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 법조 단지. 처음 발을 디딘 그곳은 건물과 상점이 빼곡한 곳이었다. 보이는 대부분이 지나치게 붙어있어 걸을수록 숨이 턱 막히는 곳. 자연의 색이라곤 길가에 듬성듬성 자리한 가로수가 전부였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빽빽하게 모여있는 공간이라면 얼굴이 금세 창백해지던 나에게, 이곳의 첫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15분 넘게 걷고 있었으니, 주변을 곱게 바라볼 여유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와는 맞지 않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 40분간의 대면 면접을 마친 나는 불쑥 이런 생각이 들고 만다.
아, 여기서 일하고 싶다.
면접을 위해 찾은 두 번째 장소는 회사라기보다 아담한 인쇄소에 가까웠다. 상주하고 있는 직원도 고작 두 명. 커다란 출력 장비가 매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그곳에는 뜻밖에도 '디자인실'이라 이름 붙여진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내가 면접을 볼 장소였다.
통화를 하느라 바쁜 직원의 손 안내로 먼저 들어간 내부는 다소 어수선했다. 전시용 책장에는 각종 인쇄물들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사무용 책상 위에도 종이 서류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하필 에어컨은 또 왜 이렇게 약한지, 기대했던 냉기마저 느낄 수 없었다. 더위와 어지러운 주변 풍경에 정신이 산만해지자 좀 전의 불쾌감이 다시 서서히 올라왔다. '역시 첫인상은 바뀌지 않는 걸까?'하고 생각하던 순간, 문이 열렸다.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보낸 그 남자였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남자가 사장이란 사실은 조금 의외였지만, 첫 질문만큼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왜 직무를 전환했느냐'는 물음이 가장 먼저 던져졌기 때문이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 있던 버튼이 눌린 듯, 준비된 답변이 툭 튀어나왔다. 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기대가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긴장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이후엔 면접이라기보다 대화에 가까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도 제법 있었다. 내가 디자인한 포스터의 기여도를 묻거나 작업에 소요되었던 기간, 사용한 프로그램 등을 묻는 식이었다.
나 역시 궁금했던 점들을 편하게 질문했다. 주로 어떤 종류의 인쇄물을 디자인하는지, 개인 고객과 기업 고객의 비중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물었다. 간헐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며 대화가 무르익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입사를 하게 되면 바로 이 공간ㅡ디자인실이라 불리는 이곳을 오롯이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임 디자이너는 거리 문제로 재택근무 중이었고, 사장과 다른 직원 한 명은 손님 응대를 위해 매장에서 업무를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습게도 이후의 정보들은 모두 참고 사항이 되어버렸다. 한 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다시 15분을 걸어야 한다는 점, 사무실이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는 점, 심지어 당일 합격을 통보하며 MD로 일할 때의 70% 수준의 연봉을 제안한 사실까지 알게 되었는데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정말 혼자 일할 수 있다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선 무심코 직방 앱을 켜고 송파 부근의 집을 검색하기도 했다. 한 시간이 넘는 통근 거리를 상쇄할 방법을 본능적으로 모색했던 것이다. 그 순간의 난, 탐나는 단 하나를 위해 치명적일지도 모를 결점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님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디자인실에서 홀로 작업하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혼자' 하는 일. 다시금 이 조건에 매혹되고 말았다.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도 프리랜서로서 홀로 일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는데, 회사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면접을 마친 후의 나는,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적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마음의 이끌림은 분명했다. 하지만 고민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때마침 어제 면접을 본 조명회사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인 건 수업에서 들었던 강사님의 충고였다. '신입일 땐 반드시 선임 디자이너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야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던 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혼자'라는 조건을 향한 본능적 이끌림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많은 환경에서 내 얼굴이 얼마나 빠르게 흙빛으로 변해갔는지, 이미 이전 회사에서 충분히 겪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디자인실을 홀로 차지하기로 결정한다. 입사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을 계기로, 나의 선천적 기질을 외면하는 결정은 가능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영업직을 수행하다 보면 나의 내향성이 어느 정도 옅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혼자 일하겠다는 열망이 커져 끝내 회사를 뛰쳐나오게 되지 않았던가. 지금껏 큰 반항 없이 주어진 역할에 맞춰 살아왔는데 그 끝이 결국 이탈이라면, 앞으로의 삶은 나 자신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싶었다. 그래야 나이의 앞자리가 4가 되었을 때 적어도 내 삶이 내 것 같을 테니까. 본능적으로 끌리는 근무 환경에서 일해보는 것. 이것이 중년을 앞둔 취업준비생의 첫 선택이었다.
책 <일하는 마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무엇을 얻는 대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모든 선택은 현실 안에서 자기 기준에 맞춰 나름의 최적화를 해나가는 과정이다. (...) 하나를 새롭게 시작하는 선택은 필연적으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다른 무언가를 버리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나의 입사 결정이 바로 이 문장을 실천한 예시가 아닐까? 사회적 교류가 적은 근무 환경을 택한 대신, 과거의 급여 수준을 단념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점은, 경제적으로 그리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을 했음에도 입사일이 다가올수록 기대감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작은 기업에서의 '첫 근무', 디자이너로서의 '첫 작업', 그리고 독립된 공간에서의 '첫 점유'까지. 직장생활 10년 차인 내게도 '처음'의 힘이 적용된 것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불과 일 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하고 싶어 몸이 베베꼬이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면 그동안의 나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단조로운 패턴에 스스로 갇혔던 건지도 모른다.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삶의 활력을 잃고 있었는데도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 변화 없는 삶을 오래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취업준비생이 되어보니, 일상의 염증은 '새로운 시작'만으로도 꽤 효과적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출발점에 서면 어느새 에너지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계속 이어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