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빠지고 처음 본 세상
평생 시력이 좋았다.
초등학생 때 안경이 쓰고 싶어서 일부러 잠시 눈이 나빠지려고 노력한 결과 1.0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중학생이 되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눈이 좋아지고 싶어졌다. 주변 어른들의 조언을 얻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끝에 몇 가지 생활습관을 바꾸었고 매년 조금씩 눈이 좋아져서 대학생이 되어 운전먼허를 딸 때는 양쪽 다 2.0이 되었다. 그 후로 10년 가까이 그 시력을 유지하다 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편차는 있었지만 대체로 1.2 / 1.5 수준을 유지했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멀리 있는 것들이 흐릿하게 안 보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낯선 경험이자 처음 보는 흐릿한 세상이었다. 요즘 여러 가지로 피로도가 높고. 살도 많이 찌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인지 중년에 들어 흔히 생긴다는 노안의 일종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눈이 나빠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눈이 나빠진다는 건 더 멀리 있는 것들을 선명하게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덕분에 얼핏 보던 것들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눈이 좋을 때는 무심코 지나갔을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으니 괜히 더 유심히 보게 되었고, 멀리 서도 잘 보였던 책제목이 흐릿하게 보여서 더 가까이 가서 보게 되었다.
눈이 나빠진 덕분이다.
선명하게 보일 때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흐릿하게 보여서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삶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에 따라 달라짐을 또 한 번 배운다.
눈이 좋을 때는 눈이 안 좋은 사람들이 보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늘 잘 보였기에 이해는 했지만 공감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눈이 나빠지고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정 거리 이상은 온통 흐릿한 세상. 때론 그 흐릿함이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오묘한 세상. 세심한 디테일보다 전체적인 레이아웃과 색감의 조화가 중요한 세상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오감의 경우 그 감각이 달라진 상태는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당연함의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달라진 시각적 당연함 덕분에 공감가능한 영역이 조금은 더 넓어졌다. 작가의 입장에서 참 감사한 경험이다.
물론 시력이 나빠졌다고 계속 방치할 마음은 없다. 나는 노안도 믿지 않는다. 시력은 그 사람의 생활습관에 따라 적응해 나가는 거라 믿는다. 어린 시절처럼 다시 눈이 좋아질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보려 한다. 흐릿한 세상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선명한 세상도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테니까.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도 안경 없이 편하게 책을 읽고 싶고, 여행을 가서 멋진 풍경을 더 자세히 감상하고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