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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니 Nov 12. 2020

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13-새 식구 은동이(E)>




 은동이를 기르면서 정말 신기한 일들이 생겼다.

 첫 번째는 손님들 중 그 누구도 은동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한과를 좋아하는 그 아기조차도 은동이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은동이를 보러 오는 단골들이 생길 정도로, 은동이의 인기는 아주 폭발적이었다.

 간간이 개 자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은동이는 그런 사람의 곁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그 사람의 일행이 불러도 가지 않았다.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근처에서 아무리 유혹을 해도 절대 가지 않았다. 따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우민이는 은동이는 천재야! 하며 기뻐했다.


 덕분에 손님이 엄청나게 늘었다. 은동이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무한히 예쁜 짓을 했고, 손님과 손님이 아닌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았다. 가끔 들르는 잡상인들에게는 엄청나게 짖으며 달려가 발길을 막았다. 제 딴에는 무섭게 구는 것 같았는데, 그마저도 귀여워서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우민이는 애견 훈련가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훈련을 시켰고, 덕분에 우민이 역시 한층 더 밝아졌다.


 두 번째, 은동이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똑똑했다. 가르치지 않아도 주방과 안채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대청마루는 물론 대청마루 앞의 디딤돌에도 올라가지 않았다. 우민이가 은근슬쩍 올라오라고 부르거나 안아서 내려놓아도 외면하거나 냉큼 내려와 마당에서 놀았다.

 아. 대청에 올라갈 때가 있긴 하다. 유일하게 아기 손님이 왔을 때는 대청에 올라간다. 아기의 옆에 딱 붙어 앉아 마치 온기를 나누는 것처럼, 혹은 아기를 감싸 보호하는 듯이 아기의 옆에 앉아 있었다. 아기의 고사리 손에 털이 뜯기고 수염이 뽑히고 꼬리를 마구 잡아당겨도 싫은 내색 없이 그저 헥헥, 웃는 것처럼 아기와 놀아주었다. 정말로 아기를 지켜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의 부모님이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 덕분에 인터넷에서도 은동이는 스타가 되었다.

 사랑채 마루에는 자연스럽게 올라가긴 했는데, 발을 닦아 주어야 방으로 들어갔다. 발을 닦아주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마루에 앉아 기다렸다. 낑낑거리거나 짖어서 관심을 끌지도 않았다. 우리가 바쁘면 얌전히 앉아서 구경하듯 기다렸다.

 우리가 하는 말도 찰떡같이 잘 알아들었다. 배변패드를 깔아 두니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거기서 일을 봤다. 쟤 사람 말 아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진짜 신기한 일인데, 우민이가 외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어느 날, 또 호은당을 뒤집어엎어버리던 귀족 나부랭이와 실랑이를 하느라 아침부터 진땀을 빼고 있었다. 진상은 그렇게 부리면서 가지도 않고 죽치고 앉아 온갖 시비를 다 거는 그 사람 때문에 나와 은미 씨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치만 보며 도망 다니던 우민이에게까지 시비를 거는 바람에, 나는 결국 손님에게 소리를 질렀다. 오고 간 주먹만 없었지, 정말 살벌한 싸움이었다.

 내가 손님과 싸우는 그때, 은동이는 마치 우민이를 피신이라도 시키려는 것처럼 목줄을 물고 나왔고, 우민이는 고민하다가 호은당 골목만 가볍게 훑고 올 생각에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물론 넘어지면 크게 다치는 것을 알기에 긴 옷을 챙겨 입고 옷 속에는 무릎 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심지어 바이크용 헬멧까지 쓰고 나갔다.

