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7일 이재명 경기 지사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저의 정책적 고민을 양극화 해소에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면 진보, 보수 정책을 가리지 않고 다른 후보의 정책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을 줄 알면 된다)’도 언급했다.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하겠다는 얘기다.
이 전 대표의 네거티브 공세 중단 선언은 이재명 지사보다 지지율이 열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충청권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밀리고 난 뒤에 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서 대선주자들이 갖춰야 할 '바람직한 리더의 정치와 태도'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정치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인 정치. 이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기와 대니얼 지블렛이 강조한 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상대 진영을 물리쳐야 하는 적이 아닌 정책적 경쟁자로 바라보는 ‘상호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정치학자 후안 린츠의 말을 인용해 "이념적으로 멀다고 해도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강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상대 정당과 연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서로를 사회 문제의 민주적 해결책을 함께 논의할 동등한 정치 주체로 보는 '상호 관용'은 대선 후보자들이 앞으로 보여줘야 할 태도다.
상호 관용의 태도를 기반으로 정치를 실현한 대표적인 리더가 바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그는 우파인 기민당 소속이지만 좌파의 정책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등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징병제 폐지, 가정 복지 강화, 양성 평등 정책 등 사민당과 녹색당의 핵심 주장을 전격 수용했다. 원전 신봉자였던 메르켈은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소 폐기를 전격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메르켈은 독일 국민들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메르켈 총리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자국민이 75%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선 주자들이 메르켈과 같은 리더가 되기 위해 중요한 건 상호 관용의 '실천 여부'다. 이낙연 후보가 네거티브 공세를 중단하고 정치 진영에 상관없이 ‘양극화 해소’라는 본인의 정치 목표 달성을 위해 정책 경쟁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것 그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한국판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나오기 힘들다.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를 쓴 언론인 슈테판 코르넬리우스는 메르켈을 '말보다 실천을 중시한' 정치인이라 평가했다. 이 후보를 포함한 다른 대선 주자들도 상호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실현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선 과정에서의 네거티브 공세 최소화는 그 첫걸음일 것이다.
당내에서 네거티브 중단 선언만으로 이재명 대세론을 깰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전 대표가 제시한 방향은 맞다는 점이다. 대선주자들은 당장 눈앞의 선거 승리에 매몰돼 상호 관용이라는 리더의 기본 자질을 잊어선 안 된다. 앙겔라 메르켈처럼 집권 마지막까지도 자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