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회사생활을 한 지 7년이 넘었고 4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일로는 참 순진무구했던 25살, 첫 회사에 입사 후 거의 4년을 다녔다.
첫 회사를 다니며 이직을 준비할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정말 미숙하고 떨렸다.
1차 면접 합격 소식을 사내 메신저 방에 실수로 공유하기도 했다 (아찔)
이직이 결정되고 퇴사를 말하려 할 때는 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데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메신저 창에 엔터를 칠까 말까 고민하며 심장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있다.
처음 시작이 어렵다고, 한번 하고 나니 그 뒤로 총 3번의 이직.
이제는 나 스스로도 '프로이직러'라고 느낄 정도로 이직을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에 유려한 스킬들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3번의 이직 끝에 얻은 것 중에 가장 좋았던 건 '나'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이다.
일할 때의 나는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가 명확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편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일할 순 없지만) 그런 성향이 내가 원하는 커리어 방향으로의 포트폴리오를 잘 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떠올려보면 그건 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인 자소서, 면접 덕분이었다.
이직을 결심하고 채용사이트에 들어가서 '지원서 작성' 버튼을 눌러본다.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좋은 회사일수록 자소서 항목이 어렵다. 그냥 잠깐 생각해서는 나올 수 없는 질문들이다.
관심 있는 트렌드, 관심 있게 본 이유
입사 후 어떤 성취를 이루고 싶은가요?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와 그 이유
2-3군데 회사에만 지원해도 1편의 에세이는 거뜬히 나오게 된다. 지원결과가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자아성찰은 확실하게 되는 셈이다. 서류합격이라도 해 면접까지 가게 되면 이건 거의 '일하는 나'에 관한 심층분석 논문이다. 글로 써서 제출할 때보다 말로 질문하는 면접에서는 더 심층적으로 나에 대해 많이- 깊게-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을 준비할 때 나는 두 가지를 준비한다.
1. 지원한 서비스에 대한 파악과 개선점 도출
내가 타겟이 되어 이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으로서의 나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이때의 나는 지원하는 서비스에 아이패드 활용법, 굿노트에 대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적기 시작했다.
폰트 뺨치는 손글씨로 플래너를 쓰고, 무거운 전공 책 대신 아이패드에 PDF 파일로 넣어 필기하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
이것이 빠르게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의 루틴을 '인증'하는 과정이 즐거움으로 여겨지는 특성 때문입니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자기 계발을 위해, 건강을 위해,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무너지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작은 즐거움도 놓치지 않으려는 성향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생산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려는 것이 아닌 본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루틴을 찾아냅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유료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패드 활용법 클래스', '굿노트 템플릿'을 구매하기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신규 가입하고 돈을 아끼지 않는 MZ세대의 소비를 보며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콘텐츠로 먹고사는 일을 하고 싶은 저에게 희망적인 신호로 다가왔습니다.
글로 정리하고 나니 깨달았다. '콘텐츠'는 앞으로의 내 포트폴리오의 핵심 키워드가 되겠구나. 나는 콘텐츠를 쓰고 만들고 파는 일을 하면서 살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구나.
2. '일하는 나'에 대한 예상질문
Q. 지난 커리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두 문장의 자기소개
A. PM, 플랫폼 DB 개발을 거쳐 온라인 클래스 기획 및 전략 수립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잘하는 일을 찾고 발전시켜 나갑니다. 제가 잘 쓰일 수 있는 곳을 잘 압니다.
Q.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주로 하고 있는 일
라이프 카테고리의 트렌드 분석 및 시장 조사를 통해 크리에이터를 섭외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게 만드는 온라인 클래스를 기획합니다. 클래스를 듣고 싶어 할 타겟부터 난이도, 커리큘럼, 상세페이지, 준비물 전반을 모두 책임집니다.
Q. 개발자에서 전직하게 된 이유
A. PM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사실 신입이 여러 사람들을 총괄하는 피엠으로 일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러 기술 분야 중 한 분야라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DB 개발이었습니다. 기획서 검토를 시작으로 본 개발 작업에 들어가는 프로세스였는데, 실제 쌓이는 데이터를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직무이다 보니 기획서에서 빠진 부분이나 의도하지 않은 유저의 예상 반응이 잘 보였습니다. 그때 실제 코드를 짜는 일보다 데이터로 설득하고 논의하는 일을 더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앞단에서 내가 찾아서 발굴해낸 일을 수행하고 싶어 직업을 바꿨고 그 일이 얼마나 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난 면접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왜 개발자를 그만두고 싶었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냥.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접에서 대답을 해야 하니 (!) 곰곰이 되돌아보니 어떤 점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뭘 하면 덜 힘들지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되었다.
Q. 업무 상 장점 / 단점
A. 업무 습득 속도가 빠릅니다. 그 덕분에 PM에서 DB 개발로 직무를 바꾸었을 때도 빠르게 DB 업무를 파악했고 4개월 만에 국내 서비스 메인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기획 직무로 바꾼 후에도 입사 1년 만에 신규입사자 8명의 온보딩을 담당하여 업무 적응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단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가 있어도 동료가 묻거나 요청한 업무가 있다면 그것 먼저 처리한 후 수행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중력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개선하기 위해 하루에 꼭! 해야 하는 TO DO LIST는 3가지만 정해서 긴급한 일이 아니라면 우선순위가 높은 일 먼저 끝내고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연말 평가에서는 보통 내가 한 일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하고 피드백을 나누기 때문에 '나' 자체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회고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필하는 자리인 면접에서는 유일하게 내가 일할 때 어떤 지 가장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하기 때문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할 수 있다.
그저 자소서에서 물어봐서 적었던 내용인 '회사 입사 후 이루고 싶은 성취'에 대해 실제로 입사해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는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이직을 향한 열망으로 치열하게 분석했던 '나'의 자아실현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하고 싶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커리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나에 대해 알고 싶은 열망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면 이직을 추천한다. 이직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나도 몰랐던 나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