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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er Aug 24. 2019

6월

1.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장 빠른 길 대신 조금 돌아서 왔다.

녹음이 우거지고 개천이 흐르는 길을 걸으면서 나 정말 늙어버렸나? 왜 이렇게 마음에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은 기분일까 대상이 선명치 않은 그리운 마음이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떤 얼굴들이 떠올라 윤동주 시인의 별 하나에 어머니, 별 하나에 고향 친구란 이런 마음이로군 하였고, 그리고 역시 사람은 운동을 해야 해 이번 주엔 기필코 암벽화부터 챙긴다!! 되뇌이며 녹음이 우거진 그 길을 걸었다. 날씨는 너무 좋고 사람들은 훌렁훌렁 옷도 벗어던지고 낚시도 하고 책도 읽고 해가 긴 수요일 방과후 저녁을 잘 즐기고 있었는데
사실 난 어쩐지 울고 싶은 마음이거나 울고 싶은 기분 적어도 둘 중에 하나 같았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 혼자 살아가는 삶을 위해 볕이 날 때마다 내 마음을 건조하게 바싹 잘 말려둔 탓에 눈물 한방울도 나지 않는 나는 씩씩하게 다시 그 길을 걸어 내 집으로 왔다.


대신 돌아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초코우유와 민트차를 마시면서 캐슈넛을 까먹으면서 문학동네 국내3팀 인스타그램(ㅋㅋㅋㅋㅋㅋㅋ)을 구경했다.


아무튼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온 곳으로 돌아가는 길
이 세상에 지나가는 것들은 모두 그 곳으로 가는 길
태양이 담벼락에 널려 있던
저의 햇빛을 데려간 자리
여름의 목쉰 매미들이 돌아간 자리
그곳으로 가기 위해 태어나고 사랑한다
모두가 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모두 지나가는 중


권대웅, <나는 누가 살다간 여름일까> 수록 중


2. 혼자 읽기 아쉬워서ㅋㅋ. 허수경,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중.


        1.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발굴장의 숙소는 텐트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임시로 지어진 방이었다. 발굴을 하면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도시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도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영원히 거처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사무치게 알았다.
서울에서 살 때 두권의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했다. 두번째 시집인 <혼자 가는 먼 집>의 제목을 정할 때 그것이 어쩌면 나라는 자아의 미래가 될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독일에서 살면서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내었을 때 이미 나는 참 많은 폐허 도시를 보고 난 뒤였다.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말같은 작가소개)  


        2.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씌어진 발굴 보고서를 읽다보면 과연 그 당시 유럽인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를 대충 알 수가 있다. 성경에 그려진 대홍수를 찾거나(이건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을 찾는 일이다) 아니면 커다란 박물관을 채울 유적을 찾거나(이건 현재 자신이 가진 정체성의 위상을 좀더 높이려는 일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신 아수르어 판본이 아수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발견되고 그 서사시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셈어 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그들의 정체성의 근원인 구약 설화의 대부분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대홍수 신화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의 시작을 좇아가는 자의 뒷모습은 언제나 쫓기는 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작 전에 시작이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의 시작을 좇는 자)


        3. 제가 처음 발굴을 한 곳은 시리아 지역이었습니다. 에마르라고 불리는 고대 도시를 발굴하기 위해서였지요. 그 폐허는 시리아를 가로지르는 유프라테스강 옆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대한 댐 공사로 생긴 아싸드 호수에 반 이상이 매몰되어 버렸습니다. 매몰되지 않고 남은 폐허 자리를 우리는 발굴했지요. 초기 청동기에서 후기 청동기를 거쳐 철기 시대의 유물이 아직 물에 잠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발굴을 시작할 때 저는 수없이 반복되는 오늘과 수없이 지나가는 어제 앞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곤 했습니다. 과거를 발굴해서 어제의 사실을 좀더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 우리의 실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우리의 실존이란 사실 오늘의 일만으로도 힘들어서 허덕이는 게 아닌지, 그런데 어제라니, 그것도 4000년 전이라니 ...... 
(발굴을 하면서 빛에 대하여 생각하기- 김지하 선생님께)


        4. 내가 사는 뮌스터라는 지방의 명물 중의 하나가 끓인 흑맥주이다. 여름에 음료수로 많이 마시는데, 흑맥주에다가 설탕에 절인 과일을 넣고 끓기 직전까지 맥주를 데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데운 맥주인 셈인데, 다시 그 맥주를 차갑게 식혀서 먹는 것이다. 

(끓인 맥주)


3. 요새는 호흡이 긴 걸 읽을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지만 야간 버스와 야간 기차에서 주말을 보낸 덕분에 어렵게 단편 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었다.

이 것은 딱 2년 전 내 아마존 장바구니에 담겨 결제 된 적이 있다. 기본은 부족한데 전공서는 못 읽겠고 그러나 관련된 소프트한 걸 사고 싶어 같이, 배는 부른데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마음으로 검색창에 light matter interaction 같은 단어들을 쳐보다가 발견했다. 아니 그런데 카테고리가 소설이야? 오 맙소사 이건 사야돼 주문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 책의 원서 제목을 light and matter interaction 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번역서도 원서 제목도 모두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알 수 없는 이유로 배송은 취소됐다. 그 때 샀더라면, 김영하가 추천하기 전에 얼리어덥터로 읽었을 텐데. 예쁜 걸 아무도 아직 모를 때 누구보다 먼저 찾아 읽는 거만큼 신나는 일도 없는데. 베스트 셀러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특히 유명한 사람의) 추천으로 읽는 거만큼 배아픈 일도 없을 뿐더러.


라고 다섯 줄 정도 읽은 다음에 설레면서 위와 같이 썼지만 만 하루가 지나 나는 이렇게 쓴다.


표제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그저 그렇다. 뭐하는지도 모르는 물리학과 교수가 나오는데 심지어 물리학과 교수가 아니더라도-인류학과거나 고고학과거나 생물학과이거나 심지어 영문학과 교수라도-전혀 달라지는 게 없다. 제목이 원숭이와 ..에 대한 이론이라든가 ..인 이유 그러니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제목이 아니면 안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이 책의 다른 단편들이 훨씬 좋다. 처음으로 표제의 단편을 읽고 잘못 샀나 싶을 정도였지만 참고 읽은 것들이 읽을수록 좋아서 아니 어떻게 이걸 제목으로 한 건가 싶었다. 이 정도면 그냥 독자의 관심을 쉽게 끌기 위해 제목을 정한 거 아니야?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말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도 낭만적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인정해. (그러나 대부분의 지인들은 도대체 어디가? 고개를 절레 절레 저을 것 같다. 아 아닌가 역시 뭐 좀 아는군, 고개를 끄덕이려나. )


설렘-불평-그 다음은 탄성이니 안심하시라.

어제 만난 친구는 너는 알면 알수록 변덕스러워서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는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몇 가지를 빼놓고는 나는 대체로 변덕스러운 인간이었고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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