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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Jun 14. 2024

5박 6일 제주여행 이후 삶에 대해 느낀 점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시댁 식구와는 처음 가는 제주도 여행이었다. 최근 시아버지를 암으로 떠나보내는 일을 겪었다. 흔들리1년의 시간들이었다. 온 가족여행이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아버님 계실 때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제주도행을 이번엔 어머니를 위해 미루지 않고 단번에 실행했다. 어머님은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엉덩이 붙일 새 없이 걷고 또 걸으다.



원래 놀기에 소질이 있던 나는, 3박 4일의 제주여행을 늘릴 방법을 단숨에 찾아냈다. 제주에 살고 있는 친한 친구네 집에 2일 먼저 가 있기로 한 것이다. 주말에 출근하는 남편을 빼고 나와 아이는 금요일 퇴근 후 비행기에 올랐다. 언제나 뜻하는 곳에 길이 있다고, 여름휴가를 쓰지 못하는 부서에 있던 시절에도 금요일 퇴근 후 방콕행 비행기에 올라 화요일 아침에 공항에서 바로 출근했던 나였다. 단 하루 연차를 쓰고, 방콕 현지인 친구를 만나 축제를 다녀왔었다.



몇 년 전 제주도로 이직해서 정착한 제주 친구는 타운하우스로 이사해 일상이 여행인 듯한 로망 라이프를 살고 있었다. 첫날밤, 고맙게도 손님맞이를 위해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주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누군가는 캠핑을 가야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들은 원하면 아무 때나 집에서 한 발짝만 내딛으면 펼쳐낼 수 있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지글지글 고기 익어가는 소리, 선선한 밤공기,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 예쁜 집, 탁 트인 전망과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택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익살스럽게 뛰어노는 아이들, 알록달록한 자태로 놓여 있는 해먹, 마음 맞는 사람들과 나누는 담소. 그 순간, 지금 느끼고 있는 행복감을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알아차렸다. 시간을 멈추고 싶은 이 밤의 온도와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싱그럽고 여유로운 시공간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이 순간에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감사한 일임을 느꼈다. 내게 주어진 일상과,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건강한 몸으로, 깨어있는 감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웃고 울고 기뻐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내가 매일 누리고 있는 감사한 일이었다. 다만 내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살아가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제주 여행 마지막 날에는 프라이빗 명상 클래스를 들었다. 제일 고대한 코스였다. 시어머니, 나, 동서, 3명의 여자들이 푸른 숲과 한라산을 바라보고 앉았다. 강사님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들 구성으로는 처음이라며 화목해서 보기 좋다고 했다. 화목하다고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이렇게 나란히 모여 앉은 것 자체가 화목하고 감사한 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창밖으로 나무와 풀잎들, 로즈메리가 무성했고 그 위로 노란 나비가 날아다녔다. 고요한 밤에는 한라산의 기운을 받고, 낮에는 내리쬐는 햇살과 제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품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로즈메리가 짙은 향을 풍겼다. 가족들은 싱그러운 풍경, 로즈메리의 찡한 향긋함, 그리고 산들바람에 이미 기분이 산뜻하고 평온해지고 있었다.



온 감각으로 피부에 닿는 공기를 느껴보고, 내 몸의 움직임과 밸런스를 느껴봤다. 강사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간 사이로 불안감이 스며든다고 했다. 지금에 집중하고, 지금 느끼는 것들을 느껴보는 연습을 하라고 알려줬다. 도심 속 지하철이어도 상관없다. 단 2-3분이어도 좋다. 피부에 닿는 공기, 바람, 온도, 햇살을 느껴보라고 한다. 그리고 나를 느껴보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를 살아라고 조언해 줬다. 특히 자세가 틀어지면, 마음도 정화되지 않고 들어온 흐름이 순환되어 나가지 못하고 몸에 고인다고 했다. 몸과 자세가 틀어지면, 마음 정화가 잘 안되니 자세 또한 바르게 해야 함을 깨우쳤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각박한 현대사회와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평온하게 호흡하는 방법조차 잊은 채,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는 거리를 둔 채, 헉헉대며 레일 위에서 바쁘게 달리는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삐그덕 대는지도 모른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과 계획과 초점이 너무 미래에만 머물러 있다면, 오늘을 놓치며 살아가게 된다. 오늘의 노력과 희생, 또는 오늘의 고군분투를 더 나은 미래와 맞바꾼다는 전략. 이 방법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미래에도 내가 건강한 심신으로 존재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조건을 당연하게 여기고 산다면, 어느 날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예측불허한 일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을 현재로 돌리기로 했다. 물론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은 유지하되 다만, 현재를 충분히, 온전히 느끼고 감사함을 알아차리며 나아가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기쁨과 감사로 채우다 보면, 미래도 더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충실히 보낸 하루들이 쌓여 내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 친구네에서 두 번째 밤은 잊지 못한 밤이었다. 노래방 마이크와 미러볼 하나로 우리만의 파티가 열렸다. 동요와 가요를 오가며 리듬에 몸을 싣고 쿵짝쿵짝 신나게 춤을 췄다. 아이들은 방방 뛰며 저마다의 춤동작을 선보이고, 나와 친구는 아득한 과거가 된 춤사위를 어제일처럼 불려 들여 에너지를 분출했다. 어둠 속, 친구의 현란한 노래솜씨와 친구 남편이 이끄는 기차놀이, 모든 걸 잊은 채 삘 받은 대로 춤추고 환호하는 나. 이 순간, 걱정할 것도 계획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다. 생각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을 즐기면 될 뿐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나로 가득 채우면 되는 거였다. 내가 오랫동안 춤과 무대, 공연을 해 왔던 이유가 다시금 생각났다. 오로지 무대에 집중해 흠뻑 빠지는 짜릿함이 좋아서였다.





삶도 춤추듯이 현재에 흠뻑 빠져 살아보면 어떨까. 후회 없이 아낌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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