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디자이너 May 16. 2021

아버지와 새아버지

상처 일곱.

내 나이 서른넷, 아버지 예순둘



아버지가 차도 위를 걷고 있었다. 그곳은 아버지의 낚시가게 앞에 있는 도로였다. 아버지는 양팔을 쫙 편 채로 노란색 중앙선 위를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다행히 지나는 차는 없었고, 도로는 희뿌연 안개로 자욱했다.



아버지는 소매가 긴 흰 옷을 위아래로 입고, 흰 버선을 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는 뭔가에 홀린 듯 앞만 보며 걸었다. 나는 아버지를 다급히 불렀다. '아버지, 위험해요!' 소리쳤지만, 내 입은 꾹 닫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울기 시작했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기 바랬다. 더 크게 소리 내 울려해도 꽉 다물어진 입이 꿈쩍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도로 위 언덕까지 다 달았다. 저 언덕을 넘으면 아버지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해졌다. 머리와 몸을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면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내 목소리가 도로가에 쩌렁쩌렁 울리더니 자욱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아버지가 나를 향해 돌아보려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구나. 베개가 흠뻑 젖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얼마 전 엄마는 아버지가 간경화 증상으로 몸이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 3년이 지나도록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 아버지도 연락한 통 없었다. 3년 전 결혼식 문제로 아버지와 연을 끊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동안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꿈을 꾸고 난 며칠 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를 낳고 백일쯤 되어서였다.  

"잘 지내냐? 아기 보고 싶은데 한번 가도 되겠냐?"

나는 아버지에게 잘 지냈냐는 인사도 없이 차가운 말투로 주소를 가르쳐줬다.



다음날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왔고, 아버지는 들어오자마자 손주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아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니 할아비다. 그놈 참 잘 생겼네. 어이구, 이쁘기도 하지."



 아버지에게서 아기를 어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손주를 안고 있는 아버지를 보니 나는 눈물이 울컥했다. 미운 아버지였지만, 아버지가 그리웠었다. 그래도 나는 애써 참으며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부족한 아버지를 용서해라. 니 엄마가 나는 무서워서 그랬다. 아버지가 니 엄마한테 지은 죄가 크다. 그런데 내가 너 결혼식에 가서 앉아 있어 봐라. 나는 그날 니 엄마랑 이모들한테 돌 맞아 죽었을 거다. 아버지 입장도 이해해라."

아버지는 늘 그랬었다. 자식보다는 당신이 먼저였고, 자신의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3년 전,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친부모님을 모시고 식을 올리고 싶었다. 이혼한 부모님도 자식이 결혼할 때가 되면 그렇게들 한다고 해서,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아버지의 낚시가게를 찾았다. 결혼하는 딸 소원 한 번쯤은 들어주겠지, 싶었다.



새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만 그 자리 보낼 수 없어. 내가 있는데, 나는 그렇게 못해."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말을 거들었다.

“내 쪽에서 결혼식 할 거면 새엄마 내 옆에 앉힐 거고, 니 엄마랑 결혼식 하면 결혼할 때 주기로 한 돈은 못 준다. 나도 축의금이 들어와야 돈 줄 수 있어. 니가 알아서 결정해라."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새엄마랑 바람나서 처자식 다 버리고 떠난 아버지였다. 엄마가 자식 넷을 힘들게 키운 것 알면서도 새엄마를 그 자리에 앉혀놓고 결혼식을 하겠다고? 무슨 염치로? 아버지의 이기심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저녁밥은 먹고 가라고 붙잡는 아버지를 뿌리치고 신발을 신었다. 엄마 쪽에서 식을 올리면 돈을 주지 않는 아버지의 말에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대출받은 학자금을 갚고 있어 수중에 돈도 없고 빚만 있었다. 낚시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데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도로를 걸으며 서럽게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울음 말고는 해소할 길이 없었다.

 "비겁해, 나쁜 놈, 내 아버지가 진짜 맞긴 한 거야?"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걷다 보면 울컥하면서 쏟아지는 눈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걷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울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발바닥이 아파와 주위를 살펴보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어두운 공장단지였다. 손목시계를 보니 밤 10시였다. 그제야 으슬으슬 몸이 춥고 떨려왔다. 집에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그날 밤 앓아누워 다음날에 병가를 내고 회사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다시는 아버지 만날 일 없을 거야. 어제로 내 아버지는 죽었어!"

그런 나를 엄마는 달랬다.

 "그러지 말고, 니 아버지 쪽에서 결혼 식해. 엄마는 쫄딱 망하고 돈이 없어서 니 결혼할 때 해줄 것이 없어. 니가 자식 중에 젤로 처음 결혼하니, 그동안 니 아버지가 여기저기 뿌린 돈이 많아서 축의금도 많이 들어올 거여. 시댁 식구들 눈도 있는데 너만 생각해. 나는 괜찮다."

엄마는 늘 자신보다 자식이 먼저였다. 다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바보야? 아무것도 없으면 어때. 힘들게 자식 키워놓고 무슨 소리야. 바람나 처자식 버리고 간 아버지랑 결혼식을 하라고? 그것도 새엄마 옆에 앉혀놓고? 엄마, 억울하지 않아? 나는 절대 그렇게 못해. 결혼식을 안 하고 말지."

 "그래야 니 아빠가 돈 준 데잖아. 그거로 혼수 마련하면 너도 좋잖아. 눈 한번 꾹 감고 혀."  



내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혼식 준비를 하던 나에게 새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내가 결혼식 날 너 데리고 들어가면 안 되겠냐? 그날 니 아버지가 돼줄게."

새아버지는 엄마 옆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늘 조용히 지냈다. 제대로 된 돈벌이를 못 해, 존재감 없이 엄마 그림자처럼 지내던 새아버지가 내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잡아줬다.




새아버지와 상견례를 하고도 나는 새아버지 이름을 청첩장에 넣을 수가 없었다. 새아버지 성은 '김'씨, 나는 '신'씨였다. 나도 내 아버지처럼 나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새아버지에게 드리는 청첩장에는 새아버지 이름을 넣고 나의 지인에게 돌리는 청첩장에는 아버지 이름을 넣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날 아버지 이름을 비워놓고 식을 올렸다. 새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남편만큼 설레는 얼굴을 하고 가슴에 꽃을 달고 활짝 웃었고, 내 손을 남편에게 넘겨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때 나는 몰랐다. 아니, 모른 척했었다. 새아버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내 친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아버지였고, 나는 새아버지에게 그런 딸이었다.  3년 만에 찾아온 친아버지는 아이를 앉고 활짝 웃었고, 나는 아버지를 다시 받아 드렸다.

  




지금이라도 낮고 아름다운 바닥들을 내 안에 불러들여 보듬는다면, 우리가 놓쳐버린 그 '곁'을 찾을 수 있다. 내게 있어 시와 고양이가 삶의 바닥과 곁이듯, 저마다 삶과 꿈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곁과 바닥은 다르다. 곁과 바닥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가 멀어졌을 뿐이다. 

p.158,당신은 시를 쓰세요, 나는 고양이 밥을 줄 테니, 박지웅 



이전 08화 아버지의 밍크 이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