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의 공기와 중년의 공기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낮 최고 온도는 30도를 넘고 아직 오전인데도 29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결이 다르다.
다른 절기를 몸으로 체감하는 일은 잘 없는데 입추만큼은 매년 크게 체감하는 것 같다.
분명 며칠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똑같은 온도라도 여름에 공기에서 가을에 공기로 바뀐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여전히 덥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쾌적해진 기분이 든다.
뜨겁게 독서하던 시절이 있었다.
책을 많이 읽고 싶었고 책을 통해서 성장하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 노력이 내 인생에 아주 뜨거운 여름을 만들어 주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열기가 불편함이 됐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성장했음을 느꼈고
어느덧 이전의 나를 조금은 내려다볼 수 있는 약간의 성숙에 이르렀다.
내가 뜨겁기만 할 때는 뜨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물속에 있으면 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대기를 꽉 채운 공기 속에 살아가고 있고 매 순간 숨을 쉬면서도 그것을 인식하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삶은 늘 곁에 있지만, 스스로 묻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자기만의 성장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삶의 기준이 생기는 것 같다.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하나씩 정해지는 기준 덕분에 나다운 삶의 모양이 잡혀간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런 기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미묘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는 마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때론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하고, 때론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그런 오해와 시행착오를 뚫고
내가 정한 기준대로 살아갈 줄 아는 게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추가 되었지만, 여전히 여름 속에 머물러 있는 이 계절처럼,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뜨겁게 성장할 수 있는 내 인생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20대 때나 30대 때나 내가 꿈꾸던 것들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계절과 절기를 거쳐오면서 분명 달라지는 것 같다.
열매를 맺으려면 뜨거운 햇살을 보다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
깊게 내린 뿌리가 더 많은 자양분을 끌어올릴 수 있다.
삶은 늘 어렵지만, 진리는 늘 이렇게 가까이 있다.
계절은 늘 순환하지만, 작년의 계절이 올해와 같지 않듯,
나 역시 반복되는 삶의 순환 속에 머물러 있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