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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Jan 08. 2024

새해엔 더 많이 읽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독서가 생활이 되었다는 신호






새해엔 더 많이 읽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노션을 업데이트하면서 23년도에 읽은 책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총 72권의 책을 펼치고 그중 37권의 책을 완독 했다. 50권을 읽었던 작년에 비해선 많이 부족한 숫자다. 하지만 이 결과치를 보고도 새해엔 더 많이 읽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독서는 일상에서 마음에 드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독서에 강제력을 부여하지 않아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읽을 걸 안다.      


‘자연스럽게’

놀랍게도 이제는 독서라는 취미에 위의 부사를 붙일 수 있다. 특별한 날에만 서점에 가던 5년 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리도 뻔뻔하게 나 자신을 믿는 건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독서가 생활이 되었다는 세 가지 신호가 있기 때문에.


               









하나. 독서 젠가를 계속 쌓고 싶어졌다.

21년도부터 노션에 읽은 책을 기록한 후로 총 215권의 책이 천천히 쌓였다. 첫 책을 어설프게 기재했을 때는 ‘과연 이게 얼마나 갈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래서 중도 포기할 걸 예상해 일단 대충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만 적어둔 게 다였다. 하지만 어느덧 독서 기록 4년 차가 되니 이제는 카테고리와 완독 여부, 평점과 한 줄 평까지 살뜰히 체크하며 기록하고 있다. 마치 기록하기 위해 읽고 있는 것 같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쌓이는 책 리스트는 그 자체로 독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천천히 한 블록씩 쌓아둔 젠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직접 분류하고 정리한 독서 목록은 어느새 계속해서 쌓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높아지는 책 탑을 공고히 하는 건 결국 또 다른 책일 테니 눈앞에 있는 도서를 펼치지 않을 수 없다.









둘. 각 잡고 독서하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기로 했다.'

독서를 새해 목표로 삼을 때 자주 언급하게 되는 문장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서가 나의 일상이 된 건 문장 앞에 ‘마음을 다잡고’라는 저 문구를 제외하고 나서부터였다. 다시 말해, 완벽한 독서 환경을 조성한 뒤에 책을 읽겠다는 욕심을 버린 후부터 독서가 자유로워졌다는 말이다.      

내가 요즘 집중적으로 독서를 하는 시간은 출퇴근 시간대 또는 점심 산책을 하는 오후 시간대이다. 매일 지하철 인파로 온몸 마사지를 당하면서도, 또 든든하게 식사를 한 후 볕을 쬐며 걷는 와중에도 독서를 할 수 있는 건 ‘오디오북’이라는 유용한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한 가지 독서 방식만을 고집하는 게 도리어 나의 독서 경험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눈으로 활자를 좇을 수 없다면 귀를 활용하면 된다. 이마저도 힘들 땐 책읽아웃 같은 팟캐스트를 들으며 신간 도서 소식을 들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종이책뿐 아니라 다양한 독서 앱과 친해지니 책과 한결 가까워졌다.









셋. 위안을 주는 독서 공간이 있다.

힘들고 지치고 우울해질 때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기분전환 방법인 ‘자기취급설명서’를 가지고 있다.

 『하루 하나 브랜딩』이란 책에서 공감하며 밑줄 그은 문장이다. 나에게도 정서적으로 비틀댈 때 시도하는 감정 환기법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거의 언제나 성공하는 방식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좋아하는 독서 공간에 가는 것’ 이를테면, 졸업한 학교의 도서관 같은 곳을 가리킨다.      


그곳에선 짙게 깔린 마음의 먹구름도 서서히 걷힌다. 가지런히 정렬된 책등만 바라봐도 안정감을 건네받으니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신 위생을 지켜주는 장소에선 독서가 더 수월해진다. 편해서 가고, 좋아서 가고, 때로는 지쳐서 가는 공간에서 책으로 위로받다 보면 독서에 대한 의무감은 힘 없이 사라진다. 그저 안락한 놀이로서의 책 읽기만 남는 셈이다.





이렇듯 세 가지 신호는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지면서 책과의 거리를 좁혔다.



덕분에 24년도에는 조금 더 편안한 독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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