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니 Nov 13. 2020

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14-흉가 체험, 그 후.(1)>



<에피소드 14-흉가 체험, 그 후.>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무르익은 가을의 어느 날, 우리는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었던 타프를 걷었다. 햇살이 내리쬐니 바람이 차가워도 한결 포근했다. 날이 차가워지자 호은당에도 차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꽤 늘었다. 나와 우민이는 늘 바빴고 은동이도 예뻐해 주는 손님들에게 애교를 부려대느라 바빴다. 우민이가 있어서 은미 씨는 약을 달이거나 약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낮 동안엔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면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은미 씨는 요즘 내내 약을 달이고 갈고 썰고 찧고 바빠 보였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짬이 날 때면 은미 씨를 열심히 거들었다. 기회를 봐서 의심스러웠던 일들을 은근슬쩍 물어보았지만 은미 씨는 빙그레 웃으며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갔다.

 은미 씨와 연화가 진짜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약의 가격이나 진맥 비용 등의 책정 기준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래. 뭐,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 위험 부담금이거나 뭐... 그런 거겠지. 그 약들이 말로 설명하기 힘든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보아서 잘 아니까.

 물론 지극히 평범한 약도 잘 지었다.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 처방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진짜 한약사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 나는 대문에 오늘은 쉽니다.라는 팻말을 걸었다. 오늘 오후엔 예약 손님이 있다. 일반 손님에게 보이기 곤란한 손님이라 오후엔 찻집 영업을 쉬기로 했다. 오전에 방문한 손님들이 우르르 나가고 대문이 굳게 닫혔다. 우민이와 나는 분주하게 테이블을 치우고 점심을 차렸다. 이내 연화가 도착했다. 연화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왔다.


 “점심 먹고 바로 준비 해?”


 나는 어느새 말끔하게 비운 우민이의 국그릇에 미역국을 가득 담아 내주고 물었다. 연화는 싹싹 비운 빈 밥그릇을 내밀었다. 아니, 이것들이 진짜. 나도 밥 좀 먹자! 벌떡 일어나는데 은미 씨의 숟가락이 입으로 쏙 들어갔다. 밥그릇이 비었다. 대단하다, 진짜. 나는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우민이도 빙긋 웃으며 일어났다. 얘들 굶었나? 아침에도 두 그릇 먹었는데! 우민이가 냉큼 빈 그릇들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나는 다시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응. 아빠는 우민이랑 방만 비워 줘. 언니는 나랑 같이 하고.”


 곧 올 손님은 조금... 무서운 손님이다. 곤란한 손님이기도 하고. 나는 괜히 긴장했다.


 “걱정 마. 묶으면 땡이야.”


 연화는 씩 웃으며 가방에서 붉은 밧줄을 꺼내 내게로 휙 던졌다. 묵직했다.




 일주일쯤 전,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미쳤다는 소리부터 한 남자는 당장 찾아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사정을 물었더니 얼마 전 여행을 다녀온 뒤로 아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은미 씨는 한참을 통화하다 결국 직접 가보기로 했고, 영업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은미 씨는 경기도의 외곽으로 달렸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그 집은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느낄 능력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었다. 이 집, 진짜 무섭다.라고.


 평범한 주택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난장판이었다. 현관부터 엉망이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집안의 거울이란 거울은 죄다 깨져 있었던 것이다. 모습이 비칠 만한 매끄러운 것들은 모두 깨지거나 우그러져 있거나 가려져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채 발만 동동거리는 부부가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굳게 닫힌 방 너머에서 무언가가 와장창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 괴상한 고함소리와 살려달라는 비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여는 순간 깨진 스탠드가 날아들었다. 맞을 뻔했지만 재빨리 문을 닫은 덕분에 문에 부딪혀서 다치지 않았다. 플라스틱 스탠드 갓이 깨져 사방으로 튈 만큼 무시무시한 힘으로 던진 사람이 어둑한 방 안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온갖 악취가 강하게 맴도는 방을 둘러보며 나는 은미 씨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서 방 안을 바라보던 은미 씨는 한숨을 쉬었다.


 “연화한테 전화할까요?”


 “... 소용없어요.”


 은미 씨는 손을 뻗어 방의 불을 켰다. 환한 빛이 들어오자 방 안의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더러운 이불을 머리끝부터 뒤집어쓰며 발버둥 쳤다.

