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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진부함이란 이런 것일까? <대홍수>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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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짧은 응답

Q. 이 영화 어떤가요?

A. 타임 루프 SF를 재난 장르와 섞은 시도는 참신했지만 만두피를 열어보니 내용물이 다 상했다.



국산 SF 장르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과학 고증의 부실, 두 번째는 지나친 감성주의다.


<전지적 독자 시점>(2025)에 이어서 대규모 투자를 받은 김병우 감독의 넷플릭스 신작 <대홍수>(2025)는 설정 자체는 참신하다. 난데없이 집에 물이 차오르며 거대한 해일이 들이닥치는 재난 영화인줄 알았더니, 주인공이 기시감을 느낀 순간부터 장르가 변조된다.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인공지능의 머신러닝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타임 루프에 갇힌 채 최후의 인류를 예비하고 있다는 건, 일회성의 재난을 무한히 반복할 수 있는 좋은 트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담컨대 이 영화를 보고 난 시청자들의 뇌리 속엔 '엄마'라는 대사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대홍수>는 한국 SF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을 죄다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홍수>는 시작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한 설정들이 많은데, '시뮬레이션 상황'이라는 핑계로 너무 많은 것을 용인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아이 화장실을 찾는다던가, 물이 옥상까지 차오르고 있는데 물건을 훔치러 다니는 도둑 듀오,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물이 차오르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느새 옥상에 도달하면 귀신 같이 사라지는 사람들, 건물을 집어삼킬 해일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는데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미로같이 어두운 방을 탐색하는 주인공 등 언급한 것 이외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들이 수없이 반복된다.


인공지능의 머신러닝 상황이라고 해도 이런 헐거운 상황들은 덮어두고 보고 있기엔 괴로운 구석이 있다. 아니, 우주에 인간의 복제체를 만들 정도의 기술 문명에서 태어난 인공지능이라면 이런 엉성한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것에 스스로 화가 나지 않을까.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나 <소스 코드>(2011) 같은 타임 루프 영화, <인셉션>(2010) 같이 꿈을 다루는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은 인물에게 정밀한 제약을 가한다. 가상의 것이라고 해도 관객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규칙과 설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중반부부터는 아예 주인공이 겪고 있는 상황이 실제가 아닌 디지털 가상 세계의 시뮬레이션 상황임을 숨기지 않으면서 관객의 양해를 구하는 전략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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