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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니 Nov 16. 2020

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14-흉가 체험, 그 후(2)>





 점심상을 치우고 우리는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준비라고 할 것도 딱히 없었다. 은미 씨는 남자가 귀신에 빙의된 것으로 판단했고, 만일을 대비 해 연화를 불러두었다. 연화는 부채와 방울, 부적 몇 장과 크고 번뜩이는 칼 두 자루를 들고 왔다. 슬그머니 만져보니 날은 없었다. 그저 칼 모양으로 잘라 둔 스테인리스 판이었다. 괜히 쫄았네.약방 


 나와 우민이는 연화가 준 붉은 밧줄로 매듭 연습을 했다. 연화는 괴상한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이렇게 묶으면 된다고 했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쉽게 되지 않았다. 우리가 낑낑대고 있으니 연화는 답답했는지 엄청나게 짜증을 냈었다. 네가 짜증을 내도 어쩌겠냐... 우리라고 해 본 적이 있어야지. 너야 숨 쉬듯 자연스러운 부분이겠지만. 나와 우민이는 묵묵히 연습에 또 연습을 반복할 뿐이었다.

 매듭이 제법 손에 익었을 무렵 전화가 왔다. 아들을 꽁꽁 묶어 데리고 가는 중이라고 말이다. 수화기 너머에서 가래 끓는 비명과 어머니의 간절한 울부짖음이 넘어 나왔다. 어제의 굿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걸까. 묶어야 이동이 가능하다며 남자의 아버지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연화는 일전에 보았던 선녀의 날개옷 같은 한복을 입고 긴 머리를 땋아 단정하게 올렸다.


 저러니 선녀 모시는 무당 같은데, 평소엔 천하의 날라리가 따로 없다. 너 탈색에 염색에 막 그렇게 해도 선녀님 뭐라 안 하시냐? 며칠 전에는 벼 따위나 머리를 숙이지! 하며 황금색 머리를 하고 왔다. 탈색만 세 번을 했단다. 머리카락 안 녹나?

 황금빛 머리카락에 연분홍 선녀 옷은... 참 안 어울리지만, 그래도 풍기는 분위기는 선녀 같긴 하다. 연화는 한복을 팔락 팔락 날리며 대청 위에서 놀고 있었다. 마당을 돌아다니는 파리를 쫓던 은동이가 연화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왔다. 연화는 치맛자락을 쥔 채 그대로 얼음이 됐다. 어우, 진짜. 언제까지 저렇게 겁을 먹을 건지. 우민이가 은동이를 데리고 간 뒤, 연화는 뒷걸음질 쳐서 상담실로 들어갔다.


 미리 차와 다과를 준비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마당의 테이블과 의자도 다 치웠다. 상담실 안에도 깨지거나 부서질 수 있는 위험한 물건들은 모두 치워 두었다. 건넛방은 아예 막아 두었고, 사랑채도 굳게 닫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닫힌 대문만 바라보며 나는 떨리는 심장을 꽉 쥐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삼십 분이 세 시간 같았던 기다림이 끝나고, 대문 앞에서 자동차 소리와 비명소리, 아기를 달래는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 간절함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대문을 열었다. 우민이는 내 뒤 서서 붉은 밧줄을 꽉 쥐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한쪽 얼굴에 파랗게 멍이 든 아주머니를 먼저 끌어당겼다. 아들은 빨간 비닐 노끈에 칭칭 묶인 채로 버둥대고 있었다. 아저씨는 발버둥 치는 아들을 어떻게든 차에서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듯했다. 나와 우민이는 아저씨를 호은당 안으로 밀어 넣고, 주먹을 꾹 쥐었다. 우민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밧줄을 든 채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그의 발을 잡으려 하자, 남자는 심하게 버둥대며 나를 걷어찼다. 몇 대나 맞았지만 나는 묵묵히 그를 끌어당기는 시늉을 반복했다. 남자는 점점 더 반대편 문으로 도망쳤고, 우민이는 가만히 지켜보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 바람에 남자는 뒤로 벌렁 넘어졌고, 나는 잽싸게 차 안으로 뛰어들어 우민이와 함께 남자를 붉은 밧줄로 묶었다. 남자가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더 힘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연화가 말한 그 매듭 모양 그대로 묶을 수는 있었다.

 신기하게도 매듭을 묶자 남자의 몸부림이 우뚝 멈추었다.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를 어깨에 들쳐 메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부모님은 그저 울고만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약사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부는 상담실의 휑한 모습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약방인데 아무것도 없고 그저 책장과 책 몇 권이 전부이니 그럴 수밖에. 거기다 한복 입은 노랑머리 날라리까지 있으니 말이다. 나는 방 가운데에 깔린 이불에 남자를 눕히고 일어섰다. 옷이 엉망이었다. 온통 흙 발자국이었다. 걷어 차인 어깨와 팔도 욱신거렸다. 은미 씨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주머니에서 은빛의 납작한 통을 꺼내 주었다.