 방 안은 처참했다. 온통 깨진 파편들과 부서진 가구들, 코가 아릴 만큼 지독한 오물들이 바닥이며 벽이며 덕지덕지 처발려 있었다. 그가 뒤집어쓴 이불도 오물 투성이다. 바닥에는 먹다 남긴 음식들과 토사물들이 뒤엉켜 있었고, 핏자국도 많았다. 남자의 어머니는 훌쩍훌쩍 울며 방에서 멀어졌다.

 남자는 스물두 살의 대학생으로,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동네의 흉가에 들어갔다고 했다. 남자는 술김에 오기를 부려 흉가에 들어갔다 왔고, 그때 무언가가 잘 못 되어 귀신이라도 씐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쪽은 진짜 모르겠단 말이지. 관심도 없고.

 은미 씨는 창문 위를 가리켰다. 창문 위에는 피와 똥이 치덕치덕 발려 알아보기 힘든 부적 두 장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부적 따위 전혀 효과가 없는 걸까. 연화가 해도 안 될까? 나가! 나가! 하며 쉰 소리로 고함을 치는 이불 뭉치를 바라보는데 은미 씨는 불을 탁 끄고 문을 닫아버렸다.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선생님이라면, 호은당이라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제발,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남자의 아버지는 새카만 낯을 하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주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은미 씨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발아래 고개를 숙인 남자를 일으켰다.


 “저는 약사입니다. 무당이 아니라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원하시는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집도 팔고 차도 팔고 다 팔고! 이 몸뚱이를 팔아서라도 원하시는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아들만, 우리 아들만 살려주십시오! 제 목숨을 바치라고 하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아들만, 우리 아들만...”


 눈물로 범벅이 된 남자의 어머니가 달려와 은미 씨의 치맛자락에 매달렸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우민이 녀석, 은동이 목욕은 시켰나... 나는 시큰거리는 콧등을 괜히 문질렀다. 은미 씨는 한숨을 쉬었다. 닫힌 방문 너머에서는 또다시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하는 울부짖음이 새어 나왔다.


 “저 부적을 받은 곳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굿을 해야 한다고 해서... 다음 주에 굿당이 열릴 예정입니다. 급하게 잡긴 잡았는데... 저런 애를 데리고 거기까지 갈 수나 있을지...”


 굿이라... 하며 중얼거린 은미 씨는 쓰게 웃었다. 저 웃음의 의미를 아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엉엉 우는 어머니도, 바들바들 떠는 아버지도. 그녀의 얼굴에 비웃음 같은 희미한 웃음이 스치는 순간, 간절하던 그 숨조차 우뚝 멈추었으니까. 나는 새어 나오는 한숨도 죽여 뱉었다. 은미 씨는 닫힌 방문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굿이라도 해 보라며 은미 씨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무심하게 돌아 나왔다. 흐느껴 우는 부부를 두고 돌아서면서 나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은미 씨가 할 수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나는 시동을 걸었다. 은미 씨의 벨트가 찰칵하고 맞물렸다. 우리는 어둠을 밝힌 가로등 아래를 천천히 지났다.

 들어가는 길엔 빵집엘 들러 우민이가 좋아하는 빵 좀 사야지. 은동이 목욕은 시켰겠지? 은동이 수건은 따로 쓰라고 했는데 또 둘이 같이 쓴 건 아니겠지? 나는 괜히, 우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우민이의 목소리는 환하고 발랄했다.



 호은당에 돌아올 때까지,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잘 다녀왔냐는 우민이의 인사에도 대꾸 없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우민이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갔던 일은 어떻게 됐느냐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은미 씨가 할 일이 아니라며 거절하고 왔다는 말에 우민이도 시무룩해졌다. 결국 우리는 이 일을 잊기로 했다. 어차피 은미 씨가 아니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은미 씨처럼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화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나 우민이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


 하지만 다음 날, 은미 씨는 직접 그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날을 잡았다. 되든 안 되든, 어떻게든 한 번 해 보겠다며 호은당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부랴부랴 예약 일정을 조정했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오늘은 그 남자의 부모가 굿판을 열기로 한 날의 바로 다음 날이기도 했다.






작가의 이전글 약방 호은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