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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Mar 05. 2023

불행 배틀로 하는 위로와 위안,
영화 [드라이브마이카]

서로의 이야기를 동력 삼아 나아간다


 

출처 | IMDB

영화는 3시간을 노래하듯 분절된 이야기들을 리듬감 있게 꿰맞추어 놓았다. 이야기와 이야기의 반복은 지루할 틈 없이 흥미를 돋우었다가, 의심을 품게 했다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게 하기도 한다. 그런 별개의 이야기가 주는 섬세한 흐름은 예민하고도 구체적인 텍스트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를 소리로써 반복하는 도움을 받기도 한다.


 












모든 인물에게 연극적 대사 톤을 요구하면서도 실제로 연극 무대를 영화의 중심에 두고 있는 구조는 관객에게 묘한 기시감을 부여하는데, 그 기시감은 연극 무대에서 펼쳐지는 대사들이 무대뿐 아니라 차 안으로도 들어오며 소리의 반복을 통해 차차 안정감으로 다가온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연극 무대의 연습용으로 차 안에서 오토(키리시마 레이카)의 대사 녹음을 듣는 습관이 있다. 가후쿠가 대사 녹음을 듣는 동안 영화는 관객에게도 넌지시 함께 녹음을 들을 시간을 부여한다. 그런 시간에서의 장면 전환은 무대 위의 가후쿠로 이어지고, 가후쿠는 또 한 번 무대 위에서 관객과 함께 듣던 대사들을 연극배우로서 들려준다. 



시간이 지난 후 드라이버로 미사키(미우라 토코)가 고용된 후에도 가후쿠의 습관은 변함이 없다. 가후쿠와 미사키가 있는 그 붉은 차 안에서 그들과 함께 또다시 관객들은 오토의 녹음을 듣게 된다. 이후 장면들에서는 가후쿠의 연출 지시 아래 극의 배우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통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수어로 대사들이 들려온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조금은 기시감이 느껴지던 대사들이 반복되다 보면 관객은 들려오는 연극 대사들이 수어인지, 불어인지, 일본어인지, 중국어인지, 한국어인지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영화를 귀 기울여 듣게 될 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마치 최면을 걸듯 행하는 '반복'으로 관객을 그들의 세상으로 살짝 들어오게 만든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결국 서로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처럼 그 과정에 관객도 함께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후쿠의 연출 지시 아래 감정을 모조리 빼고 읽던 대본 연습이 반복되다 배우들이 움직이며 연습할 기회를 얻게 되자, 꾹꾹 참다 마침내 기회를 잡고 터뜨리는 감정들은 파도가 밀려오듯 영화 전반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온다. 배우들의 감정이 밀려오는 이 시기에 가후쿠와 미사키가 타고 있는 ‘차’라는 공간에서도 그들의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먼저 차가 가지는 의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차는 가후쿠가 대사를 연습하고 극을 이해하고, 흐름을 가지는 곳이다. 유일한 혼자만의 공간이자, 폐쇄적인 공간인 것이다. 그곳에서 가후쿠는 아내, 오토가 떠나고도, 2년 내내 오토의 목소리가 담긴 그 녹음을 들었다. 연습이자 극의 흐름 파악이라고는 해두었지만, 단순히 아내의 육성을 듣고 또 들었다. 그런 곳이었다. 가후쿠에게 차라는 공간은 아내를 그리워하다가도, 아내가 죽은 그날을 떠올렸다가 끝내 자책하는 공간이었다. 이 영화는 이 폐쇄적인 감정이 남은 차라는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며 또 다른 막을 시작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우려할 일 없을 만큼 조용히, 중력을 거스르듯 운전하는 미사키. 미사키는 오토의 목소리에 습관처럼 답하는 가후쿠의 담화를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이 이 차를 폐쇄적인 감정의 공간으로 인정하는 순간이 오자, 그들의 감정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폭발해 버린다. 자신의 과거를 서로에게 들춰내고 이야기하는 그들만이 차 안에 있을 뿐이다. 오토와의 관계를 가후쿠에게 은밀하게 표현하기도, 숨기기도 하던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도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오토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자신의 감정을 펼쳐놓고 만다.


출처 | IMDB

붉은 차가 미사키의 고향으로 향할 때, 보통의 카메라가 운전하는 앞모습 혹은 운전자가 바라보는 창의 모습을 담는 것과 달리, 영화는 역설적으로 차 뒤꽁무니의 시각을 담는다. 이상하고도 묘한 장면은 의문을 남기는데, 역설적인 카메라 방향은 이들의 관계가 급속히 맞닿아지는 빠르고 힘찬 물줄기로 보이기도 하는 한편, 서로가 가진 아픔이 남은 그 과거로 직접 맞닥뜨리러 가는 의지를 ‘거스르는 물줄기’ 그리고 ‘거스르는 도로’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 길에서 미사키와 가후쿠가 평소라면 차에서 절대 피우지 않는 담배를 함께 태우며 차창 밖으로 둘이 동시에 담배 연기를 보냈다가 다시 담배를 태우기를 반복하는 장면은 영화 내내 거리를 두던 그들 사이에 서로의 이야기가 마음을 열게 하고, 씻어낼 수 없던 자신의 마음조차 조금 덜어내 보이는 '해소'의 순간을 불빛으로 위로한다.

 



불행 배틀로 하는 위로와 위안, 어쩌면 그게 가장 최선의 해소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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