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니 Nov 06. 2020

약방 호은당

<외전 4-원하던 엔딩>




<외전 4-원하던 엔딩>


 은석이 놈의 와이프에게 약을 전해준 다음 날, 이제는 업무용 폰이 된 이전 전화기로 은석이 놈이 전화가 왔다. 나는 긴장된 목소리를 애써 숨기고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오냐. 삼배는 공손하게 하고 처 잤나.”


 -... 저, 하나예요.


 “아, 예. 하나 씨. 죄송합니다. 저는 은석이 놈인 줄 알고... 은석이는요?


 -... 보름 병원 장례식장에... 옮겼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툭. 전화기를 떨어트렸다. 우민이가 잽싸게 전화기를 주워 은미 씨에게 건네는 것을 보았다. 은미 씨가 대신 전화를 받아 무어라 말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냥, 그냥... 그냥.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장례식장? 죽었다고? 그놈이? 은석이가? 내 친구가? 죽었다고? 나는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은석이가 죽었다. 그것밖에 머릿속에 남은 것은 없었다. 죽었다. 친구가 죽었다. 나는 멍한 눈으로 사사사 소리 내며 흔들리는 보리수나무를 바라보았다.


 “정우 씨, 옷 갈아입고 오세요.”


 흐릿해지는 눈을 끔뻑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은미 씨는 까만 옷을 입고 있었다.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누가 밀었다. 우민이었다. 아. 그래. 우민이.


 “형, 호은당은 제가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바쁘면 연화 누나 오라고 할게요.”


 정신이 들었다. 그래. 정신을 놓고 있을 게 아니다. 빨리 가보자. 가서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자. 약을 분명히 줬는데. 분명히 어제저녁, 하나 씨가 약을 먹였다고 문자도 왔었다. 분명히 그랬는데. 갑자기 죽었다니. 말도 안 된다.

 나는 그냥 잡히는 대로 검은 옷을 꺼내 마구 입었다. 허둥지둥 달려 나오니 은미 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나는 세상이 이렇게 흐리고 부연지 몰랐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비라도 오는 걸까. 얼굴이 축축했다. 나는 병원으로 가는 동안, 하염없이 울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부러 약도 주셨는데...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하나 씨는 그 와중에도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바닥에 엎어진 채 엉엉 울었다. 이 나쁜 새끼. 나중에 우리 애들 낳으면 같이 여행 다니기로 했잖아. 너 일어 잘하니까 일본 가이드는 맡겨 두라면서. 이 치사한 놈. 지 혼자 훌쩍 가면 좋냐. 이 새끼야. 시발 놈이... 네 놈은 친구도 아니다. 개새끼야. 귀신한테 홀려서 친구도 마누라도 가족도 다 버리고.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면 뒤지게 처맞고 세 대 더 처맞아야 돼. 알아?


 나는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너무나 허무하고 허탈했다. 은미 씨는 상 위에 차려진 수육과 소주를 끌어당겨 내 앞에 놓아주었다. 부연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다 소주 두 잔을 마셨다. 그래. 네 놈 가는 길에 내가 술이라도 빨아 줘야지. 아니, 시발. 뭐 예쁘다고 같이 술 마셔 주냐? 순 나쁜 새끼. 안 먹어. 시발.


