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디자이너 Dec 07. 2021

같이 살수록 더 좋은 남편



남편은 귀를 반쯤 덮은 약간의 웨이브가 있는 헤어스타일에 카라티나 남방,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가끔 정장을 입는 날에는 아직도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휴일에도 아침 일찍 머리를 감고 드라이로 정리해 흐트러진 모습을 모이지 않는다. 담배도, 술도, 게임도 하지 않는다. 주에 한편 정도의 영화를 본다.

  


아이를 낳고 일 년 정도, 정시 퇴근해서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집안일을 했다. 출근할 때는 자는 아이들 손을 잡고 기도하고 끌어안기도 뽀뽀하기도 하며 20분가량 머무른다. 출근 후 하루도 빠짐없이 점심시간에 전화해서 밥은 먹었는지 안부를 묻는다. 퇴근할 때는 영상통화로 아이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회사일로 힘들어하는 날은 늦게 들어올 자유를 줘도 아이들을 봐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집에 곧장 들어온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아빠 가슴에 딱딱한 스트레스가 있다며 풀어 달라고 말한다. 그럼 아이들은 합창하 듯 말한다.


“아빠 사랑해! 아빠 사랑해!,..”

그렇게 열 번을 얘기해달라고 조르며 아이들과 한바탕 웃는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은 회사 사람들 얘기를 주저리 하며 수다를 떤다. 무슨 위로라도 해주고 싶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맞장구를 치며 들어주는 것뿐이다. 너무 고마운 시간이다 변함없이 나에게 마음을 터놓고 있다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일로 집을 비울 때면 아이들을 챙겨 유치원에 등원시킨 후 출근한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해서 도서관에 가야 하면 함께 동행해서 아이들과 놀면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려 다. 이런 외조로 나는 든든하게 일하고 있다.



시댁에 가면, 남편은 부부동반 모임이 있다고 둘러대고 아이들을 맡기도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만든다.


그렇게 나와 함께 거리를 걸을 때면 그는 먼저 손을 쑥 내민다. 그리고 잡아 달라며 손을 흔든다.


같이 살수록 더 좋은 남편, 그림: 진우



남편의 내민 손을 볼 때면 나는 육아로 잊고 살았던, 잠자고 있던 여성성을 되찾는다. 


남편의 손을 잡으면 엄마에서 다시 여자가 된다.      



같이 살수록 더 좋은 남편, 그림: 진우





살아온 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고 물으면 남편을 만나고부터다. 남편을 만나고 여자가 되었고,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이런 남편을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한다.



남편은 같이 살면 살수록 더 좋아지는 남자다.      








그로부터 5년 뒤,


‘이렇게 평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윗글은 결혼한 지 8년쯤 되었을 때 쓴 글이다. 그때까지는 남편과 갈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온순하고 착한 남편을 나를 완벽히 맞춰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우린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거기에 남편의 ‘마흔 춘기'-사춘기보다 강력하다는-가 한몫했다. 모든 일상이 시빗거리가 되었다. 집이 지저분한 것도, 돈 쓰는 것도, 육아도, 나의 일도, 친정과 시댁과의 관계 등등 늘 이해하고 배려해 주던 남편은 이제 없었다. 우린 각방을 쓰기도 하고 한 달가량 말을 안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남편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았다. 나와 동갑내기에, 늘 '왕'처럼 굴던 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우선 나부터 길들여야 했다. 남편과 의견이 달라도 ‘네’라고 대답하며 남편을 존중하기 시작했고 아이들 앞에서 남편의 권위를 세웠다. 남편이 들어올 시간에 맞춰 따뜻한 밥을 차리고, 방은 걸레로 닦으면서 그와 나눈 추억을 곱씹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남편은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간 다툼은 가정 안에 '남편의 설자리'를 만드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결혼을 하면서 자신을 싹싹 쓸어 담아 가족들에게 내주었기에 남편은 없었다.



타로카드에 6번은 연인 카드이다. 여자와 남자가 등장한다. 둘은 발가벗고 있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다. 이주은 작가의 책 <그림에, 마음을 놓다>에서 사랑하는 사람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낯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본능이 이성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타로 6번의 연인도 거리 유지 중으로 보였다.


타로 6번 연인 카드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서로의 모습도 세상의 모습도 관찰하며 객관화시키고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하는 부부관계에서 거리 유지는 필수다. 자기 영역과 자신의 세계를 돌보고 지키면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을 때 사랑의 관계는 지속할 수 있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는 적당한 자리에 찾아 섰을 때, 더욱 깊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남편은 아직까지 같이 살수록 더 좋은 남자다.









...

리카르드 베리 1858-1919 [북유럽의 여름 저녁]










작가의 이전글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좇고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