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제주로부터 현재 너머로의 fusion 그리고 음식
지금 이곳은 제주濟州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셤> 섬이라는 뜻의 담, 나라라는 뜻의 라. 탐라는 왕을 가진 별도의 나라였고,
시대에 따라 탐모라. 탐부라. 섭라, 담라, 둔라, 영주라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었다.
서기 661년 唐書에는 유리도라 라는 탐라의 왕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제주라는 이름은 서기 1295년에 고려에서 목사와 판관 등을 파견하면서 비로소 생긴 이름이다.
그 이전엔 신라 주변의 아홉 나라 9한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거란) 여진 예맥 중의 네 번째 나라 ,섬 둘레가 400여 리 되는 셤나라였다.
근대에 와서도 4.3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겪은 변방.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육지사람'이라고 칭하는 제주인들을 외지 사람들은 흔히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다고들 말한다. 기록에 따르면 탐라인들은 신라나 조선과 풍속도 언어도 참 많이 달랐다고 한다.
당서에는 담라 사람들은 개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여름에는 草집에 겨울에는 굴에서 살아간다고 기록되고, 1056년경의 송의 역사기록에는 의관이 당나라 사람과 같고 한자를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의 언어나 풍습도 시기별로 중국 한반도 일본 원나라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고 여겨진다.
뱃길로 이어지는 교류의 결과였을 것이다.
크기는 제주보다 크지만 한라산과 비슷하게 생긴 화산과 오름 분화구가 있고 역사적으로도 이탈리아의 변방이던 시칠리아 사람들도 자신들을 이탈리아인이라고 불리기보다 시칠리안이라고 불리길 원한다지 않는가.
긴 시간 대를 이어 산 섬사람들의 성향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다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육지 사람들에게는 이어지지 않는 유리도라라는 왕의 피가 공동체 안에 희미하지만 흐르고 있지 않겠나.
1271년 삼별초가 탐라로 후퇴한 뒤 1273년 여몽연합군에의해 토벌되고 1368년 원나라가 고려에게 돌려줄 때까지 탐라는 원나라가 다루가치라는 관리인을 두고 소 말 낙타 당나귀 양등을 포함 황실의 말도 방목하는 방목지이기도 했다. 오랜 원의 지배 시기 동안에 몽고의 풍습은 '몽고풍'이라는 유행을 몰고 고려의 문화에 흡수되어 족두리, 신부 얼굴의 연지 찍기, 순대, 만두, 소주, 설렁탕 등의 우리 고유의 문화로 퓨전화되어갔고 몽고에 전해진 고려의 풍습은 '고려양'이라는 이름으로 유행되며 녹아들어 갔었다. 고려양의 것들은 고려 과자라 불리던 유밀( 요즘은 초코파이가 세계 적으로 유행인데;;;) 의복, 고기조리법 등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상추쌈이 있다. 고려산 상추씨앗은 고가에 거래되어서 千金菜 천금채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였다.
상추는 주로 쌈을 해서 먹지만 배추전을 부치듯 전을 부쳐도 쌉싸름한 맛이 좋다. 고려양, 좋지 양! ( 이것은 제주어임.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