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복제 시대의 탈아우라화
이 글에서는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을 간략히 종합해본다.
아우라란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을 지칭한다. 사진과 영화의 등장으로 기술 복제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예술에서 아우라가 몰락하고 예술 경험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예컨대 과거의 회화는 아우라를 갖고 있었다. 이는 일회성(Einmaligkeit), 진품성(Echtheit), 원본성(Origianalität), 그리고 거리감 때문에 생겨난다. 여기서 거리감은 쉽게 볼 수 없으며 보더라도 다가갈 수 없고 다가가더라도 소유할 수도 만질 수도 없음을 뜻한다. 회화는 근대 이후 세속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라로 나타나는 제의 가치(Kultwert)를 보존한다. 아우라를 갖는 작품은 보는 것에 집중해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식으로 감상해야 한다. 즉 이런 작품을 감상하는 지각은 침잠적이며 시각적이다. 감상자는 자신을 버리고 작품에 동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량 복제가 가능한 사진에서는 아우라가 사라지는 탈아우라화가 일어난다. 회화의 일회성, 진품성, 원본성은 사진의 반복성, 복제성, 복수성으로 대체된다. 복제된 사진과 프린트된 그림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성당이나 저택이 아닌, 거리의 카페에서 언제든 가까이 만날 수 있다. 거리감은 가까움으로 전환된다. 사진처럼 대량 복제 가능한 예술품은 제의 가치가 아닌 전시 가치(Ausstellungswert)를 갖는다. 사람들은 카페에 걸린 사진을 집중해 감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분산적으로, 즐기면서, 일상 속에서 총체적으로 지각한다. 이를 벤야민은 촉각적 지각이라고 부른다.
탈아우라화로 예술에 대한 이해 자체가 변화한다. 더 이상 사진이 예술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상 모든 예술이 사진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대상도 달라진다. 사진은 뒷골목, 일반인 등 평범한 일상의 흔적을 기록한다. 이로써 예술의 대상은 아우라로부터 해방된다. 사진은 아우라가 아닌 흔적을 담는다. 흔적은 아우라와 반대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가까이 있는 것의 현상’을 뜻한다. 예술 작품과의 거리감도 멀리 있음에서 가까움으로 역전된다.
출처: 박대민(2021). NFT 아트 : 예술계의 탈중앙화와 흔적의 아우라. <한국언론정보학회>. 109호. 127-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