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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Sep 08. 2020

그 많던 가게는 누가 다 먹었을까?

사라진 음반가게, 사라지는 음반

 우리 아이들이 우체통을 모른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첨엔 좀 놀랐는데, 아이들에겐 사용한 적도, 사용할 일도, 이젠 알 필요조차 없는 물건이 된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 우체통이 사라지고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비로소 나도 깨달았다. 예전엔 너무나 흔하고 많았지만 달라진 세상에서는 사라져 가고 있어도, 어떤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아도 우리는 눈치채지 못한다.

 

 인터넷, 온라인 쇼핑 등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업종을 통틀어 레코드샵만큼 타격이 컸던 곳도 없을 것이다. '콘텐츠 산업의 디지털화'가 가져온 숙명이라고 보면, 비디오 가게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게들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마치 존재한 적 조차 없는 것 같다. 사라진 그 가게들의 숫자만큼 휴대폰 가게와 커피숍이 생긴 걸까 생각도 해본다.


 내가 단골로 가던 레코드샵이 있었다. '**마을 레코드', 내 취향을 눈치챈 후로 사장님은 항상 말을 붙이셨다. "뭐가 새로 나왔습니다", "뭐가 좋습니다.", "뭐는 들어봤나요?” 나한테만 그러신 것은 아닐 거라 다른 손님에게도 그러실 거고, 사장님 스타일이겠지 싶긴 했지만, 가끔은 귀찮기도 했다. 그 탓에 내가 그 사장님을 잊을 수가 없다. 이래 저래 세상이 변하고 레코드샵들은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둘 사라졌다. '**마을 레코드'도 사라졌다.


 내가 그분을 다시 만난 곳은 동네에 새로 생긴 커피숍에서였다.

동물을 테마로 하여 동물원 느낌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곳이었다. 나의 아들이 워낙 동물을 좋아하던 때라(지금도 동물 좋아하지만 공룡을 조금 더) 그곳에 몇 번 갔었는데, 어느 날 거기에서 그 레코드 가게 사장님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분이 그 커피숍의 사장님이셨다. 인사를 했다. 레코드샵에 대해선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거였고, 커피숍이 잘되기를 바랐지만 속으로는 그 커피숍의 경쟁력이 진심 걱정되었다. '나는 아들 때문에 온 건데...  커피맛 글쎄... 이 커피숍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국 그곳은 얼마 안 가 다른 분이 중식당으로 개업을 했다. 새로 내부 공사를 하지 않고 지금도 커피숍 때의 인테리어 그대로인 그 중식당 영업은 아주 잘 되고 있다.

   


 언제까지 있었는지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동네에 ‘시네북 클럽’이란 상호의 비디오&책 대여점이 있었다. 내가 단골이기도 했지만 유독 그곳이 애착이 갔던 것은 그 가게 사장님 때문이다. 그분은 왜소증 장애인이셨다. 새로 나온 비디오에 대해 설명도 잘해주시고 농담도 잘하시고 아주 친절하셔서 좋았다. 왜소증을 가지신 분이라 다른 일을 하려면 아무래도 제약이 있을 텐데, 비디오 대여점이 그분께는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전국에 레코드샵, 비디오 대여점이 몇 개나 있었을까? 몇천 개? 몇만 개? 그들은 일순간 모두 증발해 버린 느낌이다. 그 모든 콘텐츠들은 몇 손가락으로도 꼽을 만큼 소수의 음원 공급사, IPTV 회사들이 모두 다 삼켜버렸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짧게든 길게든 늘 망설이고, 항상 최선임을 믿고 선택을 하지만, 그 끝에 딸려오는 것은 환희일 때도 후회일 때도 있다. 한참 후에, 돌이켜보면 그때의 아찔함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내가 학생일 때 부모님은 가끔씩 나에게 ‘레코드샵’ 개업을 권하곤 하셨다. 내가 워낙 음악에 심취해있기도 했고, 어쩌면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할 것처럼 보여서였을 텐데...... 진지하게 하신 건지, 그냥 해본 말씀이신지는 모르겠다. 어떤 쪽이든 내가 음악을 아주 좋아하고 음반을 줄기차게 사다 모으기 때문인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나는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음주도 즐기지 않고, PC방, 당구장도 거의 간 적이 없다. 학창 시절 내가 받은 용돈의 대부분은 레코드 가게로 흘러들어 갔다. 그런 나를 지켜본 부모님은 레코드샵이 꽤나 괜찮은 유망 업종이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부모님에게서 레코드샵 얘길 들을 때 내가 솔깃했던 것도 사실이다.

레코드를 고르는 순간

“ ‘**마을 레코드’ 사장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시네북 클럽' 사장님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


 내가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예견해서 레코드 가게를 안 했던 것이 절대 아니다. 누구든 레코드샵을 시작할 때 판매가 저조할 수도 있을 거란 우려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레코드가 사라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그때의 나에게 약간은 고마운 마음이다. 내가 레코드샵을 선택했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분명 지금은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사라진 것들이 그립다. 바깥에서 볼 수 있는 큰 유리창 안쪽 진열대에 새로 나온 음반들이 전시되어 있고, 가게 앞을 오가는 행인들을 유혹하던 새 노래들이 항상 들리던 레코드샵들이, 그 안에서 음반을 고르던 일이 가끔은 아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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