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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Oct 21. 2024

독일 호스텔, 배낭여행의 매력을 마주하다

퇴사 후 나 홀로 유럽여행기 8

뉴질랜드에서 온 프로이직러와 특별 저녁 시간을 보내고 숙소인 호스텔로 돌아왔다. 숙소 앞에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늘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나와 일행도 잠시 앞에 서 있었는데 옆에 있던 남녀가 아주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는 매우 쾌활한 모습으로 입담을 뽐내고 있는 것 같았고 앞에 있는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장단을 맞춰주며 깔깔대고 있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하얀 얼굴에 쌍꺼풀진 큰 눈을 가졌고, 예쁘면서도 동시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풍겨서 눈길이 가는 사람이었다. 남자가 아무래도 호감이 있어 보이는데? 나 혼자 착각인가? 아님 원래 커플인가? 아닌 것 같은데. 둘의 관계에 대해 긴가민가 하고 있는데 우리랑 눈이 마주치자 남자가 '찡~긋' 하고 미소를 샤방샤방 날린다.


"안녕? 너흰 어디서 왔어?"


한국에서 어린이들이 친구 사귈 때 공통어 첫마디 "안녕? 너 몇 살이야?"가 있다면 해외에서 첫인사 공통어는 "안녕? 어느 나라에서 왔니??"가 있다.


"나는 00이야. 브라질에서 왔고, 얘는 00, 일본에서 왔어~ 하하하"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짧은 턱수염이 그를 더욱 남자다운 이미지로 비추게 했다. 그는 활기찬 에너지로 우리와도 금세 친구처럼 어우러졌다. 이런 성격이라면 언제 어떤 장소에서도 친구 100명은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친화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우리와 함께 잠시 대화 나눈 뒤 흥에 겨워 얘기했다.


"안쪽에 다른 친구들도 있어. 내가 소개해줄게~~ 이리 들어와~~ 얘들아~~ 컴온 컴온~~~"


으~~~ 응??? 어디가??? 마치 피터팬이 친구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날아가듯이 우리를 호스텔 안 쪽 라운지로 안내했다.


호스텔의 가장 큰 장점은 배낭여행객들의 자유로운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가성비 좋고, 조식도 나오고, 쉽고 편하게 예약이 가능하며, 선택옵션이 다양하고, 후기도 많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호스텔 형태의 숙소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이와 같은 이유로 호스텔을 선택한 다른 여행자들도 많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낭여행객'이라는 교집합으로 하나로 모이게 된다. 호스텔 안에서 여행자끼리 교류하는 만남의 시간을 통해 하룻밤이 주는 숙소 본연의 가치 이상의 특별함을 선물 받는다. 이 안에서 정보가 모이고, 잊지 못할 추억이 쌓이고, 친구를 사귀고, 인연을 만들기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며 여행이 주는 참맛,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라운지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흥겨운 분위기였다. 비트 있는 음악, 여기저기 비추는 조명, 정돈된듯하면서도 무질서한 의자와 소파 등의 배열 속에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한 껏 떠들고 있는 사람들, 술잔을 들고 이리 저리로 흘러 다니며 대화 나누는 사람들, 개성 넘치는 개인들이 만나 묘하게 어우러지는 밤, 혼돈과 질서, 자유와 환호가 섞인 분위기였다.


브라질 친구는 기존에 얘기 나누던 일행에게 우리를 소개하며 "얘들아~~ 내가 친구들을 소개할게~~ 한국에서 온 내 친구들이야~~ 후하핫~~" 불과 그들보다 몇 분 먼저 친구가 되었다는 이유로 우린 브라질 남자의 친구가 되어 또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되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네 명이 되어 일행이 늘어났다. 처음에 대화하던 사람이 온 데 간 데 없어지기도 하고, 어느새 새로운 친구들이 합류되기도 했다.


잠시 내 옆자리가 빈 틈을 타 어떤 남자애가 인사를 건넨다. 호주 멜버른에서 왔단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곳이라 반갑게 맞아주자 그 뒤로 그는 본인 자랑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M 대학교 졸업 후 UN 인턴을 하고, 블라블라 했다며 본인 브리핑을 했다. 저기요.. 여기 면접장 아니거든요.. 잘난척하는 완전 너드남(nerd)이었다. 사전 속 단어의 의미가 내 앞에서 생생하게 날뛰고 있었다. 이런 게 살아있는 현장형 영어교육인 건가? 푸핫. 초면에 자기 자랑하는 건 세계 어나라에나 있고, 비호감이라는 건 똑같구나.


신나게 떠들다 보니 이번엔 2명의 대만 친구들 어울리게 되었다. 남자 1명, 여자 1명 친구 사이였다


그들은 수줍은 듯하면서도 적극적이고 명랑했다. 밝고 착실한 느낌을 풍기는 친구들이었다. 하하 호호 깔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이야기도 잘 통했다. 새로 사귄 친구로서 서로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그들은 내게 제안했다.



"레나, 내일 일정이 뭐야? 우리랑 내일 일정 함께할래??"



