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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Jul 08. 2021

자유와 속박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이 시대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 중 두 번째로 리뷰할 주제는 자유와 속박입니다. 요즘 시대는 자유에 민감한 시대입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뭐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유. 제가 브런치에도 리뷰했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라는 책에 나온 문구입니다. 고전에 나온 문구이지만, 이제는 누구나 아는 문구입니다.


    그런데 『자유론』의 문구와는 상관없이 교회에서는 순종을 요구하고 또 하지 말라는 것도 많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면 제한적이고 피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교회가 한몫을 했습니다. 마치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나 받지 않아도 되냐를 가지고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 할례가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에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무조건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말하는 곳은 없는 줄로 압니다. 하지만 할례를 대체하는 것들이 있죠. 십일조라든지, 술과 담배, 혹은 교회에서 하는 여러 사역 등이 초대 교회에서 갈등을 빚었던 할례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서 교회에 다니면 금기 사항도 많고 속박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생긴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는 오해입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개인의 경건을 위해 지키는 여러 항목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들은 복음의 핵심이 아닙니다. 개인의 경건을 위해 십일조를 하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전부가 이걸 지켜야 하는 건 아니죠. 이렇게 말하면 아마 반감이 생기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교회 차원에서 십일조를 권유하고 술과 담배를 금지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찬성합니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개인의 경건을 위해서 또 하나님이 주신 몸을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서 이런 것들은 아주 좋은 항목들이죠. 하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의무적으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은혜를 거부하고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교회가 이런 오해를 받고 있고, 또 오해받을만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기독교 복음은 실제로 엄청난 확장성과 포용성을 갖고 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이 말하기를 기독교의 복음만큼 확장성을 가진 종교는 없다고 합니다. 이슬람 인구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그 발원지인 중동 지역에 자리 잡고 있고, 힌두교와 불교, 유교 또한 여전히 그 발상지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다르죠. 초기에는 예루살렘이 중심이었지만, 나중에는 유럽을 넘어 북아메리카가 주도했고, 현재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만큼 포용적이고 문화를 존중하는 종교가 없다는 겁니다.


    또 다른 예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가르치지만 운율과 리듬, 감정 표출의 수준, 기악 편성 따위를 시시콜콜 처방하지 않죠. 다양한 방식을 통해 문화적으로 표현되도록 맡겨 둡니다. 세간에서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기독교는 토착 문화를 파괴하는 서방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다른 신앙들보다 문화적으로 더 다채로운 양상을 보입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 비교했을 때 더 너그럽고 포용적인 종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자유란 무엇일까요? 구속과 제한이 없는 것?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 팀 켈러 목사님은 이 책에서 구속과 제한이 자유의 통로가 되는 경우를 소개합니다. 음악적인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몇 년 동안 피아노 연습을 거듭해야 합니다. 피아노 연습이 당장은 구속과 제한이 되겠지만, 후에는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규율과 제한은 우리의 본성과 능력의 현실에 맞을 때만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산소를 흡수하면서 삽니다. 물고기가 사는 환경을 물로 제한할 때에만 물고기는 자유롭습니다. 이처럼 삶의 여러 영역에서 자유는 제약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올바른 한계, 다시 말해 자유를 불러오는 구속을 찾아내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 현재 사회에 만연한 자유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뭐든 해도 된다는 식의 자유는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올바른 제한과 통제, 인간의 본성과 잘 들어맞고 자유를 불러오는 제약과 제한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인간의 본성에 맞는 제약과 제한을 아주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며 삽니다. 일을 하든 취미 생활을 하든 밥을 먹든 선행을 하든 무엇을 하든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삶을 통해 자기 부인의 본을 보여주셨고,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이 자기 부인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자기 부인은 쉽게 말해서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성경은 그러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부인을 할 때 더 온전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리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자유는 뭐든 하도록 방치하고 놔두는 게 아닙니다. 자유는 올바른 제한과 통제, 개개인의 본성과 잘 들어맞는 제약과 제한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이런 의미의 진정한 자유를 잘 보여줍니다.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한테 초점을 맞추라고요. '본인 스스로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럴 때 오히려 더 나다워지고 더 온전해진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자유에 대한 진리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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