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 속 소수자 혐오를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살폈다. 지난 글에서 다룬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의 저서 <편견>도 도움을 줬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속 여성 배제와 혐오
고전 뮤지컬에는 여성이 배제된 작품이 많다. 뮤지컬 시장에서 킬러 콘텐츠로 꼽히는 <지킬 앤 하이드>가 대표적이다. 1인극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모든 분량과 넘버는 남성 주인공 '지킬' 한 명에게 쏠려있다. 여성은 주인공 '지킬'을 돕는 순종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비중은 지킬에 비하면 현저히 적다.
여성 캐릭터가 이분법적으로 그려진다는 지적도 있다. 두 명의 여성 캐릭터 중 한 명은 성녀이고 한 명은 창녀다. 여성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 성적으로 순결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눈 셈이다. 인간이 ‘성적인 순결함’의 여부로 평가되어서는 안 되고 그저 인간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건 상식 수준의 이야기이지만, 지킬 앤 하이드에서 이 상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귀하게 자란 성녀 ‘엠마’는 극 중 ‘숙녀’, ‘천사’로 불리는 반면 창녀인 ‘루시’는 툭하면 남성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뺨을 맞는다. 각종 폭력과 억압 속에 살며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루시는 가해자에게 위로를 받으러 가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지킬의 다른 인격체 '하이드'가 입힌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지킬을 찾아간 것이다. "왜 나에게 왔느냐"는 지킬의 물음에 루시는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건 당신이 처음"이라고 답한다.
지킬이 하이드가 되어 휘두르는 폭력은 ‘또 다른 나’, ‘인간의 이중성!’ 따위로 정당화된다. 온순한 지킬로 돌아왔을 때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루시는 모든 걸 용서한다. 술만 마시면 괴물로 변해서 폭력을 행사하고 아침이 되면 미안하다며 꽃다발을 선물하는 범죄자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그려진 캐릭터들인 탓에 이런 성차별적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지킬 앤 하이드>는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이 당연시되던 19세기 영국 출신 작가가 쓴 이야기이다. 그래서 작품이 탄생한 시대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예술은 예술로 바라봐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훌륭한 고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그냥 봐라’는 등의 의견도 있다.
그래서 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보지 말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품 속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을 못 본 척하고 '예술'은 '예술'로 즐겨야 하는가. 아니면 왜곡된 성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중단해야 하는가.
홍성수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예술을 상영 허용 또는 금지와 같은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의 지형을 협소화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말한다.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손쉽게 ‘규제’ 카드를 꺼내 든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라고도 서술한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해당 공연을 금지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뿐더러 문화예술 산업을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도 ‘무조건 금지’는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든 올포트는 그의 저서 <편견>에서 “물론 (문화예술 콘텐츠) 생산자들이 예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고정관념과 접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은 아마도 조악한 방법”이라고 했다.
소비하되 비판적으로 바라보자
나도 <지킬 앤 하이드>를 여러 번 봤다. 그리고 볼 때마다 ‘최애’ 배우의 가창력과 연기력에 감탄하곤 했다. ‘Confrontation’, ‘Once upon a Dream’ 등 한 번 들으면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킬링 넘버(노래)도 많다. 어려운 넘버와 뛰어난 연기력을 요하는 장면이 많아 배우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뮤지컬 덕후로서 좋은 넘버들을 듣고 배우들의 열연을 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고정관념을 아예 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반대했던 고든 올포트는 “고정관념을 분화하고 그것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편이 (무조건 금지하는 것보다) 더 낫다”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길러주자는 얘기다. 이는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임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실천할 수 있다.
<지킬 앤 하이드>를 못 보게 하는 대신 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한계점을 끊임없이 알리는 방법을 택하자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면 뮤지컬의 배경과 줄거리, 배우들 프로필 등이 적힌 프로그램 북에 극이 가진 사회적 논란과 문제를 적는 것이다. ‘엄청난 극’, ‘안 보면 후회할 작품’이라고 칭찬만 나열하는 것보다 명백한 시대착오적 혐오 표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장면들을 언급해 관객들에게 미리 알리고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밝히면 어떨까. 프로그램북에 줄거리를 설명한 뒤 “지킬 앤 하이드는 19세기 영국의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을 보여준다.”라는 식의 문장으로 시작해 작품의 한계점을 적는 것이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작품 홍보를 위해 인터뷰를 할 때 해당 극의 잘못된 여성관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주면 <지킬 앤 하이드>는 ‘여성 혐오가 난무하는 불편한 작품’이 아니라 ‘여성권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던,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던 과거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극’이 될 거다. “그 시대에는 여성을 이런 편협한 시각에서 봤구나”하는 깨달음을 준다면 관객들은 고든 올포트가 말한 ‘고정관념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극이 가진 한계점을 알리면 뮤지컬 팬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작품을 소비할 가능성이 크다. ‘뮤덕’들은 윤리적, 도덕적 문제에 엄격하기 때문이다. 2019년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이 한창일 때 오디컴퍼니에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앙상블들의 인터뷰 내용을 짤막하게 올린 적이 있었다. 그중 극에서 소아성애자로 나오는 ‘주교’의 역할을 맡은 한 배우의 인터뷰가 성 차별적 발언을 담고 있어 문제가 됐다. 당시 두루뭉술한 컴퍼니 측의 사과문 게시물에 ‘정말 극 중의 주교 같은 말을 썼다’, ‘안 그래도 여성 인권 관련해서 말이 많은 작품인데 배우들의 인식이 이것밖에 안 되나’ 등의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
또 다른 앙상블 배우는 ‘루시가 남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라고 발언해 비난받기도 했다. 이에 한 댓글은 “루시는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보고 있는 남성 중심 사회의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이뿐만 아니라 성범죄를 방관한 배우를 끊임없이 보이콧하는 모습 등은 뮤덕들이 배우들의 인성,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해 민감하게 반응함을 보여준다. 뮤지컬 팬들의 이런 특징을 고려했을 때 사회문제에 더 섬세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오히려 작품과 뮤지컬 컴퍼니 이미지에 득이 될 것이다.
‘소비하되 문제점을 알려서 비판적 시각 기르기’.
<지킬 앤 하이드>라는 극에만 한정되는 해결책은 아니다. 다른 뮤지컬 작품, 고전 소설, 영화, 연극에도 적용 가능하다. 온라인 작품 설명란에서, 해당 책 머리말에서, 각종 서평에서 작품에 담긴 편견, 고정관념 등 한계점을 설명해주면 된다. "고전이잖아",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는 말들은 이 사회의 수많은 차별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이더라도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짚어줘야 바뀐다. 문화 예술 작품들이 진정한 명작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이다.
사진 출처 : @od_musical 인스타그램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