그러고 보니 내일 일정이 하나도 없다. 그러고 보니 그다음 날 일정도 아직 없는 것 같다. 뮌헨에 와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가겠다는 원대한 포부 1개의 하루 일정만 세웠지, 그 뒤 일정은 어쩜 하나도 짠 게 없었다. 다른 일정들은 아무러면 어때? 였다.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가 볼 생각이었다. 내겐 꼭 가봐야 할 목적지 1개 외에는 다른 것들은 그냥 Free! 였다. 아무 욕심도 없고 목적지도 없었다. 평소 매우 계획적인 성향과 다르게 계획 없이 흘러가는 며칠로 비워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무계획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마침 바로 그때, 새로 사귄 친구들이 함께 하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여백을 비워 둔 덕분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새로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함께 흘러갈 수 있었다. 어쩌면 인생도 이처럼 완벽하지 않은 게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로운 느낌의 설렘이 느껴졌다.


대만 친구들은 영국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이었다. 1명은 직장을 다니다가 대학원을 왔다고 해서 조금 더 친밀감이 들었다. 수많은 과제와 기말고사까지 빡빡한 스케줄을 끝내고 드디어 며칠간의 자유를 얻어 독일로 여행 왔단다. 그들에겐 수고로웠던 한 학기를 마친 후의 해방여행이었다. 그들은 한 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레나, 내일 우리랑 같이 다니자~~ 응? 우린 내일 BMW 박물관에 갈 거야^^"

"앗, 그래?? 나.. 내일 일정이 뭐였더라?? 그러고 보니 내일 일정이 없어!!ㅋㅋㅋ 그런데 BMW 박물관에 간다고?"


해맑게 말하는 그들. BMW 박물관이라고? 난 독일에 그 박물관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BMW가 독일차인걸 아는 것만으로 뿌듯한 정도였다. 내 관심사로는 0% 정도 되는 곳엘 간다니. 내가 세운 여정이라면 절대 들어갈 일 없는 목적지였다. 하지만 난 관광지보단 그들에게 정감이 가고 호감이 있었다. 때론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누구와 보았는지가 더 중요하고, 맛집을 가는 것보다 누구와 식사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즐거운 친구들과 함께면 어느 도시를 가던 재밌을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목적지가 아닌 그들을 택하기로 했다. 관심도 0%인 장소를 끌리는 친구들과 함께해 보자!



"그래, 좋아! 같이 가자^^"

"헤헷!! 마침 잘됐다!!! 우리 일행이 1명 더 있고, 내일 아침에 오기로 했어. 우리 넷이 함께 다니자^^!"

"오, 그래? 또 누가 오는구나??"

"응!!! 근데 그 친구가 마침 한국인이야!! 하하하. 정말 신기하지 않니?? 잘됐다~!! 까르르 깔깔"


내일 아침 그들과 같은 학교 유학생 친구가 도착하는데 신기하게도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그렇지만 그렇다고 더 반갑거나 기대되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다른 국적의 친구였으면 더 편했을 것 같다. 한국인이라는 게 어쩐지 친구 사귀기에 더 어색할 것 같기도 하고, 제일 웃긴 건 일행이 섞여 있기 때문에 우린 어차피 서로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상황인가. 한국인과 얘기하면서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 난감하지만 난감하지 않은 상황, 어색하면서도 웃기는 상황이었다. 역시 여행은 예상밖의 일들의 연속인가 보다.




다음날 아침, 우린 뮌헨역으로 한국인 친구를 마중 나갔다. 키가 크고 약간 마른 모델 같은 몸매에 적당히 깔끔하고 멋스러우면서 여행하기 편한 복장의 패션 센스를 갖춘 한 남자, 눈이 작지만 얼굴은 달걀형인 친구가 적당히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대만 친구들은 우리를 서로에게 소개해줬다.(영어로) 그리고 우린 서로 인사를 나눴다.(영어로)


"안녕? 만나서 반가워. 블라블라 (영어로)"

"안녕? 난 레나야. 난 한국에서 왔어. 1달간 유럽 여행 중인데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뮌헨으로 왔고, 어제 대만 친구들을 만났지. 오늘 일정을 함께 하게 되었네? 잘 지내보자, 하하핫(머쓱 머쓱)(영어로)"

"너도 여기 유학생이야??(영어로)"

"아니, 난 퇴사한 백수^^!!! between jobs!!(영어로)"


한국인에게 내 소개를 영어로 할 줄이야. 너무 웃기고 뻘쭘한데 어색함 속에서도 차마 배려 차원에서 한국어로 말하지 못하고 영어로 계속 대화를 나눴다. 한국인 앞에서 영어로 말 거는 상황에 어색한 첫 만남이었지만 우린 금세 조금씩 친해져 갔다. 오늘 하루 일정 후 그의 태도와 나에 대한 호칭이 '누나'로 바뀐 것을 보면 말이다. 크리스마스 2일 전, 우린 네 명은 독일에서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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