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에 처음으로 혼자서 출퇴근길 운전에 도전했다. 퇴근길 20분이 내겐 2시간과도 같았다. 첫 운전대를 잡는 이 날을 마주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려 10년이다.
사회 초년생부터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다 보니 운전이 굳이 필요 없었고, '배워볼까?' 싶은 마음이 들 땐 차가 없었고, 출산 후 필요성을 체감할 때에는 운전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겁이 없을 때 운전을 배워두지 못한 탓에, 30대의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두려움'이란 벽은 점점 두꺼워졌다. 그 장벽을 깨고 운전학원에 다시 등록하기까지 10년이 걸린 것이다. 길었던 시간만큼 긴장도는 비례해서 커다란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니 혼자서 처음 도전한 20분간의 운전은 단순히 '운전했다'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0년간 잠재된 보이지 않는 불안감과 두려움이란 장벽을 깨고 운전대와 마주 앉은 건 나를 가둬두었던 알을 깨고 나온 큰 변화이자 내 모든 용기를 끌어올린 도전이었다.
운전학원에서 도로 연수를 받고, 남편과도 몇 번 연습한 후 드디어 혼자 차를 운전하는 대망의 날이 밝았다! 1시간 거리의 도심 속 회사까진 엄두를 내지 않고, 20분간 운전하고 중간에 지하철로 환승하는 코스를 택했다. 출근길엔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섰다. 차량이 많이 없어야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조롭게 새벽 운전에 성공하고 맞이한 퇴근길, 본격적인 운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신호가 없는 둑길에 진입해야 했는데, 차가 계속 오는 바람에 어느 타이밍에 고개를 넣어야 할지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지금인가? 아닌가? 차들이 보는 것보다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몰라! 오늘 저 퇴근하는 차들 다 보내고 나 집에 갈 수 있는 거 아냐??이러다 해 지겠네' 하며 계속 타이밍만 봤다. 내 뒤로 기다리는 차가 생기자 미안한 마음이 높아지며 진퇴양난에 처했다.
그 순간 어떤 차량이 친절하게도 양보해 주며 차의 속도를 서서히 낮춰주었다. 날개 달린 천사 같은 차량이었다. 나는 속으로 '우와!! 정말 복 받으실 거예요!' 하며 상대방의 복을 기원하며 진입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난관에 봉착했다. 뒤에서 차들이 쌩쌩 계속 오고 있는 10차선에 다시 차선변경을 하며 진입해야 했다.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용기 내서 눈 질끈 감고, 아니 눈 부릅뜨고 사방을 살피며 도로로 진입했다. 오예! 2개 차선 순식간에 변경 성공!
연이는 난관을 거쳐 많은 차들과 나란히 멈춰 신호대기를 하는데 브레이크에 올려진 내 발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거의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후덜 거리며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발을 멈춰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내 몸은 이미 내 컨트롤 밖에서 자기 멋대로 춤추고 있었다. 그 후 3~4번의 신호대기 때마다 내 발은 요란스럽게 큰 요동을 치며 움직였다.
주차까지 긁힘 없이 안전하게 성공하자 저 빙하 밑에서부터 안도감이 올라왔다. 휴~ 해냈다!
한 여름, 에어컨을 켤 생각도 사치였다. 차에서 내리자 내 등은 땀으로 샤워를 한 상태였다. 더위와 긴장감으로 온몸은 땀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의 자율신경계가 반응할 만큼의 고도의 도전이었음을 반증했다. 몸에서 반응하는 긴장과 불안감,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간 도전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매일이 도전의 연속인 아이가 떠올랐다.
이처럼 어렵고도 긴장되는 일을 아이는 영유아기부터 자라나면서 무수히 많이 겪었을 것이다. 깨지고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수많은 발달과업을 거치는 동안 아이 역시 긴장되고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군말 없이 하나씩 해낸 과정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기어만 다니던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까. 수백 번 넘어지고 실패해도 아이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시도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이는 무수히 많은 실패와 난관 앞에서 짜증이나 불만도 없이 하나씩 클리어해 왔다. 마냥 대견하게만 볼 일이 아니었다. 긴장감속에 생에 첫 운전을 시도해 보니, 이건 정말 보통일이 아니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자, 한계에 맞서는 매우 용감하고 위대한 일이었다. 또 다른 발달과업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 앞에서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얼마 전, 6살 아이와 밤에 잠들기 전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고민거리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아이는 갑자기 감정에 몰입하더니 펑펑 울면서 내게 슬픈 일을 털어놨다.
"엄마, 나 슬픈 일이 있어"
"슬픈 일?? 무슨 일이야??"
"나 유치원에서 매일 김치 먹고 있는데 매일매일 먹어도 김치가 매워. 매일 연습하는데도 매일 매워. 이러다가 나 초등학생 돼서 나만 김치 못 먹어서 동생 되면 어떡해? 나만 동생 되면 어떡해ㅜㅜㅜㅜ 으앙"
엄마가 미처 관심도 두지 못했던 테마였다. 김치를 먹인 적도 없고, 초등학생이 될 준비를 하라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아이는 유치원에서 김치 먹는 연습을 하며 초등학생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먹어봐도 매운 게 난관이었고,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매울까 봐 눈물이 날 만큼 고민이었다.
앗, 이 시점에서 웃음이 나면 안 되는데. 아이의 귀여운 고민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지만 내게 운전이 진지한 최대 난관이었던 것처럼, 아이에게 김치 먹기란 현재의 최대 고민 사항이었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힘들고 눈물이 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혼자서 연습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도전에 아낌없는 응원을 해 주었다. 결과를 떠나서 시도하는 자세가멋지다고 힘껏 박수도 보내주었다.엄마도 6살 때 김치 못 먹었는데 지금은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며 위안을 주기도 했다. 아이에게 희망과 용기, 응원을 듬뿍 해주며 꼭 안아주자 아이는 다소 안심된 듯 울음을 그치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우리 같이 한 발짝씩 나아가자. 인생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인 만큼 많은 과정에 마주할 때마다 지금처럼 씩씩하게 조금씩 나아가자. 아름다운 인생에 멋진 도전들로 빛을 수놓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