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샤인 Oct 15. 2019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꺼지는 순간이 있다.

영화<중경삼림>, 그리고 <어린왕자>

1.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중경삼림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유효기간을 소행성 B612의 달력에 표기하는 상상을 해본다.

마음이 슬픈 날에는 해넘이를 44번 볼 수도 있는 작은 행성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셀까.

별이 한 바퀴 도는 동안을 24등분하여 시간을 가늠하는 규칙을 똑같이 적용한다면,

중경삼림의 달력과 소행성의 달력이 넘어가는 속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똑같은 유통기한을 가진 통조림이어도 못쓰게 되는 시점이 서로 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통기한이 다 하는 날 함께 통조림을 열어서 먹자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별마다도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데, 하물며 우주 간의 시간은 얼마나 다르게 흐를지.

문득 온 우주였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2.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나는 유한한 열 개의 기호로 무한한 수를 표현할 수 있는 숫자라는 시스템을 좋아하고 놀라워한다.

0, 1,2,3,4,5,6,7,8,9까지 열 개의 기호를 모두 쓰고 나면, 다시 그 앞에 1을 붙여 10, 11, 12, 13, 14, 15, 16...로 나아간다. 끝이 없이 나아간다. 앞에 하나씩 지나온 것들을 더하면서.


어린왕자에는 평범한 장미꽃이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꽃을 위해 들인 시간 때문이라는 주장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중한 존재에 모두 오랜 시간을 들인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을 들인다고 모두 소중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오래 들일수록 소중함이 비례하며 커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첫돌이 되지 않은 아기를 잃은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슬프다는 것과,

물 속에 빠진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너무 슬퍼서 때로는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는 것과,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가족을 죽일수도 있다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소중함은 숫자처럼 차근차근 커지는 것이 아니다.

증오나 분노, 사랑이 그러하듯.


3. 영원을 꿈꿉시다. 죽음일랑은 잊고

그래서 언젠가는 죽게 되는 사람이 열 개의 기호로 어마어마한 수에 빗대 사랑을 말하는 것을 놀라워한다.

이를테면, 중경삼림의 주인공이 57시간 후에 연인과 사랑을 하고 10,000년 이후까지의 사랑을 다짐하는 것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고작 3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노인이 되어가고 있고 사랑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유한함을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서로의 우주에 흐르는 시간을 모르면서도 막연히 "천년 만년"을 약속하고 싶은 그 마음은 숫자처럼 차근차근 커지지 않는다. 서로 시간이 다른 유한한 존재들이 함께 무한을 꿈꾼다니, 이토록 찬란한 허무맹랑이 어디에 있나 싶다.

중경삼림의 연인들은 만나고 이별하고 만난다. 어린왕자는 죽어서 귀가한다.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반짝, 꺼지는 순간이 있다. 유한한 것들이 무한히 반짝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위한 지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