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mer Feb 02. 2018

별개의 별것2 책거리

도로시와 우주와 내 선생님

오래된 친구의 별개의 별것 -책거리 중 <도로시> 전시를 보러갔다. 그리고 우리의 오래된 선생님을 만났다. 입에 모터를 단 것 같이 빠르게 말하는 선생님. 선생님 수업은 어떻게 다 들었나 한결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입모양들이 신기했다. 그 때만 해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이제 우리의 수다 중 몇 줄 정도는 흘려보내기도 한다. 상수동 어딘가 베트남 음식점에서 분짜, 쌀국수, 새우와 파인애플 볶음밥을 나눠먹었다. 먹으면서 나 감기걸렸는데 얘기할까 말까 조금 망설였다가 나눠먹지 못하게 될까봐 얘기하지 않았다.(미안해요)


전시는 별개의 별것이라는 시리즈 물의 두번째, 책거리라는 소제목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주택을 개조해서 투룸 공간에 여서일곱명의 작가들이 제 세계들을 전시중이었다. 거실엔 내 친구가 도로시 레고인형들을 출동시켰고 화장실에선 나무색 의자에 앉아서 우주를 파생하는 방법에 대한 형광으로 그린 그림책을 넘겨 그 세계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옷장문(붙박이장인가)을 열었더니 꽃놀이갈래? 물어오는 산악회 회원들로부터 도착한 빨간 조명의 그림들로 눈이 화려하였다. 옆 호실엔 다락방에 누워서 조금은 적막한 어떤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볼 땐 집중이 잘 안되서 두번 봤다.  


왜 하필 도로시야? 하는 나의 물음에 내 작가 친구 말하길 앨리스랑 도로시랑 피노키오가 있었는데 앨리스는 당시 전시회가 하나가 있어서 너무 소비되는 이미지라 제외했고, 피노키오는 군인출신 작가라 제외했다고 했다. 작가insta@heyola

현관문 열자마자 보이는 큰 벽지에는 도로시 레고인형들이 있당. 인형들이 레고로 만들어지는 날을 기대해줘야지 ref: instagram.com@byulbyul_thing

                                   

목조 변기에 앉아서 우주를 파생하는 방법에 대한 보고서를 다 읽은 선생님이 말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는 위안은 평행우주론이야. 어떻게 생각해, 나는 내가 내리지 않은 선택들로 이뤄진 또 다른 내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고 믿어. 그게 지금 내가 받는 위안이야! 선생님에게 내가 말했다.


선생님에게 내가 받는 우주에 대한 위안도 말해주었다. 


내가 우주로부터 받는 위안은 이런거예요. 그러니까 살면서 마주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대부분 팩트나 사건이라기보단 내 정서로부터 기인해요. 모욕감, 수치심, 미안함 같은 거. 그런데 언젠가 찾아올 (종교가 없으니까) 죽음이 찾아오면 그 감정들은 다 사라지니까, 이렇게 때로 너무 커서 힘겨운 감정들이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정말 작으니까. 


망원동 어딘가에서 형광물질이 인쇄가능한 "리소그라피" 인쇄소를 운영한다는 이 작가의 우주를 파생하는 방법을 늘어놓은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덮자 어쩌면 정말로 우린 매순간 우주를 파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에 남는 방법들은 아래와 같다. 

 

- 손톱깎기로 깎아낸 손톱조각들도 우주다

- 옷사러가서 거울을 보면 거울에 보이는 내 맨 몸엔 우주가 보이지

- 어느날 밤 내가 흘리는 짜증, 슬픔, 걱정과도 같은 눈물도 (우주의 종류도 달라진다) 

- 여행에 다녀와 돌아온 내 방 어딘가가 좀 커 보이는 것도 그 자리엔 우주가 

instagram@seinandpopurri

목조 변기에서 구경할 수 있는 우주를 파생하는 방법! ref: instagram.com@byulbyul_things

                                  

매거진의 이전글 연하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