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화요일, 남편과 사소한 투닥거림 후 기분이 상해있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내 마음속엔 지난 며칠 간의 일로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 그래, 그러고 보니 저녁도 매일 차려주니까 내 소중함도 모르고 당연한 줄 알지. 오늘은 집안일 파업이다!
나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곤 저녁 시간이 다가와도 움직일 기미 없이 저녁을 알아서 챙겨 먹으라 이르고 침대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아이 밥도 알아서 챙기라고 했다. 아이 밥 챙기는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끼니를 대령하는 나지만 오늘은 왠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남편 때문에 결정한 파업이지만,1시간 반 동안 거실과 단절하고 독립된 공간에 홀로 있다 보니 덤으로 육아에서도해방을 맛보았다.
남편은 저녁 식사 후 아이 양치까지 도맡으며 자연스레 육아를 담당했다. 평소 아이와 가장 실랑이를 벌이는 게 양치와 잠이었는데, 남편이 알아서 척척해주니 휴가를 얻은 기분이 들며 화났던 감정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나는 슬렁슬렁 거실로 나와 간단히 식사를 하고 다시 육아할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리고 아이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러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 오늘 엄마 기분이 어떤 것 같아?
2시간가량 나 홀로 방에 떨어져 있었기에, 아이는 나와 별로 대화를 안 나눈 날이었지만 화장실에서의 내 표정은 분명 웃음기도 없고 약간의 무표정에 '기분 나쁜 날'이라고 써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눈치 빠르고 관찰력이 좋은 아이에게 자연스레 질문하고 공감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던 것 같다. 아이가 대답했다.
- 오늘 엄마 기분 좋은 것 같아! 나 안 혼났어~
아이의 대답은 나의 행동을 올스탑 시키며, 눈을 휘둥그레 만들고 번쩍 뜨게 만들었다.
- 뭐??? 아... 그... 그래????하하. 엄마 기분이 좋은 것 같구나.하하..
- 응~~~~!!!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 기분을 틀린 것도 예상 밖이었고, 그 근거로 얘기한 내용도 놀라웠다. 아이가 오늘 별로 안 혼났기 때문에 엄마 기분이 좋다고 느꼈다니! 내 평소 모습을 아이 입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굳이 부연설명을 구구절절하고 싶지 않을 만큼 충격과 미안함이 올라왔다. 내 아이를 통해 내 모습을 깨닫고 반성하는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양치 습관과 일찍 자는 습관 들이기 한다고 아이에게 혼내거나 짜증 내는 일이 전보다 늘어난 것 같았다. 좋은 습관을 들이겠다고 나의 짜증을 먼저 습관화했으니 과연 누구를 위한 길들이기였던 것일까. 기쁨과 사랑만 주기에도 아까운 자식에게 나는 내 뜻대로 안 따라준다고 박박 소리를 질러댄 게 아니었을까?내 양육태도와 훈육법을 개선시키지 않고, 습관처럼 지시하고 말을 안 들을 때는 습관처럼 감정을 섞어서 얘기했던 게 쌓여 아이를 혼내는 빈도를 높여왔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남편에게 서운했던 것도 사소한 '말투'의 문제였다. 나는 말투에 민감한 사람이다. 약간이라도 날이 서 있는 말투를 들으면 화가 올라온다. 예전엔 왜 화가 나는지 모른 채 나도 화를 내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 원인을 알고 내 반응을 조절하는 단계까지 많이 발전했다.그럼에도 마음이 상하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른인 나조차 말투 하나로 마음이 속상하고, 같은 말도 부드럽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뿐인데... 내 아이에게 나는 '말 안 듣는다'는 기준으로 말투에 대한 고민과 여과 없이 아이를 혼냈던 게 아닐까 싶다. 아이는 내게 똑같이 짜증 내지도 않는다. 그냥 다 흡수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 할 뿐이다. 그래서 더 미안함이 느껴졌다. 엄마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주기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주기를 아이 역시 바랐을 텐데.
잠들기 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넨다. 부족한 어미를 용서해 달라는 뜻도 담았다.
- 00아,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 난 괜찮아, 엄마~~~^^
아이는 배시시~ 하고 해맑게 웃는다. 벌써 다 잊은듯한 모습이다. 잊어주길 바라는 건지도? 웃는 모습을 보니 천사가 따로 없다. 엄마보다 네가 낫구나. 우리는 살포시 꼭 안으며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