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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Apr 09. 2024

안전한 속도

에세이 드라이브 2주차






2021년 7월의 어느 날 밤. 그때 나는 내 방 책상에서 때아니게 분주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그날 익힌 주식 투자 용어에 관한 글을 쓰고, 어설프게 섬네일을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목표는 꽤 호기로웠다. 코로나가 부추긴 투자와 부수입 열풍 속에서 나 또한 ‘수익형 블로그로 돈을 벌어보자’는 야심을 품었으니까. 4개월 만에 드디어 광고 게재 승인을 얻어낸 후 눈에 불을 켜고 매일 글을 썼던 건 사실 제2의 월급을 기대하는 여느 직장인과는 조금 다른 목적이 있었다.






퇴사 준비. 나의 머릿속에 이 단어가 선명해진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 퇴근만 하고 나면 유튜브 속 직장인 선배를 찾아가 그들이 실행한 퇴사 대응책을 살펴보곤 했다. 표현은 달라도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아무 준비 없는 충동적 퇴사 말고 최소 생계비 정돈 벌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고 나오라는 것. 물론, 나도 공감하는 바였다. 산소 호흡기 마냥 월급에 의지해 숨 쉬는 직장인에게 퇴사란 스스로 동아줄을 끊는 거나 마찬가지니,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내 야밤 포스팅도 그들의 조언에 동의한 결과였다. 월급 외 수익 구조를 마련하는 일이 퇴사 로드맵의 첫 단계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이 섣불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수익형 블로그로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의 블로그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유인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페이지에 가급적 오래 머물게 해 광고 배너를 클릭하도록 만드는 것.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비법과 공식들을 거칠게 요약하긴 했어도 수익을 위한 핵심은 한마디로 이것이었다. '나의 블로그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헌데 내가 피로를 느낀 부분은 다름 아닌 그 점이었다. 글을 쓰기 전, 오로지 돈을 위해 유인책부터 고민하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키워드를 공부하는 것도 적응하기 어려운데, 유입된 이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자극요소를 생각하는 일은 정말이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더구나 가장 별로였던 건 포스팅을 마친 후의 내 모습이었다. 수익을 나타내는 대시보드를 수시로 새로고치며 조회 수를 파악하는 내 얼굴엔 조급함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부수입의 세계는 마케팅과 과장 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영역 같았다. 돈 버는 요령과 꼼수가 꿀팁이란 포장지에 싸여 허겁지겁 거래되는 게임장이랄까. 속도전을 유독 어려워하는 내향인의 엔진은 그곳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시간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온라인 경기장에서 나 자신이 뛸 줄 모르는 초식 동물 같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이러니 결과는 뻔했다. 온라인 부업이란 치열한 세계에서 서툴게 애만 쓰던 나는 400여 개의 포스팅과 약 30만 원이라는 수익을 끝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수입 세계에서 이탈한 내가 도망치다시피 향한 곳은 엉뚱하게도 '묵독의 세계'였다. 당장의 요령을 알려주던 유튜브에 심드렁해지고 나니 서두르고 싶어도 서두를 수 없는 매를 대안으로 떠올린 거다. 한편으론 다른 이야기가 간절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돈을 버는지 말끔히 정답만 도출한 요약본 말고 어떻게 자기선택을 믿고 낯선 길로 갈 수 있었는지 전체 맥락이 설명되어 있는 풀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래서 새 수입처를 빠르게 마련하려던 계획은 잠시 내려두고 회사 밖을 나서기로 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그다음 나올 문장이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이면 참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드라마는 쉽게 펼쳐지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이 차츰 늘어날 뿐, 일상은 그대로였고 여전히 난 사람들을 힘겨워하는 내향인 영업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가지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차선으로 택한 묵독의 세계에 내가 꽤 부드럽게 적응하고 있다는 것.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물은 아주 조금씩 길어지는 독서 목록밖에 없었는데도 내면에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는 순간이 종종 생겨났다. 이를테면, 나의 은둔 성향과 내향 기질을 비난하던 말버릇이 점차 줄었을 때, 그리고 불쑥 떠오른 질문을 노트에 적고 답을 궁리하던 때가 그랬다.






읽고, 쓰면서 마음 속 질문에 답하는 동작은 갈수록 자연스러워졌다. 지루할 정도로 정적인 그 행위는 추운 겨울 모닥불 같이 차분한 안정감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찾고 있던 건 딱 떨어지는 정답이 아니라 그저 이 감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와 결이 잘 맞았다.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다른 돈벌이를 병행하던 3년 전의 나를 다시 떠올려본다. 묘하게도 그 위에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가 슬며시 겹친다. 그때의 나는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 옆도 보지 않은 채 앞으로만 달리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여태 그랬듯 체질을 감추고 보편적 답을 쫓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면서 말이다.






*

2024년 4월의 밤. 여전히 난 퇴근을 한 후 책상 앞에 앉아 블로그를 한다. 3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영업인이 아니라는 것. 


공들인 일기와 책 리뷰를 쓰고 있는 요즘. 느린 매체에 의존하다 이제는 속도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속력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2주 차 글감 :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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