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둘러보다 친구와 멈춰 서서 책을 하나 읽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비된 일러스트가 단순하면서도 강렬했다. 우주 비행사를 꿈꾸던 아이가 커서 꿈을 이루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책이었다. 2019년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인 <A Travers>라는 아동 도서였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주는 어린이 도서 분야의 노벨상 격이라고 한다.책에는 날짜와 장소 정도의 정보만 나와 있고 별다른 설명 없이 일러스트만 있었다. 친구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만들어 내면서 넘겨봤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선 자리에서 전부 다 읽었다. 짧은 독립 영화를 본 듯했다.
<A Travers>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Tom Haugomat의 작품이다. 세 가지 색으로만 레트로 빈티지 스타일을 표현했다고 한다.
<A Travers>을 덮고 몇 작품을 더 지나 전시장의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사람들이 많이 그려진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놀이터를 배경으로 한 그림 <모두의 수> 속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아이들이 보였다. 물구나무를 서는 아이, 휠체어에 탄 아이, 엎드려 있는 아이, 혼자 놀이를 즐기는 아이, 어딘가 시무룩해 보이는 아이. 각각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하며 한참을 쳐다봤다. 그러다 친구와 나를 닮은 아이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다리 한쪽을 들고 즐거워하는 검은 머리 아이와 그런 친구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미소 짓고 있는 보라색 머리의 아이.
피겨스케이팅을 흉내내듯 한쪽 다리를 높게 들고 있는 아이가 나, 그 옆에서 부끄러워하는 듯한 아이가 친구에 가까웠다.
<모두의 수>, 크리스틴 로스코프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수를 세며 그들이 들려주는 수백 개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각각의 이야기 속에 모든 사람은 타인과 별개의 자신만의 삶을 가지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전시회의 일러스트를 심사한 한 심사위원은 "독자가 그림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지, 이미지가 보는 이를 자극해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게 하는지" 등이 좋은 일러스트를 결정하는 요소라고 했다. 전시회를 다 보고 나니 그 말이 이해됐다. 내 기억에 남는 두 작품, <A Travers>와 <모두의 수>를 감상할 동안 나는 몰입했고 또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