 골목의 끝에서 끝까지 돌고 오는 5분 남짓한 그 길에, 이전 같았으면 그 5분 만에 열 번쯤 넘어지고 일곱 번쯤 박치기하고 세 번쯤 누구와 부딪치고 한 군데는 반드시 피를 보고도 남을 텐데, 우민이는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호은당으로 돌아왔다. 넘어지지도 않았고 누군가와 부딪치지도 않았고, 어디 다치지도 않았다. 우리는 엄청난 복덩이가 들어왔다며 아주 기뻐했다. 은미 씨도 이제는 그리 미운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연화가 은동이를 무서워했다. 유일하게 은동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연화 하나뿐이었다. 연화는 은동이가 다가오면 조각상처럼 얼어붙었다. 은미 씨는 은동이를 무시하는 편인데, 연화는 은동이가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얼었다. 완전히 굳어버려 음식을 먹는 것도 멈추었고 말을 하다가도 멈추었다. 심지어는 사랑채 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은동이가 와서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담배를 끄지도 못하고 들고 있다가, 필터까지 다 타버린 불꽃에 손가락을 덴 적도 있었다.


 연화는 호은당에 거의 오지 않았다. 오더라도 꼭 필요한 일이 있거나 내가 불러야만 겨우 왔다. 연화가 오면 우민이는 은동이를 묶어 두거나 방에 넣고 문을 닫아 두었다. 딱히 은동이가 위협을 가한다거나 짖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화를 향해 꼬리를 살살 흔들며 배까지 훌렁 뒤집어 보여줄 만큼 좋아하는 티를 내는데, 연화는 그런 모습을 보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아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은동이가 온 뒤, 나는 매일 연화의 법당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보내느라 더욱 바빠졌다.



 은동이와 함께 지내면서 손님도 많아졌고, 약방은 이제 거의 찻집으로 이름을 날렸다. 가끔 오는 귀족 나부랭이들도 손님들이 거의 항상 있으니 난동을 덜 부렸다. 찻집 일로 바쁘긴 했지만 약방 손님들이 난동을 부리지 않으니, 일은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가을이 진해졌다.


 우민이는 은동이 덕분에 호은당 밖의 세상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비록 개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신분증도 재발급받았고 은행에서 새 통장도 만들어 와 자랑했다. 심부름도 가끔 갔고, 은동이가 동네에서 나보다 더 유명한 덕분에 산책도 무리 없이 잘 다녔다. 그리고 은동이는... 많이 컸다. 정말 많이 컸다. 이렇게 쑥쑥 크는 게 정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랐다. 

은동이는 호은당에 온 지 보름 만에 이제는 강아지라고 부를 수 없는 크기가 됐다. 아무래도 입마개와 야외용 큰 개집을 사야 할 것 같았다. 자다가 저 놈 발차기에 두드려 맞는 것은 그만 하고 싶었다.


 가을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진 푸르른 어느 날, 우리는 일찍 저무는 해를 아쉬워하며 마당에 불을 피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호은당을 찾은 연화와 함께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꼭 한번 하고 싶다는 우민이의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였다. 은동이는 우민이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절대 연화 근처도 가지 않았고 연화를 자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 개 맞아? 우리 잘 때, 사람이 지퍼 지익 열고 나와서 아이고, 삭신이야. 하면서 기지개 킬 것 같았다.


 “형! 나 그거 먹고 싶은데!”


 “이번엔 뭐?”


 아주 그냥, 우민이 생일이었다. 우민이는 볼이 미어터지도록 고기를 욱여넣고 씹으면서 또 다음 먹을 음식을 골랐다. 나는 숯불을 뒤적이며 불을 살렸다. 연화는 제일 구석에서 은동이의 눈치를 보며 음식을 그냥 삼키는 수준이었고, 은미 씨는 나름대로 그녀와 은동이 사이에서 시선 가림막 역할을 자처하며 애쓰고 있었다. 나 역시 은동이의 시야에 연화가 들어가지 않도록 어정쩡한 자세로 고기를 구웠다. 은동이는 잘 익은 삼겹살 한 덩어리를 앞발로 꼭 쥐고 야무지게 뜯느라 우리가 뭘 하는지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저번에 큰 누나가 말했던 거! 감자 버터구이.”


 아. 그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감자 다섯 개를 씻어 가르고, 그 사이에 버터와 소금을 넣은 뒤 포일로 잘 싸서 들고 나왔다. 꺼져가는 구석의 숯불 속에 그것들을 집어넣고 다시 고기를 올렸다. 은미 씨는 커다란 쌈을 내 입에 넣어 주었다.


 “기름기 쏙 빠지고 잘 익었어요.”


