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Aug 23. 2024

엄마, 눈물을 참으면 어떻게 돼?

퇴근 후 일정이 있어서 집에 늦게 들어왔다. 7시 반 정도. 예전 같으면 평소 퇴근 시간이었지만, 단축근로를 하는 올해부터는 5시 반 정도에 집에 온다. 아이 하원시간에 맞춘 건데, 시어머니가 요즘 하원을 맡아주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집에 오니 아이 입이 뾰로통해 있다. 멀리서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냅다 방바닥에 울듯이 엎드린다.


- 우리 딸, 왜 입이 삐죽 나왔을까? 무슨 일 있어?? 엄마 때문이야?


그러자 딸은 쪼르르 달려 나와 '엄마~~ 잉' 하며 폭 안긴다.


- 엄마 보고 싶어서 울었단다


할머니가 얘기해 준다. 아이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를 찾으며 매우 오랜만에 운 것이다. 엄마를 많이 찾고 기다리고, 울기도 하던 4살 때 아이의 모습 같았다. 오랜만에 버선발로 달려 나와 안겨있는 아이를 따스한 온기로 꼭 안아주었다. 부은 눈을 보니 살짝 미안해졌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그리워 같이 울었단다.


잠들기 전, 아이와 대화를 했다.


"사랑이, 엄마 보고 싶어서 많이 울었어?"

"응"

"계속 울었어?? 할머니도 많이 울었어?"

"계속은 아니야. 할머니는 흑흑하고 울었어. 그런데 시끄러웠어"


"그랬구나~ 내일은 엄마가 빨리 올게. 그리고 울고 싶을 때 참지 않고 운 건 잘한 일이야. 슬플 땐 눈물을 참는 거 아니야"


그러자 아이가 궁금한 눈빛으로 묻는다.



엄마, 눈물을 참으면 어떻게 돼???



옳다구나! 나는 아이의 질문을 내심 반가워하며 대답기회를 갖게 되어 눈빛을 반짝였다. 왜냐하면 최근 1년간 '감정을 참지 않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몸소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장 가까이에서 가족의 사례를 보며 나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공부하고 배워갔다.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감정 참기'가 얼마나 내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 나는 똑똑히 배웠다.


어린아이들이 부정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보통 혼이 난다. 엉엉 운다던가 하는 일들. 또는 불안해하는 감정들. 이것들은 나쁜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감정 중에 하나일 뿐인데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며 표현의 기회가 억압된다. 흔히 쓰는 '울지 마, 뚝!' 하는 말이 감정 해소를 억압하는 행동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 안 된다'는 사회 통념적인 관념 등 해당한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 사회 감정을 참아내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 감정을 나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무딘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을 참아내면,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흘러나오지 못한  내 몸 안에 꾹꾹 담기게 된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몸 안에 쌓여 독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억눌린 감정들이 점점 쌓이고 쌓이다 결국 화산처럼 폭발하게 된다. 내 몸을 상하게 하면서 어디에선가 삐그덕 거리며 문제를 일으키게 는 것이다.


감정은 알아차리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한다. 알아차리는 순간,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사라진다고 한다. 서슴없이 감정표현을 잘하고,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아프지 않은 이유다. 아이는 엄마가 '울어서 잘했다'라고 하니 의아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감정에 대한 질문을 했다.


'흐흐.. 이제 책에서 배운 내용들을 말해줘야겠군'


"슬플 때 눈물이 눈에서 또르르 흘러나오지? 이렇게 밖으로 흘러나와야 하는데 꾹 참으면 어떻게 될까? 눈물이 내 몸 안에 갇히게 돼(배를 가리키며). 그래서 눈물이 '답답해요! 여긴 너무 어둡고 좁아요. 나가고 싶어요!!' 이렇게 외쳐.


그런데 또 눈물을 찾으면 눈물이 여기까지 차는 거야.(가슴 높이를 가리키며). 그리고 또 눈물을 참으면 이제 얼굴까지 차고. 그리고 또 참으면 여기까지 차.(머리 꼭대기).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 펑~~~ 하고 눈물이 터져 나와서 태풍이 되는 거야. 태풍 알지? 엄청 거세잖아. 눈물을 참으면 그렇게 돼"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펑~~ 하고 표현하자 아이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나도 같이 미소 지었다. 최근 가장 중요하게 관심 두었던 감정에 대한 내용들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서 미소가 나온 것이다.


감정을 참으면 감정이 갈 곳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게 몸 안에서 까맣게 타들어간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어루만져주면 해소될 수 있는 일들인데 대부분이 마음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나약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힘이 상당히 크다. 마음이 아프면 멀쩡한 몸도 같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멀쩡해도 일어날 수가 없다. 소화불량, 불면증, 답답함, 두통 등 온갖 증상들을 유발하며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다.


그러니 마음관리, 감정관리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건강한 정신은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데 뿌리와도 같다. 내 감정은 어떤지? 오늘 내 마음은 어땠는지 한 번 되짚어보자. 마음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자주 들여다보자. 참지 말고 실컷 울자.


어른이 되어서 아이에게 가장 크게 배울 점이 있다면 '내 감정에 충실하여 표현하기'다. 배고프면 먹고, 맛없으면 맛없다 얘기하고, 졸리면 자고, 불편하면 운다. 싫다, 좋다의 표현도 뚜렷하다. 짜증 나면 울었다가, 다시 기분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서 방긋방긋 웃는다. 순간에 드는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먹고 자는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없다.



마음껏 웃자!

그리고 마음껏 울자!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도전 vs 아이의 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