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는 것과 차오르는 것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가장 참된 진심을 숨기는 가벼운 유희에 스스로를 잃지 말아야 한다”라고.
가끔 유튜브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1시간도 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단 유튜브뿐일까요. 사소한 유희, 관심으로 시작했다가 나도 모르게 원치 않는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파민이 분비되니 언뜻 그런 시간이 작은 행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닐 겁니다.
행복은 만족과 다르니까요. 행복은 만족이라는 단어보다는 충만이라는 단어와 더 가깝습니다. 만족이 외적 자극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라면, 충만은 내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느낌일 겁니다.
이번달 들어 계엄과 탄핵 이슈때문에 뉴스 검색시간과 유튜브 시청 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가벼운 유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의도치 않게 많은 시간을 빼앗긴 건 사실입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되어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게 참 안쓰럽지만, 이런 역사가 주는 의미도 분명 클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저의 작은 공간에서 가만히 명상하며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역시 흔들리는 건 나무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나 봅니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껴봅니다. 행복은 저 멀리 어딘가가 아닌, 손만 뻗으면 닿는 내 서랍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