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Sep 04. 2024

오늘 엄마의 기분을 맞춰볼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요일, 남편과 사소한 투닥거림 후 기분이 상해있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내 마음속엔 며칠 간의 일로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 그래, 그러고 보니 저녁도 매일 차려주니까 내 소중함도 모르고 당연한 줄 알지. 오늘은 집안일 파업이다!


나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다. 그리곤 저녁 시간이 다가와도 움직일 기미 없이 저녁을 알아서 챙겨 먹으라 이르고 침대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아이 밥도 알아서 챙기라고 했다. 아이 밥 챙기는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끼니를 대령하는 나지만 오늘은 왠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남편 때문에 결정한 파업이지만, 1시간 반 동안 거실과 단절하고 독립된 공간에 홀로 있다 보니 덤으로 육아에서도 해방을 맛보았다.


남편은 저녁 식사 후 아이 양치까지 도맡으며 자연스레 육아를 했다. 평소 아이와 가장 실랑이를 벌이는 게 양치와 잠이었는데, 남편이 알아서 척척해주니 휴가를 얻은 기분이 들며 화났던 감정이 누그러졌다.  나는 슬렁슬렁 거실로 나와 간단히 식사를 하고 다시 육아할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리고 아이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러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 오늘 엄마 기분 어떤 것 같아?


2시간가량 나 홀로 방에 떨어져 있었기에, 아이는 나와 별로 대화를 안 나눈 날이었지만 화장실에서의 내 표정은 분명 웃음기도 없고 약간의 무표정에 '기분 나쁜 날'이라고 써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눈치 빠르고 관찰력이 좋은 아이에게 자연스레 질문하고 공감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던 것 같다. 아이가 대답했다.


- 오늘 엄마 기분 좋은 것 같아! 나 안 혼났어~


아이의 대답은 나의 행동을 올스탑 시키며, 눈을 휘둥그레 만들고 번쩍 뜨게 만들었다.


- 뭐??? 아... 그... 그래???? 하하. 엄마 기분이 좋은 것 같구나. 하하..

- 응~~~~!!!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 기분을 틀린 것도 예상 밖이었고, 그 근거로 얘기한 내용도 놀라웠다. 아이가 오늘 별로 안 혼났기 때문에 엄마 기분이 다고 느꼈다니! 내 평소 모습을 아이 입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굳이 부연설명을 구구절절하고 싶지 않을 만큼 충격과 미안함이 올라왔다. 내 아이를 통해 내 모습을 깨닫고 반성하는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양치 습관과 일찍 자는 습관 들이기 한다고 아이에게 혼내거나 짜증 내는 일이 전보다  늘어난 것 같았다. 좋은 습관을 들이겠다고 나의 짜증을 먼저 습관화했으니 과연 누구를 위한 길들이기였던 것일까. 기쁨과 사랑만 주기에도 아까운 자식에게 는 내 뜻대로 안 따라준다고 박박 소리를 질러댄 게 아니었을까? 내 양육태도와 훈육법을 개선시키지 않고, 습관처럼 지시하고 말을 안 들을 때는 습관처럼 감정을 섞어서 얘기했던 게 쌓여 아이를 혼내는 빈도를 높여왔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남편에게 서운했던 것도 사소한 '말투'의 문제였다. 나는 말투에 민감한 사람이다. 약간이라도 날이 서 있는 말투를 들으면 화가 올라온다. 예전엔 왜 화가 나는지 모른 채 나도 화를 내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 원인을 알고 내 반응을 조절하는 단계까지 많이 발전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상하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른인 나조차 말투 하나로 마음이 속상하고, 같은 말도 부드럽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뿐인데... 내 아이에게 나는 '말 안 듣는다'는 기준으로 말투에 대한 고민과 여과 없이 아이를 혼냈던 게 아닐까 싶다. 아이는 내게 똑같이 짜증 내지도 않는다. 그냥 다 흡수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 할 뿐이다. 그래서 더 미안함이 느껴졌다. 엄마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주기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주기를 아이 역시 바랐을 텐데.


잠들기 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넨다. 부족한 어미를 용서해 달라는 뜻도 담았다.


- 00아,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 난 괜찮아, 엄마~~~^^


아이는 배시시~ 하고 해맑게 웃는다. 벌써 다 잊은듯한 모습이다. 잊어주길 바라는 건지도? 웃는 모습을 보니 천사가 따로 없다. 엄마보다 네가 낫구나. 우리는 살포시 꼭 안으며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딸아,

네가 한 뼘씩 성장하는 것처럼

엄마도 육아하며 매일 성장하고 있단다

혼내는 엄마에게 깨우침을 줘서 고마워

오늘도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