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규모가 작은 시골 학교에 다닌다. 처음부터 다닌 건 아니고 도시에서 전학 온 지 반년이 지났다. 도시의 학교는 코로나19로 일주일에 한두 번 나가는 상황인데 아이들은 매일 학교에 간다. 전교생이 40명, 한 반에 10명 미만이 소규모 학교라서 그렇다.
학교 가는 아이들, 마중 나온 교장선생님
전학 이후 코로나로 등교가 미뤄졌고 학교에 나간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도 아들은 학교가 재밌다고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도 좋고, 특히 급식시간에 음식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도심에서 경기도 근교에 시골 작은 학교로 옮긴 이유는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들이 배가 아팠고, 긴장성 틱이 생겨서 코를 찡끗거렸다. 그리고 기상 두통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기상 두통은 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대학 병원에서는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큰 것 같다며 방학 때까지 지켜보자고 했다.
아들은 아프기 시작한 건 3학년에 되면서였다. 어느 날부턴가 아들이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며, 그곳은 지옥이라고 했다.그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들이 학교에서 엎드려있고, 친구들과 마찰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아들의 찐증을늘었고 학교 과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함께 노력하며 차츰 해결해가면서 좋아지는가 싶었는데학교에 못 다니겠다며 때를 썼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아들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설득도 달랬다 아들은 꾹꾹 참으며 학교에 다녔지만 결국 아들은 마음이 깊게 병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잘못 있고. 내가 아이를 약하게 키운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3년간 아이의 학교생활을 잘 해오지 못한 탓에 더욱 그랬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낙오자가 되지 않게 해 보겠다는 엄마의 노력, 이 모든 것을 아이는 느꼈을 거다.
결국엔 아이를 아프게 했다. 반짝 빛나던 아이의 눈은 흐리멍덩해지고, 눈동자는 흔들리고 짜증과 불만과 불안이 높아지고 말을 안 듣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아들이 점점 난폭하게 변해갔다. 꼭 하이에나같이 거칠어졌다.
나도 그런 아들을 보며 불만이 계속되었다.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는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하는 아들은 왜 그럴까?학교에서는 왜 늘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할까?친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까?약자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관계를 맺을까? 뭐가 문제일까?
동네 엄마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아들은 잡아야 하는데..."
'아이를 잡는다고?'
나는 왜 아들을 잘 키우지 못했을까? 나를 자책했다.
아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내 욕심을 아들을 위한다는 행동이 아들에게 가시가 되었을 그러한 말과 행동을 버리기로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들이 힘들어하는 학원을 하나씩 관두다 보니 결국엔 모두 관두었다.
그리고, 아들의 다름을 인정하기로 했다. 다들 아이 심리 상담을 추천했지만, 아들이 아닌 내가 심리 상담을 받았다. 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변하면 아이도 변한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