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사시킨 몸을 회복하려면? <몸이 나를 위로한다>
몸이 무너지면 불안과 긴장은 치솟아 오른다. 그러다 결국 정신도 무기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밖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멈추고 어쩔 수 없이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왜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혹사시켜야만 했을까?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항상 뭔가를 더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고, 뭔가를 하고 있을 때는 그나마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주어진 일을 해내야 했고, 그렇게 내 몸을 희생양 삼아 많은 것들을 이루어갔다.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소리를 외면한 채로 말이다.
몸이 아프고 멘탈이 붕괴되는 것을 겪으면서 나는 기존의 상태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굴복이었고, 엄청난 고통이었으며, 또 심리적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무너지는 힘을 받아들였을 때, 신기하게도 새로운 변화의 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을 삶의 준거로 삼으려면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몸에 대한 즐거운 감각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몸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회피하기 위해서 몸을 떠나고, 쾌감을 느낄 수 있을 때 돌아온다. 따라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몸의 쾌감을 탐색하고 온전히 느낄 때, 자신의 몸과 좀 더 친밀해질 수 있다.
자신의 몸과 친밀해지는 것은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몸에 가까이 다가가고, 몸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이다. 내 몸은 언제, 어디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의외로 화장실, 목욕탕, 산책길처럼 몸이 주체가 되는 공간에서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얻는다. 의식이 본능을 방어하거나 누르지 않을 때, 열려 있는 몸으로 돌아와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몸과 가까워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일상에서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움직임부터 시작하자. 예를 들어 가만히 앉아서 가볍게 흔드는 리듬이 있다. 마치 아기의 요람을 흔드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좌우로 흔들어주는 리듬은 자신을 향한 위로가 될 수 있다. 또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꼭 안아주는 것도 시도해볼 수 있다. 이때 자신의 몸을 눌러주는 적당한 압력은 사랑이다. 마치 엄마가 아기를 꼭 안아주는 것처럼 자신의 모성으로 자신을 꼭 안아주는 것은 자신을 향한 보살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몸에서 따뜻하고 편안하며 즐거운 감각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면, 마음속에 작은 회복의 샘이 생기는 것이다. 노자가 말했다. 기분이 우울하다면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고, 불안하다면 미래에 살고 있는 것이며, 마음이 평온하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행복과 평온을 만나기 위해서는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몸의 좌표가 있는 바로 그곳으로...
나를 돌보는 12가지 몸챙김의 지혜
<몸이 나를 위로한다> 중에서 https://url.kr/4ers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