 “다친 곳에 발라요. 멍든 데 말고 까지거나 피 나는 데만.”


 그러고는 다른 연고를 꺼내 남자의 부모님의 상처에도 발라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눈 밑에 든 시커먼 멍도, 붉게 부어 오른 아버지의 팔에도,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그들의 다친 마음에 약을 발라주었다.


 그녀가 환자를 볼 때, 그때의 미소는 정말로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온화하고 아름다워서, 가끔 나도 눈이 부실 때가 있다. 몸이 아픈 만큼 마음도 아프다고, 몸이 다친 만큼 마음도 같이 다친다고. 은미 씨는 늘 그렇게 말하며, 다친 마음을 매만져 줄 줄 알아야 진정한 의원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웃으면, 정말로 여신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은미 씨는 포근하게 웃으며 흐느끼는 부부의 손을 꼭 잡았다. 연화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누워있는 남자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방울을 쥔 손에 하얗게 힘이 들어갔다.




 내가 차와 다과를 준비 해 들어갔을 때, 연화는 남자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정신은 차린 것 같았지만 여전히 눈의 초점도 흐렸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어제 굿은 제대로 됐는데 왜 계속 이러는 겁니까?”


 “제대로 안 됐으니까 이러지. 얘가 보통내기가 아니라서 그래. 어제 그 무당도 한참을 앓아눕겠네.”


 연화는 작은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어느새 황금색 머리카락 아래로 땀이 차 있었다. 나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아, 노비 본능이... 연화는 싱긋 웃으며 손수건을 받았다.


 “다행히 어제 무당이 영 사짜는 아니었나 봐. 그 무당은 자기 힘으로 안 될걸 알면서 왜 자기가 했지? 얘는 내 힘으로도 못 이겨.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재미로 이러는 거지.”


 부모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재미로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 붙은 거라니. 나도 눈이 동그래졌다. 연화는 부채를 착 펼치더니 살랑살랑 부채질을 시작했다. 누워있던 남자가 부르르 떨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연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은미 씨는 구석에 서서 붉은 끈으로 묶인 책을 읽고 있었다. 저거, 어디 있었지?! 아까 내가 정리할 때는 없었는데!


 “안 돼. 내가 해도 안 돼. 나는 못 건드려. 얘는... 사람, 재미로 죽이는 애야. 다른 사람 소개 해 줄게. 그 영감님은 할 수 있을 거야. 그 영감님이 못하면, 아무도 못 하는 거고.”


 쟤가 저렇게 존칭 쓰는 사람은 단 한 사람, 그녀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 처리해 주시는 대사님이다. 연화는 부채를 착 접고 커다란 칼을 꺼냈다. 큰 칼 두 개를 손에 하나씩 들고 남자의 몸 위를 이리저리 휘젓고 몸 여기저기를 툭툭 쳤다. 마치 칼로 몸을 자르는 것 같았다. 칼이 닿을 때마다 남자가 펄떡펄떡 뛰었다.


 “알아, 아프라고 하는 건데? 아프면 그만 해. 너는 재미있는지 몰라도 우린 재미없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알 것 같다. 소름이 돋아서 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의 일을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나와 우민이는 벌벌 떨면서 방 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 은미 씨는 안방으로 쏙 들어갔다. 부부는 불안한 눈으로 연화와 은미 씨가 들어간 방문을 번갈아 볼 뿐, 무엇 하나 묻지도 못하고 있었다.


 “누군 욕 못 해서 안 하는 줄 알아? 욕 배틀 떠서 이길 자신 있다, 나는. 까불지 마. 확 보내버리는 수가 있어.”


 뭔 소리야! 제발! 무섭다고!! 눈을 히번뜩 거리며 연화는 누워있는 남자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가했다. 남자는 그저 그르륵, 으르륵, 하는 소리만 낼뿐인데 연화는 누구랑 말을 하는 거야! 제발! 아니라고 해줘! 그 무서운 귀신이랑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해주라.


 “오, 그래? 그럼 해 보던가. 끽해봐야 얘 하나 죽이는 것 밖에 못 하는 하찮은 찌꺼기 주제에.”


 아, 아니, 저기. 연화야. 거기 그 남자 부모님이 바로 앞에 계시잖아. 제발. 말 좀 조심하자. 응? 아무리 네가 천하의 연화 선녀라고 해도, 그건 그게 통하는 사람들 앞에서나 가능한 거지. 이 사람들은 아니잖아.

