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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부부싸움 : 말의 태도에 대하여

다정은 말보다 먼저 닿아야 한다.

by 변대원

지난 주말 마트에 가던 길이었다.

아내가 민생회복지원금이 아이들 몫까지 자기한테 나왔다고 얘기하길래,

농담처럼 한마디 했다.


"그럼 아이들 밥값 좀 지원해~"


그런데 그 말이 아내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렸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매일 점심을 챙겨야 하는데, 아내가 바쁘니 그냥 내가 다 챙긴다고 했었던 상황이었다.

어차피 내가 챙기고 있으니 농담처럼 했던 말이었는데, 아내는 그게 자신이 아이들에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뉘앙스로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니 짜증 섞인 말투로 공격적인 말들을 내뱉는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고, 방어적인 말들로 일관했다.

그렇게 짧은 말다툼으로 끝났지만, 기분이 유쾌할리 없다.

밤이 되어도 습하고 더운 날씨는 더욱 불쾌지수를 높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내가 갑자기 나에게 돈을 입금했다.

아이들 점심값에 보태라는 것이다. 사실상 받을 필요요 없는 돈이었지만, 오늘은 다르게 반응했다.


"오~ 짱이네~" (이 말은 아내가 감탄사로 주로 쓰는 말이다)


그러자 아내는 내가 말 안 해도 나한테 보내려고 했는데, 내가 빈말이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기분이 나빴던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나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고, 농담처럼 한 말이라고 얘기하고,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내가 오해한 거라고 느꼈기 때문에 억울했지만,

반대로 아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 나쁘게 느꼈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농담처럼 한말이라고 했지만, 내심 내가 아이들 챙긴다고 수고한다는 말한마디 하지 않은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바쁘고 아내도 일 때문에 많이 바쁜 시기이고, 또 날씨가 너무나 쉽게 짜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무덥기도 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덕이 되지 않은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아이들을 챙겼다면, 아내는 내심 고마워했을 것이다.

그런 표현 잘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니니까.


결국 일의 원인은 나의 불필요한 말 때문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말은 무기가 된다.

친하다고 해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히려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삶은 여전히 나를 시험한다.

나는 또 한 번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다정은 말보다 먼저 닿아야 한다.

진심은 말이 아닌 태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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