한다는 원칙도 알 것이다. 그럼에도 자가 주택 소유자들은 오랜 세월 주택 가격 상승이 주는 자산가치 상승을 당연하게 여겨왔으며 그와 같은 행태를 ‘정상적’이라고 여긴다. 노무현 당시 종부세 개혁은 수도권 아파트 단지 중산층들의 격렬히 반대로 실패했다. 이를 김명수 박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주택이 주는 자본이득에 기대 삶을 꾸려온데다가, 가족의 경제적 안전과 생존을 보장하는 원천으로서 자가소유권에 대한 의존이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중산층 소유자 가구는 점차 개혁을 자신들의 삶 전체를 침탈하는 위협으로 간주했다.” (내 집에 갇힌 사회, 창비, 229쪽)
순자산 10억은 한국에서 중산층일까? 2019년 순자산 10억 이상 가구의 비율은 7%다. 나는 서울에 있는 1가구 1주택 소유자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들의 논리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과세 정책이 ‘서민 죽이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연금이나 소득이 적다고 해도 15억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1주택자가 서민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2019년 대한민국 평균 가구 자산인 3억 5천만 언저리에 있는 진짜 서민 가구 입장에서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놀라운 사실은 인터넷 상에서 1주택자 과세에 반발하는 댓글의 주된 논리가 “열심히 노력한 게 죄냐”는 것이다. 그러나 1주택자 보유세 강화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몫이 아니라, 그들 집의 불로소득적 가격 상승에 대한 세금이다. 왜 이들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나? 이들 1주택자가 곧 자기 집을 산다는 것, 자기 집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를 그 집에 따라오는 ‘모든 자본이익에 대한 독점’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노력을 해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해서 산 집이기에 그 가격 상승분에 대한 독점은 정당하며, 그를 회수하려는 세금은 삶의 기반, 자신의 존재, 가족의 주권에 대한 위협이다.
5. 소결: 기묘한 사회
정리하면 30년 사이 자가 주택 소유와 그에 따른 이익 추구를 정당하고 ‘신성시’하는 관념이 공고해졌다. 30년간 부동산 소득의 꾸준한 증가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관념과 사실이 서로를 공고하게 하며, 이 악순환이 다주택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도 다주택자가 되고 싶어하는 기묘한 사회를 만들었다. 따라서 누구는 다주택자가 돼서 집을 긁어모으고 있고, 누구는 갭투자자가 돼서 옮겨 다니고 있고, 누구는 1주택자로서 자가 소유 주택의 신성성에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순교자가 됐다.
그 밑에 전, 월세를 전전하며 주택 소유자에게 돈을 내거나, 자산 폭등의 흐름을 체념적으로 구경할 수밖에 없는 무주택자가 있다. 동시에 수도권에서 펼쳐지는 이 부동산 아비규환의 밖에 시간의 흐름에서 정체되고 소외된 지방 사람들이 있다. 이 악순환은 30년간 지속 중이지만, 정권의 정책은 기껏해야 5년이다. 약발이 먹힐 리 없다. 다주택자들이 온갖 규제에도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이유이며, 매도 공급 물량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또한 다주택자에서 나오는 매도 공급이 없기에 얼마 안 되는 신규 공급 물량을 두고 세대 전쟁이 벌어진다. 20년 동안 청약저축을 했던 4050대와 도저히 들어갈래야 들어갈 틈이 없어서 좌절 중인 30대, 그리고 자신들 몫은 애초부터 없음을 직감 중인 20대의 갈등이 그것이다. 이 구조에서는 모두가 모두에 대해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정부와 경쟁자로서 다른 세대를 욕하며 이미 집을 가진 ‘성공한 사람들’을 영원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외와 질투가 판치는, 모두가 우울한 부동산 공화국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2&aid=0003020087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어떤 해악이 있나 등, 다음 편에 계속)
-일단 흔히 투기 수요라고 하는 부분에 제 의견을 썼습니다. 의견 있는 분들은 언제든 댓글로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