 아니나 다를까. 부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남자의 아버지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화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얘가 애 죽일 거라는데? 왜? 아저씨가 대신 죽을 거야?”


 “그,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아들이 산다면,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웃기고 있네. 자식 목숨 귀한 만큼 아저씨 목숨도 귀한 거야. 그렇게 해서 자식 살리면, 자식이 얼씨구나 하고 좋아서 큰절할 것 같아? 남는 건 원망뿐이야. 대신 죽는다는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야.”


 연화는 생글생글 웃는 낯을 하고도 쌀쌀맞게 대꾸했다. 남자의 아버지는 몇 번 입을 달싹이다 고개를 떨구었다.


 “그, 그럼... 우리 아들은...”


 눈물이 앞섶을 다 적신 남자의 어머니가 갈라진 쉰 소리로 물었다. 우민이는 조용히 냅킨 통을 그녀 앞에 두고는 구석으로 가 이마를 쿵 박고 섰다. 어쩌면 지금, 그 누구보다 힘들고 괴로운 사람은 저 남자도 아닌 우민이 일 것이다. 나와 연화의 시선이 잠시 우민이에게 향했다.




 “기다려 봐. 우리 언니, 약은 기똥차게 잘 짓거든. 약발 듣는 거 보고, 내가 할 수 있으면 바로 떼 줄게. 안되면 영감님한테 보내 줄 테니까 영감님이랑 하면 돼.”


 연화는 부채를 들더니 버둥대는 남자의 가슴을 탁! 하고 때렸다. 남자가 푸르르 떨더니 눈을 끔뻑거렸다. 이내 멍하고 흐릿하던 눈에 빛이 돌았다. 남자는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어, 엄마...? 엄마...!”


 “아, 아들! 환아! 환아! 정신이 들어?! 엄마 여기 있어!”


 “아빠! 아줌마 잡아!”


 벌떡 일어나 아들에게 달려가려는 어머니는 우민이와 나에 의해 제지됐다. 그들은 나를 밀치고 아들에게 달려가려고 악을 썼다. 남편이 그녀를 끌어안아 당겼지만, 부인은 울부짖으며 아들을 향해 몸을 날려댔다.


 “엄마... 엄마, 나... 목이 너무 말라... 그리고 이거, 너무 아파... 좀 풀어 줘. 피가 안 통해서 팔이 너무 저리고 아파. 엄마, 나 이거 좀 풀어줘. 제발... 나, 엄마 아들 민환이야...”


 “화, 환아...! 우리 환이, 물, 물 좀! 물 좀!”


 “저거 아줌마 아들 아니야! 정신 차리고 뒤로 빠져! 다 된 밥에 똥 쌀 거야?!”


 “여보! 정신 차려! 아니래! 아니래! 우리 환이 아니래! 정신 차려!”


 “쟤가 우리 아들이 아니면 뭔데! 내 아들 환이가 아니면 누군데!! 이거 놔! 우리 환이, 물이라도... 물이라도! 제발! 제발요! 저 줄 좀, 느슨하게만 해 주세요! 풀 수 없으면 느슨하게 만이라도! 제발요!”


 “아, 아주머니, 아드님께 물 드릴 테니, 제발 좀... 좀 비켜주세요! 위험하다고요!”


상담실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무시무시한 힘으로 아들을 향해 달려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는 아들, 있는 힘껏 부인을 끌어당기는 남편과 어머니와 아들 사이를 필사적으로 막는 나와 우민이. 어디서 나온 힘인지, 장성 셋이 붙었는데도 아들을 향해 뻗은 어머니의 손을 거둘 수 없었다. 연화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들의 가슴을 부채로 팡 내리쳤다.


 “이런 고얀 놈! 어디 감히 산 사람 행세야!”


 “아악! 아파! 엄마! 엄마아! 나 너무 아파! 이 여자가 나 죽이려고 해! 엄마아아! 아빠! 아빠악!!”


 연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시뻘게진 얼굴로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다 무언가 주문 같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남자는 엄마, 아빠 부르며 비명을 질렀다. 결국 남자의 아버지까지 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와 우민이는 어떻게든 그들을 떼어놓기 위해 발악했다.

 상담실이 난장판이 되었는데도 은미 씨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뭐 하는데요! 약 미리미리 안 만들어 놨어?! 어디 둔 건지 까먹은 거야? 좀 나와서 어떻게 해 보라고요! 그 잘하는 독설이나 쌍욕이라도 좀 날려서 이 사람들 좀 말려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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