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2024년 15번째 읽기록
Words by Jeong-Yoon Lee
가끔 친구들과 "넌 성선설이야? 성악설이야?"라는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전 90% 이상 "성악설"을 주장하면서 살아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살다 보니 성악설이라고 믿고 사는 게 덜 상처받고 덜 고통스럽고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 같기도 하더라고요. 이 책을 접하자마자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저스트 베이비! 아기 자체에서 주는 무해함에 어쩌면 성선설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올해 5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권이라도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책을 골라 읽게 되었어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한 권 한 권 끝낼 때마다 굉장히 뿌듯한 마음까지 생겼어요. 하지만 집에선 도무지 집중력이 올라오지 않아 책을 빌려 도서관에서 읽게 되었는데 혼자 읽는 행위지만 옆에 누군가 앉아있고 다들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 같이 하진 않지만 같이하는 기분이 동기도 되고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마저 들게 하더라고요.
유독 청소년들보단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들이 눈에 더 들어오게 되었어요. 책가방을 메고 오셔서 한 권에 몰입해서 깔끔하게 딱 한 권만 읽고 가시거든요. 멋진 어른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순간이었어요. 나도 저 나이가 되도록 책을 꾸준하게 읽을 수 있는 삶을 지속하고 싶거든요. 강요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꾸준하게 책을 읽었으면 좋겠거든요. 요즘 같은 시대에 더더욱이나 혼자 심도 있는 생각과 사고를 넓힐 수 있는 책을 가까이했으면 합니다.
도서관에 오는 분들은 저랑 비슷한지 다들 유튜브에서 누가 책 소개를 하면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오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책의 순서가 저에게 오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나의 속도감에 맞출 것이 아니라 일단 예약부터 걸어놓고 대기하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선악의 기원 차례가 와서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선악의 기원을 빌려왔습니다. 빌리자마자 목차와 대략적인 내용만 훑어보다가 도저히 집에선 책을 읽을 거 같지 않아 도서관으로 맘 잡고 완독 하러 갔습니다.
오전부터 무리했는지 예상에 벗어나는 집중력으로 거의 비몽사몽으로 책을 끝냈습니다. 그간 읽었던 책들의 쪽수보단 얇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도 했지만, 책은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지만 무겁게 다가오진 않았어요. 요즘 제가 책을 읽으면서 실시간으로 스레드에 마음에 꽂히는 문장을 공유하면서 읽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살필 수 있어서 재밌더라고요.
챕터마다 혼자 또는 친구들과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나눠봐도 좋을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일단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길 원한다는 것에 대해서 흥미롭긴 했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공평"도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똑같은 물건을 똑같이 분배하는 그런 공평성이 아닌 극단적이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누군가는 땀을 흘리는 노동을 하고, 누군가는 책상에 앉아 창의력이 필요한 노동을 하게 될 때 누군가는 내가 더 가치 있는 일이야! 내가 더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에서 "난 성악설이야!" 했던 이유도 사람은 누구나 악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자라는 환경 속 어떤 교육을 받고, 개인적인 경험들과 문화 안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남에게 피해를 안주는 행동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죠. 이런 이유로 성악설이라고 했지만 성선설도 비슷한 맥락이더라고요. 인간은 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무"상태지만 내면엔 선과 악 둘 다 가지고 있다.로 결론짓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가 지극히 중요한 부분인 거죠. 한국은 유독 도덕적 잣대가 높아 이슈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2년 전만 해도 엄청난 피로감을 몰고 다녔던 사적 제재가 처음엔 통쾌하고 시원해서 그들의 정의감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만약 그 화살이 나나 내 가족에게 돌아온다면 그때도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로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죄책감을 느끼겠지만 수치심을 느낀다면 끝은 허망한 결과를 낳게 되더라고요.
사적 제재에서도 느꼈던 부분이 한 사람을 혐오의 대상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죠. 선악의 기원 책에서도 혐오를 다루는 챕터가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우리가 어떤 안 좋은 것을 접하면 "웩~ 웩~"등과 같은 입에서 토를 하는 듯한 표현을 하곤 하잖아요. "우리가 나쁜 음식을 먹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혐오가 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혐오를 뜻하는 영어 단어 disgust는 '나쁜 맛'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섹스앤더시티를 굉장히 좋아했던 나는 나에게도 게이친구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서울살이를 하면서 트위터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알게 되어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게이친구를 만나게 된 거죠.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게이친구이야기를 꺼내는 일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다가 지방에서 아는 남동생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아하~하게 된 포인트가 있었어요.
개인의 가치관에서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면 "더러워"라는 표현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나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표현도 아닌데 듣는 입장에서도 불쾌하고 당혹스럽긴 하거든요. 상대방은 이런 가치관을 굉장히 혐오하는구나로 알아차릴 수 있는 지점인 거 같아요. 아~ 이 사람에겐 다신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요. 아예 듣지도 않겠다. 딱 잘라 거절하는 반응이 뭔가 대단히 오해하고 있는데? 이런 기분을 들게 했거든요. 대체 뭘 오해하고 있는 거야?
나의 결론은 사람은 계속 불편한 상황에 놓여야 한다. 물론 노인이 되어서까지 불편한 환경에 계속 노출되는 것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시스템이 없는 곳에 가면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고,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 가면 자율성을 보장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나의 색깔을 드러내긴 위해선 안전한 곳에선 안전한 선택만을 하게 되는 환경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게 될 테니 그런 삶이 싫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불편한 환경에 나를 계속 놓아두는 노력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최근에 끝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한석규배우님이 맡았던 역할이 프로파일러입니다. 보통은 나이를 먹을수록 감각과 체력 등이 떨어져 퇴직을 하게 되는데, 법의학자나 프로파일러와 같은 직업은 오히려 시간이 더해질수록 다양한 사건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각들을 읽어내는 능력이 더 영특해진다는 것이에요. 똑똑하고 젊은 체력이 알아차릴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더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아무리 능력이 높아도 다양한 인간을 다루는 감각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학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너의 그 확신을 의심해!
【문장 수집】
우리의 도덕성은 일부 측면은 타고나는 것이고 일부 측면은 그렇지 않음이 입증되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연민과 비난을 하도록 유도하는 도덕감각이 있다. 선천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적어도 어느 순간만큼은 그렇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추한 본능도 있다. 이런 본능은 전이되어 악으로 흑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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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관습과 관념 가운데 일부는 문화권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보아, 이들은 학습되는 것이 분명하다. 여행을 해본 사람이나 심지어 폭넓은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문화에 따라 도덕적 차이가 있음을 잘 알 것이다. 헤로도토스 Herodotus는 2,500년 전에 이미 그의 저서 《역사》의 한 대목에서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논평으로 말문을 연다. "누구든 예외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곳의 관습과 자신이 믿고 자란 종교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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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와 양육 환경, 특이한 개인적 경험이 불행하게 맞물린 탓에 그에게는 도덕적 정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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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구별을 지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삶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어떻게 구별할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의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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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악으로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어떤 집단을 소멸시키거나 소외시키고 싶다면, 바로 이 감정을 끌어내야 한다.
203
혐오가 일종의 적응이라면, 무엇을 위한 적응인 걸까? 가장 대중적인 설명은 우리가 나쁜 음식을 먹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혐오가 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혐오를 뜻하는 영어 단어 disgust는 '나쁜 맛'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211
아마도 독서가 사람을 더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사람들이 문학을 더 좋아하는 것일 테다. 여성이 남성보다 문학을 더 많이 읽는데, 그 이유는 여성이 어떤 점에서는 남성보다 더 사회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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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