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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영 Dec 30. 2020

지리적 격차는 공감의 격차가 된다

[책] 20 vs 80의 사회 _ 배타적 토지용도 규제


 유명 자사고가 있던 지수의 동네는 상류층 이상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 동네에 들어올 수 있는 이들은 정해져 있었다.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던 탓에 노래방, 피시방은 발도 들이지 못했다.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클럽, 술집 같은 유흥업소도 당연히 들어올 수 없었다. 밤이 깊어져도 술에 거나하게 취해 고성을 지르며 돌아다니는 이는 보기 힘들었다. 그 덕에 지수의 동네는 공부하기 좋은 곳이 됐다. 경제력 있는 부모라면 좋은 학교가 있고 공부 환경도 잘 갖춰진 지수 동네에 살고 싶어 했다. 집값이 올랐다. 중상류층 사람들이 동네에 더 많이 들어왔다. 그렇게 지수의 동네는 ‘부유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지수는 그런 자신의 동네와 자신이 다닌 자사고를 '꽃밭'이라고 표현했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만 우리 고등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어. 간혹 다른 동네 애들도 오긴 했는데 대부분 잘 사는 애들이었지. 외고 가려다 못 간 애들, 부모님이 의사 거나 뭐 그런 애들. 꽃밭이었지."


그 옆 A동네는 00 시장이 있는 곳이었다. 분위기는 지수의 동네와 딴판이었다. 밤이 되면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외버스터미널 쪽엔 성매매업소도 많았다. A동네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지수 동네 아이들보다 공부를 못했다. 00 시장은 지수 동네 사람에게 유난히 박했다. 지수 동네에 비해 잘 살지 못하고 대우받지 못한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배척일지도 몰랐다. “우리 동네 사람한텐 물건 자체를 팔지 않겠다고 거부한 적도 있었어.” 말을 마친 지수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거절당한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되레 우월감 같은 것이 표정에서 조금 베어 나왔다. 그도 알게 모르게 A 동네와 자신의 동네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지수의 이야기는 21세기 오늘날 우리 사회 속 지역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다. 지역 간 단절로 인한 사회적 유대 상호작용의 단절은 또다시 지역 간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넓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사회도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리브스는 그의 저서 '20 VS 80의 사회'에서 미국에도 중상류층이 밀집해 사는 구역이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이를 그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라고 칭했다. 토지의 분리는 경제적인 불평등과 더불어 사회적 분리로까지 이어진다. 사는 곳에 따라 계층이 나뉘고 각 계층은 자신들만의 세상에 갇힌다. 상이한 계층 사이에 사회적 유대와 상호작용도 줄어든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 막연한 편견을 갖게 되고 일반화한다. 사회 갈등의 길로 들어서게 되기 쉬워진다. 지리적 격차가 공감의 격차로 이어지게 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지역의) 분리는 경제적 불평등도 일으키지만 이보다 덜 가시적인 또 다른 종류의 불평등도 일으킨다. 이웃들이 모두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면 우리는 커다란 거품 안에 살게 된다. 주거지가 경제적 계층에 따라 분리되면 이는 학교, 교회, 지역 공동체 등의 사회적 분리로도 이어진다. 그러면 상이한 계층 사이에 사회적 유대와 상호작용이 줄어든다. 지리적 격차는 공감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20 대 80의 사회> p.158 , 리처드 리브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명문대를 다니는 지수 ‘한강 뷰’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고교 때의 경제력은 대학생 때까지도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지수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고 나면 “친하게 지내야겠네요”, “온실 속 화초처럼 컸겠네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거주지로 사람의 계급이 정해지는 곳이었다. 나 또한 그런 사실을 알고 있고 사회 불평등 강화에 기여하고 있었다. 은근히 우쭐한 표정으로 “나랑 친한 친구네 집 한강 뷰야” 따위의 말을 내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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