 은미 씨는 엄지를 세웠다. 나도 따라 엄지를 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구웠지만 진짜 맛있네. 나는 잘 익은 소고기 한 점을 은미 씨의 입에 넣어주고, 또 한 점은 연화의 입에 넣어 주었다. 연화의 큰 눈은 여전히 은동이만 찾고 있었다.


 “아, 그만 봐. 괜찮아. 절대 안 와. 오빠가 막아 줄 테니까 걱정 말고 편하게 먹어. 체하겠다.”


 연화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와 우민이 뒤의 은동이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는 맛이 있는지, 화장기 없는 허연 입술은 오물오물 바쁘게도 움직였다. 나는 다른 소고기 한 점을 우민이 입에 넣어 주었다. 우민이는 맛있게도 받아먹었다.

 아기 새 밥 먹이는 어미 새 마음이 이런 걸까. 하나 먹이면 다른 하나가 입 벌리고 재촉한다. 바닥에서 은동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옛다, 인석아. 이거 네 거다. 나는 미리 식혀둔 삼겹살 한 덩어리를 더 내밀었다. 은동이가 웃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배도 부르고 적당히 취기도 오른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이제 자자.라는 내 말에 은동이가 컹! 하고 짖었다. 발 닦아달라는 소리다. 그 소리에 연화는 기겁을 하고 울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서둘러 방으로 도망갔다.

 역시. 나는 이렇게 내가 노비라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깨닫는다. 나는 시들 거리는 숯불과 난장판이 된 마당을 기념사진으로 남기고, 재빨리 정리를 마쳤다. 벌건 숯불만 마당 구석에서 타고, 호은당은 어둠 속으로 잠겼다.


 그리고 그날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왔다. 우리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 시간, 소리 없이 담장을 넘는 손님. 바로 밤손님이었다. 요즘 계속 바빠서 피로가 누적된 우리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묵직하게 배를 누르는 압박감에 나는 눈을 떴다. 힘겹게 실눈을 뜨고 보니, 은동이 이 녀석이 내 배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야, 내려와.”


 은동이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다 내려갔다. 이제 좀 자자, 하는데 이마에 뭐가 퍽 떨어졌다.


 “아욱!”


 은동이 이 자식이! 휴대폰을 물어다 내 이마에 떨어뜨린 거였다. 내가 움찔거리며 일어나자 우민이도 눈을 떴다. 그때, 마당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동이는 사랑채 문 앞에 가만히 서서 귀를 쫑긋거리고 꼬리를 아주 느리게 흔들었다. 우민이와 내가 정신이 번쩍 든 것은, 그 순하디 순한 은동이가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낸 그 순간이었다.

 우민이가 살그머니 사랑채 문을 여는데, 작은 틈이 나자마자 그 사이로 은동이가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그리고 이내 컹! 하고 짧게 짖는 소리와 함께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우당탕 달려 나왔다. 대청마루 앞, 웬 시커먼 것을 밟고 서서 으르렁 거리는 은동이가 보였다. 우민이는 곧장 경찰에 전화를 걸었고, 낯선 소리에 안채에서 은미 씨와 연화가 달려 나왔다.


 “으, 으아아악! 귀신이야!”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복을 입은 두 사람을 보고 도둑은 비명을 질렀다. 도둑이 기겁하며 버둥거리는데, 은동이는 도둑의 어깨를 꽉 물고 끝까지 버텼다. 나는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조명이란 조명은 죄다 켰다. 간판 조명까지도 말이다.

 최근 이 동네에서 꽤 유명세를 날리던 도둑은 그렇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은동이는 도둑을 잡은 용감한 개가 되어 엄청나게 유명해졌고, 심지어는 언론사에서 취재까지 나왔다.


 “은동이가 복덩이라니까.”


 우민이는 뿌듯한 얼굴을 하고 커다란 육포를 찢어 은동이에게 내밀었다. 마뜩잖던 은미 씨의 인상이 조금 부드러워졌고, 겁에 질려있던 연화의 표정에도 빛이 조금 돌았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은동이에게 닭을 삶아 주었다. 짜식. 밥 값 하네.

 그나저나, 손님이 너무 늘어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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