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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니 Nov 09. 2020

약방 호은당의 뒷이야기

<에피소드 12-귀접> 해설




<에피소드 12-귀접>


※태을신정단

…온갖 나쁜 독을 치료하는 단약이다. 귀신을 퇴치함은 물론이고 귀신이 꿈에 나타나거나 가위에 눌릴 때에도 효과가 있다. 제조 과정이 복잡하고 매우 까다롭다. 제조 시 진액에서 다섯 빛깔을 내는 쪽이 최상품이며 색깔이 적을수록 질이 떨어진다. 새하얀 광채가 나도 좋은 제품이라고 한다. 재료로 자석이나 금니가 들어가는 독특한 묘약이다.

 단사, 증청, 자황, 웅황, 자석, 금아를 정해진 용량대로 준비한다. 단사, 웅황, 자황은 식초에 담가 둔다. 증청은 밀봉해 100일간 햇볕에 다. 그 후 모든 재료를 갈아서 육일니 연고로 밀봉한다. 가마를 삼발이 위에 올리고 불을 땐다. 이때 가마에 불길이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4시간을 떼면 가마 뚜껑에 진액이 들러붙게 되는데 이것을 닭의 깃털로 쓸어서 손가락 한 마디만 하게 환약을 제작한다. 아침 빈속에 한 알을 먹는다. 「동의보감」

 -정우 씨가 친구 은석 씨를 만나고 온 날, 아침에 먹으라며 은미 씨에게 받은 약이 이 태을신정단이다.


※피난대도환

… 허기를 막아주는 환약. 이 묘약을 먹으면 식물의 싹, 잎, 줄기 등을 먹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풀만 조금 먹어도 종일 배가 부르는 것이다. 또 수상한 풀이나 독초를 먹어도 독이 해독되며 마치 밥을 먹은 듯 포만감을 느끼고 단맛마저 느끼게 된다.

 흑두, 관중, 감초, 복령, 창출, 사인이 필요하다. 흑두는 껍질을 까놓는다. 관중, 감초, 복령, 창출, 사인을 잘게 부수어 물 다섯 잔을 붓고 까놓은 흑두를 넣어 볶는다. 불은 최대한 약하게 조절하며 물이 다 사라질 때까지 천천히 졸인다. 남은 건더기들을 잘게 빻아서 반죽한 뒤 환약을 만든다. 완성품은 사기그릇에 넣고 밀봉하여 보관한다. 이 약은 한 알만 먹어도 효과를 보는데, 아무 나무나 풀을 먹어도 배가 부르고 단맛을 느낀다. 「동의보감」

 -정우 씨의 친구 은석 씨가 원하는 약 중 하나.


※천금초

…한 숟갈만 먹어도 100일간 배가 고프지 않게 되는 분말형 묘약이다. 피난대도환은 식물의 잎이나 풀, 초목 등을 먹어서 버티는 약이라면 천금초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보관을 잘하려면 비단 주머니에 넣어두면 된다. 이렇게 하면 10년은 보관할 수 있다.

 밀(꿀), 백면(메밀가루), 향유(참기름), 백복령, 감초, 생강, 건강(말린 생강)을 분량대로 준비한다.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축축한 종이에 싸서 구워둔다. 모든 재료들은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든다. 가루들을 반죽하여 큰 덩이를 만든다. 이 덩어리를 쪄서 익힌다. 이를 음지에서 말리고 가루를 내어 보관하도록 한다. 한 숟가락을 시원한 물에 넣어 음용한다. 「동의보감」

 -정우 씨의 친구 은석 씨가 원하는 약 중 하나.


※복신산

… 반려자가 꿈에서 귀신을 보고 교접하는 경우를 치료하는 분말형 묘약이다. 꿈에 나타나는 귀신인 몽마에게 씌면 보고 듣는 것이 음란하고 난잡해지며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복신이 주재료로 들어간다. 복신산은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되는 경우에 사용하기도 한다.

 복신, 생건지황, 백작약, 천궁, 당귀, 길경, 백복령, 원지, 대조, 등심을 준비한다. 원지는 생강즙에 담가 보관한 뒤 말려 사용한다. 모든 재료들을 가루로 만들어 두 돈씩 소분한다. 물 두 잔, 등심 한 돈, 대조 두 개에 소분 한 것 중 하나를 넣고 물의 양이 10분의 7이 될 때까지 천천히 달인다. 그 후 달인 물만 음용한다. 식사를 하기 전에 먹는 것이 좋다.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정우 씨가 하나 씨에게 가져다준 약.


※회춘벽사단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벽사단 중 하나. 모든 귀신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귀신이 인간을 홀리거나 꿈에 나타나 정기를 빼앗을 때 혹은 씌었을 때 치유 효과가 있다. 전염병을 몰고 오는 역귀를 물리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다. 섭취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태우거나 소지하기만 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호두골, 주사, 웅황, 귀구, 무이, 귀전우, 여로, 자황을 모두 갈아 가루로 만든 다음 꿀을 섞어 동그랗게 빚는다. 이 환을 작은 주머니에 한 알 넣은 뒤 팔에 매어 두는데 남자는 왼팔, 여자는 오른팔에 매어야 효험이 있다. 또 귀신 들린 이의 집이나 귀신이 나타나는 곳에서 한 알을 태우면 그 자리에 붙어 있거나 해를 끼치는 귀신이 도망간다. 「동의보감」


