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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Sep 02. 2020

스마트폰 killed the 라디오 청취자

스마트폰이 바꾼 FM 라디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영국 밴드 The Buggles가 1979년에 발표한 곡이다. 제목이 주는 강한 메시지 덕에 , ‘보는 음악’을 표방하며 1981년 개국한 MTV에서 가장 처음으로 방영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The Buggles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고 노래했지만 라디오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무사하다. 대신 스마트폰이 조금 다른 면에서 뭔가를 약간 한 것 같다. 스마트폰은 라디오 청취자들을 지워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수록된 The Buggles의 데뷔 앨범 ‘The Age of Plastic’ (1980년 발매)

 오래전 일이다. 1995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엽서를 보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시작되었고, 야자 시간에 몰래 친구랑 같이 들었습니다. 그때 둘이서 “야~ 정말 어색하고 딱딱하게 진행하신다. 얼마 안 가 아저씨 잘리겠다.”며 걱정했었는데 오래 진행하고 계셔서 좋습니다. 저는 지금 군 복무 중인데, 가끔이지만 방송 잘 듣고 있습니다. 신청곡은 Chicago의 ‘Will You Still Love Me?’입니다.”

 

 엽서를 보내긴 했지만, 내 것이 방송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시엔 모든 사연과 신청곡은 엽서나 편지로만 받았고, 그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경쟁을 뚫고 내 사연이 방송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다시 듣기나 팟캐스트도 없어서 결국 나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내가 신청했던 음악이 방송에 나왔었는지 여부도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듣지 못했지만 라디오에서 내 사연을 들었다는 사람을 몇 명 만났다. 그중에서 친했던 선임(이 선임 덕분에 내 사연이 방송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에게서 꽤 자세하게 그 내용을 전해 들었다. 당시 배철수 씨는 고등학생이었던 청취자가 이제는 군인이 되어 있는데, 본인은 계속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DJ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소회를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 선임이 팝 음악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지 내 신청곡이 나왔는지를 되묻는 나에겐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 내가 방송을 직접 듣지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쉽지만 방송으로 나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고, 나는 내 사연이 방송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기뻐했고, 한동안 그 사실을 주변에 자랑하곤 했다.

‘Will You Still Love Me?’가 수록된  Chicago의 18번째 앨범 ‘Chicago 18’ (1986년 발매)
  시간과 진보를 타고 많은 것들이 더불어 변한다 

이런 변화가 늘 바람직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 때도 있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다. 그 시절 FM 라디오 DJ들은, 지금처럼 #****이나 스마트폰 앱 게시판 대신, 사서함으로 사연을 보내라고 했다. 네 개의 숫자로 된 수많은 ****님들이 보냈다는 짤막 짤막한 한 줄 글 대신, 어디에 사는 누가 보낸 것임을 꼭 밝히곤 제법 긴 사연을 읽어주었다. 라디오를 듣다가 휴대전화로 보내는 즉석 메시지가 아니라,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고 손으로 직접 쓴 글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누군가의 재치 있는 몇 글자 대신, 어떤 이의 기쁨과 슬픔의 삶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따로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건재하신 배철수 님 덕분에 그때 듣던 음악캠프를 나는 요즘도 자주 듣고, 어쩌다 한 줄 보내면 꽤나 방송을 탄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라디오가 여러 다른 매체에 밀려, 청취자가 적어진 탓도 있겠지만 DJ가 이름을 말한들 전화번호를 말한들 이젠 누구도 그것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일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이름이 어디 하나둘인가. 게다가 자신의 것 외엔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수없이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전화 끝번호 네 자리는 난수표와 같고, 갑자기 나오는 자신의 그것은 자신만이 아는 암호와도 같다. 예전의 라디오가 동시에 듣고 있는 수많은 청취자들을 연결해주는 허브였다면, 지금의 라디오는 익명의 청취자와 DJ 사이의 실시간 대화를 엿듣고 있는 느낌이다.


 1995년 나의 사연을 통해 당시 배철수 씨는 변해가는 자신의 주변과 성장해가는 청취자들에 비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삶에 대한 소회를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방송을 시작하신 지 고작 5년 만이었다. 올해 ‘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을 맞고 보니, 25년을 같은 자리에 더 계실지를 알지 못하고 그때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웃음이 나온다. 역시 사람일은 모를 일이다.


※ 30년간 같은 자리에 계셔주신 배철수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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