 “말씀하신 대로, 저녁에... 약을 먹으라고 했어요. 밥도 안 먹고 쉬고 싶다, 피곤하다 하면서 자려고 하길래... 제가 소사님을 뵙고 왔다고, 당신 낫게 하는 약이니 제발 먹어달라고 빌었어요. 그랬더니... 처음엔 거절하다가... 소사님이 보내 놓으신 코톡을 보긴 봤는지... 그냥 마시더라고요. 맛없네. 하면서요. 약도 먹고... 죽도 한 그릇 다 먹고... 그러고 자러 갔어요. 근데 왠지 자꾸 불안하고 무서워서... 같이 있기 너무 무서워서... 장도 좀 볼 겸, 잠시 나갔다 왔어요. 다녀오니 자고 있더라고요. 또... 괴상한 신음을 내면서요... 그래서 저는 작은 방에 틀어박혀서 문 잠그고 잤어요. 자정쯤인가, 갑자기 그이가 쿵쾅거리면서 나오더니 방문을 막 두드리더라고요. 잠결에 문을 열었는데...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무슨 약이냐고... 소사님이 주신 약이 확실하냐고 몇 번을 소리치면서 묻더라고요. 맞다고, 정말 맞다고... 빈 양병을 다시 보여주었어요. 바닥에 찍힌 호은당 글자를 보여주면서요. 그랬더니 저를 한참 노려보다가... 병을 던져버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저는 그 길로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정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워서...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어머님께서는 당장 시댁으로 오라고 하셨고, 저는 그 밤중에 시댁으로 갔고, 아버님이랑 두 아주버님이 부랴부랴 저희 집으로 가셨어요. 그리고 새벽에 연락을 받았는데... 그이가... 죽었다고...”


 하나 씨는 제법 차분하게 설명했다. 은미 씨는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안쪽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은석이의 형제들과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수심 깊은 그들도 이미 은석이의 상태를 아는 것 같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들이자 형제인 은석이의 영정사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슬픔과는 다른 또 다른 감정을 그들은 담고 있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어요. 수면제, 감기약, 해열제, 소화제... 약이란 약은 죄다 털어 먹어서... 급성 쇼크로 심장마비가 왔대요. 아버님이랑 아주버님들이 방문을 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뭘로 막아 뒀는지 열리지가 않았대요. 몇 시간을 끙끙거리면서 문을 밀고... 결국은 119를 불러 안방 창문 쪽으로 진입했는데... 그이가... 침대 위에 잠든 것처럼 죽어 있었대요. 온 침대에 사정을 해 놓고요.”


 시발. 나는 또 한 잔의 술을 들이켰다. 개새끼. 심장마비가 아니라 복상사네. 귀신이랑 지랄 널을 뛰다 뒤진 거. 나 참. 너 가는 길에 술 먹어주기 싫어졌다. 시발. 술맛 떨어져서 너 가는 길 배웅도 못 하겠다. 더러워서 진짜.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런 놈 아니었잖아. 너 그런 놈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마무리는 이렇게 됐지만... 뭐가 됐든, 그이 소원대로 됐으니 저는 됐습니다. 제게 마지막까지는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니... 저는 좋게 보내주려고 합니다. 약값은 얼마를 더 드리면 될까요?”


 하나 씨는 씩씩하게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너는 정말 복이 많은 놈이다. 이런 부인을 두고 고작 귀신 따위에 홀려 목숨을 버리다니. 멍청해도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 똑똑하고 이성적이고 건강했던 놈이었는데.


 “안 그래도 약값 때문에 제가 직접 왔습니다. 우선은 이거 받으시고...”


 은미 씨는 조의금을 담은 노란색 봉투를 건넸다. 아. 나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 씨는 받지 않는다며 극구 사양했다.


 “이건 소사님이 준비하신 겁니다. 지금 충격이 너무 커서... 제가 대신 전해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받으시고, 이건 일전에 주셨던 약값입니다. 이것도 돌려받으십시오.”


 “아니, 약값은 왜... 터무니없이 모자랍니까?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곧 회사에 큰 건이 마무리되는데, 그거 마무리되면 여윳돈이 조금 생기니까...”


 “아니요. 약값은 다른 걸로 받겠습니다. 안방 옷장 제일 구석에 있는 빨간 꽃이 그려진 쓰케사게와 붉은 보석이 달린 머리장식. 그걸 주십시오. 일본식 의복입니다. 약값은 그것으로 하겠습니다.”


 “예? 집에 그런 옷은 없는데...”