※몽마

… 게르만 민속에서 등장하는 사악한 존재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여러 나라에서 밤중에 자고 있는 사람을 습격하여 악몽을 꾸게 한다는 악마들의 총칭. 자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 위에 올라앉아 심장을 조이거나 호흡을 방해해서 고통스러운 꿈을 꾸게 한다고 한다. 음란한 꿈을 꾸게 만드는 인큐버스나 서큐버스, 자고 있는 사이에 피를 빨아먹는 모러 등도 몽마의 일종이다. 유대의 전승에서 남성의 정기를 빼앗는다고 전해지는 릴리스도 몽마라고 한다. 「환상동물사전」


※쓰케사게

…일본 여성들이 입는 전통의상으로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기모노이다. 호몬기 다음가는 약식 예복으로 호몬기에 준하는 사교복인데 입고 나가는 장소도 호몬기와 같다. 어깨, 소매, 옷깃 부분에 독립된 문양이 있는데, 무늬가 모두 같은 방향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호몬기와 비슷하지만 무늬의 배치법이 다르다. 호몬기는 가봉을 한 다음 밑그림을 그리고 솔기를 뜯어 밑그림을 따라 염색하여 전체적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무가 연결되도록 하는 에바하오리 기법을 사용하는 반면, 쓰케사게는 가봉한 상태에서 독립적인 무늬를 넣는다. 따라서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지만 만들 때 아래위가 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몬기에 비해 전반적으로 무늬가 단순하고 수수한 느낌을 주는 만큼, 옷감에 다양한 멋을 추구하는 것이 많다.



 인터뷰를 위해 호은당에 찾아갔을 때, 정우 씨는 마침 없었다. 새로운 주인공인 우민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우 씨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한동안 은미 씨가 바쁘게 약재를 사다 나르고 뭔가를 빚고 땅도 파고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열심히 도왔다며 자랑했다.

 우민 씨는 낯선 작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면서도 자기 주관이 뚜렷했고 심성이 고왔다. 축구를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다음 인터뷰 때는 야구공과 글러브를 사다 줄 수 있냐며 눈을 빛냈다. 작가가 그러노라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브랜드와 원하는 제품을 이야기하길래 받아 적었는데, 퇴근 후 찾아보니 더럽게 비쌌다.


 손에 부연 가루를 잔뜩 묻힌 은미 씨가 지친 얼굴로 나왔다. 인터뷰? 그래요.라고 대답하는데 엄청나게 귀찮아하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손을 씻고 나온 은미 씨는 대충 늘어져 앉더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요즘 주인공들의 성격이 점점 무너지는 것 같다. 원래 설정은 이게 아니었는데.


 “되게 전지적 작가인 척하지 말고, 질문. 빨리요. 지금 진짜 피곤하고 배고파요.”


 배가 고프다는 말에 나는 얼른 수첩을 펼쳤다. 한 알만 먹어도, 한 숟갈만 먹어도 배가 안 고픈 약이 정말로 있느냐는 질문에 은미 씨는 씩 웃으며 물어볼 줄 알았다 대답했다.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약포 하나를 꺼냈다. 이것이 천금초이며, 시원한 물에 타서 먹으면 아무거나 먹어도 배가 부르고, 심지어 독마저도 소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나이스. 이제 마감할 때 밥 안 먹어도 되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약포를 품에 넣었다. 그 외의 약에 대한 질문은 귀찮았는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또 동의보감이었다. 이번엔 붉은 술이 달린 책갈피 몇 개가 걸려 있었다. 거기, 약 다 나와 있어요.라고 한다. 나는 책을 가방에 넣었다.


 “다음 인터뷰 때 가지고 와요. 들고 가서 팔면... 연화한테 다 이를 거예요.”


 나는 진지하게 맹세했다. 반드시 무사히 반납하겠다고.


 “몽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굉장히 감정적이셨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가 있어야 해요? 악한 것을 싫어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 이유를 찾자면 수십, 수백 가지는 되겠죠. 사회에는 필요악이 있다고는 하지만 몽마는 절대 악입니다. 필요 없어요. 그 어떤 범죄도 용납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성범죄자는 진짜 시발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자도 개새끼지만 성범죄자는 시발, 인간도 아닙니다. 그건 그냥 쓰레기입니다. 재활용도 못 하고 버려야 하는 것. 말끔하게 불태워 잿더미를 만들어 잘게 빻아 버려야 하는 것. 그 잿더미에 똥물을 끼얹어도 시원찮을 것.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잡아다 사지를 삼백 서른일곱 토막으로 끊고 내장을 죄다 뽑아 돌로 갈아서... 아, 미안해요. 토하지 마요. 정우 씨 멀리 가서 늦게 온단 말이에요. 아, 야! 토하지 말라고! 토하면 네가 치우고 가! 와아악! 연화야아아!!”


 은미 씨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 버렸다. 우민 씨가 조심스레 다가와 시원한 물을 주었다. 냉수를 마시고 나니 속이 편했다. 작업실로 돌아가고 싶다. 뒷정리를 하고 일어섰다. 우민 씨는 환한 얼굴로 배웅해 주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는 길, 나는 가까운 곳에 다이또 매장이 있는지 검색했다. 다이또에서 야구 글러브와 야구공을 파는 것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 이 너무 안 좋다. 약방 말고 약국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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