 “있습니다. 반드시 이 보자기에 싸서 잘 묶은 다음, 튼튼한 가방에 넣어 퀵서비스로 보내주십시오. 그것이 약값입니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 소주 석 잔에 취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저 말들이 오른쪽 귀로 들어와 왼쪽 귀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멍하게 소주잔만 채우고 비우길 반복했다.

 호은당으로 돌아온 뒤, 나는 사랑채에 처박혔다. 은미 씨가 가둬버렸다. 사랑채 안에서 나는 실컷 울었다. 마음껏 울었다.


 처음 그 녀석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더럽다느니 미쳤다느니 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들어줬어야 했다. 은미 씨에게 너무 늦게 말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고는 했지만, 당장 말하고 약을 받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놈을 설득해야 했다.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벨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탓이다. 내가 녀석을 죽게 만들고 말았다. 정말... 이건 내 탓이다.

 내가 은석이를 죽였다.

 그날 저녁 내내 울다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밤이 되어 방으로 온 우민이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죄책감은 여전히 내 목에 매달려 있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후회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민이는 품에서 맥주 한 캔을 살그머니 꺼내 내밀었다. 같이 내미는 밥공기에는 약과 다섯 개가 담겨 있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민이는 빙긋 웃었다. 그래. 우민이도 웃었다. 나는 맥주를 단 번에 비워버리고 자리에 누웠다.




 며칠 뒤, 퀵서비스 기사가 대문을 두드렸다. 우민이가 쪼르르 달려갔다 왔다. 돌아오는 녀석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 세 개가 들려 있었다. 은미 씨는 가운데 거, 내 거. 하면서 쏙 빼내 방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나와 우민이가 풀어보았다. 이거, 요즘 디게 인기 많은 브랜드인데! 하며 우민이가 신난 얼굴로 옷들을 꺼냈다.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셔츠와 바지들이 나왔다. 아. 하나 씨가 무슨 쇼핑몰 한다더니, 의류 관련 쇼핑몰을 하는구나. 우민이는 신나서 이거 입어도 돼요? 누구 거예요? 물어댔다. 나는 하나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네. 그거 저희 이번 신상인데 약값으로 그 옷만 보내기 좀 민망해서... 같이 몇 벌 넣었어요. 소사님 입으실 거랑, 약사님 입으실 옷이랑... 제가 눈대중으로 사이즈를 재긴 했지만, 아마 맞으실 거예요. 제가 이 바닥에서 좀 오래 일 했거든요. 혹시 옷이 안 맞거나 불편하시거나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호은당에는 무조건 공짜로 드릴 거니까요!


 하나 씨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덧붙였다. 나는 전화를 끊고 은미 씨의 옷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겼다. 그거 너 다 입어. 하자 우민이는 정말 팔짝팔짝 뛰었다.


 “은미 씨, 이거 은미 씨 입으라고... 그게 그겁니까...?”


 은미 씨는 빨간 꽃이 소매 끝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일본식 의상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비춰보고 있었다. 아주 흡족한 얼굴을 하고 말이다. 나는 대번에 기분이 가라앉는데. 그녀는 틀어 올리고 있던 머리의 비녀를 빼고, 찰랑거리는 붉은 장식이 달린 일본식 핀을 꽂았다. 저러니 또 일본 사람 같네. 나는 아직 기분이 그저 그런데.


 “마음에 드시나 봐요. 그 옷.”


 “호호호...”


 은미 씨는 호호, 웃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 위로 하얀 무언가가 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뭐지? 방금 그거. 소름이 와다다 돋아나, 나는 얼른 쇼핑백을 내려놓고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신난 우민이와 떠들며 조금 전의 상황을 잊으려고 노력하는데, 은미 씨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폈다. 허연 그림자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아, 피곤해.”


 은미 씨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폈다. 나는 그녀를 조용히 훔쳐보다 고개를 돌렸다.





작가의 이전글 약방 호은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